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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예배

제목
목자의 권능 주의종, 직원 헌신예배 [요 14:12]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7.01.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 주의 종, 직원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참으로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 권능을 볼 때 많은 이들이 놀라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권능을 “나만 행할 수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요 14:12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하셨지요. 이 말씀처럼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권능을 행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제자들 각자의 권능이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주님의 권능보다 더 크다고 할 수는 없지요. 다만 주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비교적 좁은 지역 안에서 사역하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수십 년씩 더 긴 세월 동안 더 넓은 지역을 다니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요. 사도들의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참 믿음을 갖기만 하면 능히 더 큰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숱한 세월 동안 권능을 구하며 부르짖었고, 철야와 금식으로 살다시피 했지요. 그 열매는 35년간 이 제단의 역사를 여러분이 보고 듣고 체험해 오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저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이 권능을 행하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권능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항상 알려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가 길을 알려 준다 해도 순종하여 행하는 경우가 드물었지요.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신뢰와 사랑으로 목자와 하나 된 사람마다 목자의 권능을 함께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열두 제자나 칠십 인의 제자가 주님의 파송을 받고 나갔을 때 그들도 주의 권능을 행했던 것처럼, 이 제단도 많은 분들이 기도받은 손수건을 들고 성회를 다닙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손수건 성회에 나가는 분들이나 또 온 영의 몇몇 분들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권능의 일꾼들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권능을 받으면 레위족 각부서의 제반 업무는 물론 성도님들의 사업터나 일터, 가정에서도 하나님의 보장하심 속에 영광 돌리며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목자의 권능’입니다. 목자가 어떤 마음으로 행해 왔기에 아버지께서 이 권능을 주셨는지 깨우치며, 여러분도 그러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만큼 이 권능을 더 크게 펼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시간은 여러분이 목자의 권능을 함께 행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갈 수 있는 길을 세 가지 분야로 증거합니다.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 아버지의 섭리에 동참하여 크게 영광 돌리는 성령의 도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목자의 권능을 여러분도 행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 나라의 유익만을 구해야 합니다.

곧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 아닌가’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되는 쪽을 생각해야 하지요. 롬 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했습니다.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아버지 하나님을, 주님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니 죄를 버렸고, 주님의 뜻이라 하니 충성을 다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철야하고 금식하며 기도를 쌓았지만 이때도 내 소원, 내 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와 목사님, 영혼들을 위해서였지요. 가족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렸고 어떤 것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한 해, 한 해 쌓이자 아버지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고, 해마다 권능을 더하셨지요.

어떤 분들은 부도가 나거나 불치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을 만나 건짐 받으면 은혜가 충만하여 불같이 기도하고 충성합니다. “주님만 위해 살겠다.”고 고백도 하지요. 그러다 축복을 주시면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바쁘다고 점점 기도를 쉬고, 사명도 놓습니다. 수요예배, 금요철야도 한 번 두 번 빠지다가 결국 주일만 간신히 나옵니다.

욕심 때문에 불의한 일에 동참하기도 하지요. 말로는 내가 이것만 잘돼서 축복받으면 꼭 하나님께 이만저만하게 드린다고도 하지만 갈수록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건강이나 사업터에 문제가 생겨서 그때라도 회개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자칫하면 신앙에서 완전히 떠나는 경우도 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고 욕심을 좇아가다 보니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타협했던 것이 어느새 너무 멀리 가버린 것입니다. 혹은 변함없이 달려간다 하는 일꾼들 중에서도 순간 순간 아버지의 마음보다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개척 당시 저의 세 딸들과 한 청년이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건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떠하셨을까요? “하나님, 내가 죽도록 충성만 했는데 어떻게 내 딸들을 한꺼번에 데려가십니까?” 이렇게 통곡을 하지는 않으시겠는지요? 살려 달라고 기도한다 해도 누구에게 먼저 가서 기도해 주었을까요? 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더 간절했을까요? 아니면 청년을 위해 기도할 때 더 간절했을까요?

저는 감사의 기도만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청년을 위해 기도했지요. 딸들을 불러 가신다 해도 감사할 뿐이지만 청년이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으니 이 아들만은 살려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런 마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청년은 물론 딸들까지 다 살려 주셨고, 이후로 저에게는 더 큰 권능을 주셨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분야부터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기 집에서는 물 한 방울도 아껴 쓰는데 교회의 물품은 쉽게 낭비한다거나, 회식 장소를 하나 정해도 내가 좋아하는 메뉴, 내가 가기 편한 곳 이런 쪽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도 사심이지요. 머리 된 입장에서 어떤 사명을 맡길 때 영육 간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는데도 나와 가까운 사람을 쓴다면 이것도 사심이고요. 이렇게 사심이 남아 있다는 것은 결국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아무리 헌신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셔서 마음껏 쓰실 수가 없지요. 내 유익, 내 취향, 내 가족, 나와 가까운 사람, 이런 ‘나’라는 것을 다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음껏 권능을 주셔서 쓰실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목자의 권능을 여러분도 행하기 위해서는 둘째,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눅 17:10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리 수고하고 애쓴다 해도 우리가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열심히 수고를 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열매가 날 수 없습니다.

