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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예배

제목
선 지역장·조장·구역장 헌신예배 [요일 1:5]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5.06.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 영의 흐름을 허락하신 2015년, 지역장, 조장, 구역장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준비해 주신 헌신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오늘 헌신예배 제목은 ‘선’입니다. 여러분은 선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들었기에 믿음의 선진들의 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선의 단계에 대해서도 잘 아십니다.

선의 1단계는 상대가 악을 행할 때 감정이 올라오지만 눌러 참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서운하다거나, 미운 감정이 없지요. 3단계는 감정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선한 말과 행함으로 상대에게 감동을 줍니다. 더 나아가 선의 4단계에서는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줄 수 있지요.

그나마 1단계는 하나님 앞에 선이라 할 수도 없고, 2단계는 되어야 그나마 선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선은 어느 단계에 해당하십니까? 머리로는 4단계의 선을 알지만 정작 선을 행해야 할 때는 1단계의 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민망한 모습은 아니겠지요?

헌신자 여러분은 이 마지막 때 내 지역과 조, 구역의 영혼들을 온 영의 흐름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최전방의 영적 장수들입니다. 누구보다 선의 마음을 온전히 이뤄야 하는 책임이 있는 분들이지요.

이 시간에는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 점검할 분야를 세 가지로 증거합니다. 말씀을 통해 선의 깊은 단계로 들어가는 헌신자 여러분과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첫째 ‘나는 상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인가? 아니면 상대를 누르고자 하는 마음인가?’입니다.

요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힘을 주어 충만하게 하며 변화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지요.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으로 낙인찍힌 간음한 여인도, 스승을 팔아버리고 배신할 가룟 유다도, 사사건건 시시비비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은 그들의 악을 들춰내신 것이 아니라 살릴 길을 열어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선하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반면에 선하지 않은 사람은 상한 갈대는 보기 싫다고 꺾어버리고 꺼져 가는 심지는 연기와 그을음을 없애려고 밟아서 꺼버립니다. “내가 옳다” 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나와 다른 의견은 무시하고 눌러 버리지요.

여러분이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상대를 살리는 쪽을 택하십니까? 아니면 내 주장을 앞세워 상대를 누르고자 하는지요?

예를 들어, 회의를 진행하는데 구역장님이나 조장님들이 지역장님과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합니다. 이럴 때 지역장님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저 구역장님은 전에도 그러시더니 사사건건 내 의견에 반대만 하시네? 내가 영의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하고 불편해집니다.

그러면 상대의 의견을 잘 들어보지도 않고 단번에 잘라 끊습니다. “구역장님이 그렇게 마음을 모아 주지 않으시면 지역이 하나 될 수가 없고 화평이 깨어져서 부흥에도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될 수 없습니다.” 하고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 선을 이루지 못한 만큼 살리는 척 하면서 짓누르려는 모습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서로 성품이 달라서 부딪히는 조장님과 구역장님이 있습니다. 어느 날 교구장님이 구역장님에게 “조장님은 잘 지내시나요?” 하고 물었지요. 그러자 구역장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합니다. “교구장님, 안 그래도 조장님 때문에 너무 안타까워서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요즘 철야나 화요 기도회도 자꾸 빠지시고 기도 시간엔 늘상 졸고 계세요.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과 늘 부딪히고 조장님이 계시면 구역식구들이 힘들어해요. 저희야 참을 수 있지만 본인이 힘드실 텐데, 빨리 조장님이 영으로 들어가도록 좀 도와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조장님과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내 탓이 아니고 조장님이 충만하지 않아서 그렇다.” 하고 “주위사람이나 구역원들도 힘들어한다.”며 남들까지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교구장님이 조장님을 지적하여 꺾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지요.

그러나 스스로 이런 마음을 발견하지 못하니 “나는 상대를 위하고 걱정하는 말, 선한 말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의 말과 행동이, 상대를 살리고자 하는 선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를 꺾기 원하는 것인지 잘 점검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 하면서 내가 영광 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믿음 있는 성도들은 먹고 마시는 것도 힘을 내어 열심히 충성하기 위한 것이요. 자고 쉬는 것도 강건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중심일 때는 먹고 자는 육의 일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향으로 받아주시지요.

반면에 겉보기에는 하나님의 일로 충성하는데, 중심에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므로 하늘의 상급이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봉사하고, 구제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며 영혼들을 돌보는 여러분의 사명은 참으로 귀한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충성을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고 축복받으며 부흥되면 그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고, 여러분에게도 영육 간에 축복이 임하지요.

그런데 이런 충성의 행함 속에 혹시라도 내 자랑, 내 영광을 구하는 마음은 없는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비유를 들어 구역에 전도 대상자가 있어서 열심히 작정 기도와 금식으로 심어 나갔습니다. 때를 따라 필요한 것도 공급해 주며, 헌신적으로 섬겼더니 상대의 마음이 열려서 곧 교회에 나올 만한 상황이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지역장님이 데려다가 지역장님 명의로 교회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이때 선한 마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역장님은 정말, 너무 하신다, 내가 저분을 전도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면서 자기 이름으로 열매를 가로채다니 참으로 뻔뻔하다.’ 하고 감정이 나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성도님이 드디어 목자의 양 떼가 되셨구나! 앞으로도 알곡이 될 때까지 지역장님이 잘 인도해 주실 테니 안심이다.’ 하고 기뻐하시겠는지요?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구역장님이 힘쓰고 애써 충성했더니 부흥도 하고 구역원들의 믿음도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직 개편의 소식을 들었지요. 내가 열심히 일구어 놓은 구역이 나눠져서 일부를 다른 구역장님이 맡게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영혼들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어떨까요? ‘내 구역식구들이 좋은 구역장님을 만나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할 텐데’ 하며 다음 구역장님에게 영혼들을 잘 연결시키려 할 것입니다.

반면 ‘내가 부흥시켜 놓은 땅인데, 내가 관리해서 일꾼이 되게 키워 놓았는데, 내 수고가 헛되구나’ 하거나 ‘내 구역이 좁아졌네’ 하고 서운함이 틈타면 그만큼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지요.

이렇게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열심히 충성하다가도 어느 순간 변질됩니다. 열매가 속히 드러나지 않거나 그 열매가 드러난다 해도 자신의 공으로 돌려지지 않으면 낙심하고, “지친다, 힘들다” 하면서 열정도 식어집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라야 여러분의 모든 충성이 영원한 상급과 영광으로 갚아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 셋째는, ‘내가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인지, 아니면 상대가 나의 마음을 살펴 주기 바라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행 20:35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명 감당을 하다 보면 자연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힘쓰게 됩니다. 자신의 가족에게 마음 쓰는 것만큼 연약하고 문제 있는 양 떼에 마음을 쓰게 되지요. 자신의 연단보다 성도의 문제가 더 급하며 해결받기까지 간절히 기도하며 살펴 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충만함이 떨어지면 받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질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나는 왜 반석으로, 영으로 못 들어갈까? 나는 이만큼 충성했는데도 왜 영육 간에 축복의 열매가 없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틈타면서 점점 더 육신의 생각들이 밀려옵니다.

‘내가 오랫동안 믿음이 정체된 것을 알면서 저분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쑥쑥 자랐다고 해서 내 앞에서 저렇게 좋아하는 티를 낼까?’ ‘우리 지역에는 믿음 있는 일꾼이 적어서 적은 수의 일꾼들이 더 많이 희생하는데, 우리는 거리가 멀어서, 교통편이 불편해서 그래서 남보다 열심히 해도 열매가 적은데, 그동안 말없이 충성했더니 아무도 몰라 주네’ 하고 힘이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전에는 영혼들의 문제가 먼저였는데 이제는 내 연단, 내 어려움이 먼저 보이지요. ‘교구장님은 나를 위해서 기도는 해 주고 계시나? 다른 분이 연단받을 때는 자주 심방하고 작정 금식까지 해 주시더니 나는 이렇게 힘든데도 무관심하시네’ 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도 보이지 않게 되고 “더 열심히 충성하세요” 하고 권면을 받아도 ‘내 형편도 모르면서 찌르기만 한다.’ 하며 상대에게 서운함만 품습니다.

오랫동안 양 떼를 가르치는 일꾼으로 충성해 왔고 많은 선의 말씀을 듣고 배웠다 해도 그 선을 자기 것으로 이루지 않으면 연단 받을 때는 결국 마음이 드러납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펴 주기보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섬겨 주기를 바라지요. 헌신자 여러분 중에는 이런 분이 없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그 고통으로 인해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애통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또 두고 가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셨지요. 나의 고통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더 먼저 보이는 마음, 그 마음을 헤아려 주고 도와주려는 선의 마음, 바로 이러한 마음을 사모하여 이룰 때라야 속히 온 영의 열매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요일 1:5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악은 모양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온전한 빛이십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자녀 된 저와 여러분도 온전하길 원하십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선이나 자기 의와 틀 속에서 나온 육적인 선이 아닌 온전한 선을 이루기 원하시지요.

이를 위해 세 가지 분야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범사에 상대를 살리고자 하며, 둘째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는 마음, 셋째 상대가 내 마음을 살펴 주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 이 세 가지만 스스로 점검해 봐도 얼마나 선의 마음을 이뤘는지 알 수 있지요.

한 해 동안 이 말씀을 기준삼아 매 순간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 행실을 점검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구역장 조장 지역장들이, 그리고 더 많은 성도님들이 2015년 온 영의 흐름을 잘 타고 반석으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06-29 오후 1:07:31 Posted
2016-08-12 오후 9:12:3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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