농부가 밤낮 수고하여 농사를 지어도 결국 햇빛과 비와 바람을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변화도, 부흥도, 축복도 내 능력으로 이룰 수는 없지요.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내가 했다. 내 공로가 이만큼이다’ 하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지요.

고전 15:10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는 주의 종으로 부름 받았을 때 나이도 남보다 많았고, 신학교를 갈 만한 기억력도 없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말주변도 없었습니다. 주의 종이 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웠지요. 아버지께서 영감을 주시지 않으면 저 스스로는 단 5분도 설교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무리 큰 권능을 행해도 오직 아버지께서 하셨고, 주께서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밤낮 기도와 금식으로 받은 계시도, 수십 년간 부르짖어 받아 내린 권능도, 저는 제 것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나눠 줄 수만 있다면 여러분 모두에게라도 나눠 주고 싶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나기만을 원했습니다.

여러분도 만약 어떤 간증을 한다면 아버지 사랑이고, 주님의 은혜고, 목자의 권능이라고 항상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은 없는지 항상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하고 “목자의 권능으로 행했습니다.” 하는데 은근히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능히 목자의 권능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혹은 ‘내가 축복을 크게 받았다’ 이런 자랑의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남들이 자기 수고와 열매를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목자를 사랑하여 이렇게까지 고생했는데도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못 듣는 구나, 나보다 적게 수고한 저 사람은 칭찬받는구나 왜 저 사람만 사랑받을까’ 이러면서 불편하거나 낙담하는 것입니다.

빌 1:14-18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힘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반면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갇혀 있을 때 자기들이 열심을 내면 그만큼 바울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불순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8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들이 어떤 이유로 열심을 내든 간에 복음이 전파되고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기만 하면 그 공로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마음으로 범사에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가령 헌금을 많이 드렸다면 참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도 여러분의 공로가 아닙니다. 드릴 수 있는 물질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드릴 수 있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열심히 내 한 몸 바쳐 충성했다면 참으로 감사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충성할 수 있는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셨고, 봉사할 수 있는 은혜도 하나님께서 주셨지요.

내가 어떤 열매를 내었다 해도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런 고백이 중심에서 나올 때라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권능을 주셔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목자의 권능을 여러분도 행하기 위해서는 셋째,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들이 죄의 종이 되어 질병과 재앙 속에 고통 받는 것을 보실 때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리셨지요. 눈물만 흘리고 마음만 아파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망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십자가의 고난을 대신 당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내어주는 진실한 사랑은 상대에게 생명과 모든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됩니다.

살전 2:8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했습니다. 심지어 롬 9:3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구구절절한 사랑을 토해내지요.

영혼들을 위해서라면 육의 목숨도 아깝지 않고, 심지어 대신 지옥에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랑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몇 시간도 아니고, 며칠, 몇 달도 아닙니다. 천 년, 만 년도 아닙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의 고통을 알면서 어떻게 양 떼를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바울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는지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저도 대신 지옥의 형벌을 감당해서 천 명의 영혼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기 원한다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난 수년의 세월들을 통해 죽어가던 많은 영혼들을 살려 주셨고, 저에게도 권능에 권능을 더하심으로 저의 고백이 진정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주의 종들은 내게 맡겨 주신 양 떼를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는 마음이신지요? 파리하게 죽어가는 영혼들을 볼 때 어찌하든 살려내고 싶은 마음으로 처절하게 아버지 앞에 부르짖으십니까?

꼭 주의 종만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헌신하시는 여러분은 직분자들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있고 큰 은혜를 받은 분들이지요. 그렇다면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애통하시는 아버지와 주님의 눈물이 마땅히 여러분 안에도 있어야 합니다. 영혼들을 위해 매달리는 목자의 부르짖음이 여러분 안에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영혼을 사랑하는 만큼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목자의 권능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우리는 그날과 시를 알 수 없습니다. 최대한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당한 때로 정하시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해진 날은 있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성결도 신속히 이뤄야 하고, 이 제단에 주신 사명도 이뤄드려야 합니다. 제 권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아버지의 섭리를 완성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권능의 도구가 되어 마지막 때 성령의 사역에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 일터, 사업터, 가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영혼을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으며 살다가 장차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에 다 동참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01-31 오후 8:01:48 Posted
2018-02-21 오후 6:02: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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