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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

제목
하나님의 풍성하신 섭리  [시 50: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0.11.15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공의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올해도 풍성한 열매를 주시고 지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이 제단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셨습니다. 다만 공의와 사랑을 통해 이루어 가시기에 육의 눈에는 열매가 맺혀 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요. 오늘은 장차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섭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는 두 개의 바퀴

하나님께서는 교회 개척 이후 특별한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이 제단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특별한 섭리는 무엇보다도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에 무수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딤전 2:4). 하나님께서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또 하나의 특별한 섭리는 더 많은 영혼에게 더 좋은 천국 처소와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약 1:12). 주님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면류관은 물론 아름다운 처소와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지요.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이 제단을 통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뤄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때때로 사람이 보기에 일이 더디 되는 듯하고 열매가 적은 듯 보이는 시간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더 풍성한 열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결실을 거두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라는 수레를 두 개의 바퀴로 운행해 가십니다. 그 첫째 바퀴는 공의이며 둘째 바퀴는 사랑입니다. 공의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첫째 바퀴는 ‘공의’

공의는 쉽게 말해서 ‘정해진 법칙’대로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농작물은 적당한 햇빛과 물을 공급받아야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법칙이지요. 영의 세계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계의 법칙들을 지키시며, 공의에 맞춰 인간 경작을 하십니다. 그래야만 인간 경작이 공정하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무한한 능력으로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참 자녀를 많이 만드신다면 인간 경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편에서도 참 자녀를 얻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시기에, 그 결과로 얻은 참 자녀가 귀한 것입니다. 원래 전지전능하시고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한계를 입어 자신의 권한에 제한을 두신 것이지요.
또 천지 만물을 단번에 창조하실 수도 있지만 심혈을 기울여 엿새 동안 순서대로, 종류별로 지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경우, 특히 더 온 힘과 정성을 쏟아 친히 손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에게 배신의 아픔도 겪으셨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자녀에게 참사랑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주님도 공의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이 땅의 공의대로 추위와 배고픔, 아픔을 다 느끼셨지요.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히 9:22). 즉 죄를 씻으려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 자신을 희생하셨지요. 이렇게 공의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기에 그 희생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신성만을 입으신 채로, 또 독재자처럼 절차를 건너뛰고 쉽게 인생들의 죗값을 치르고자 하셨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틀림없이 송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소 모든 값을 치르셨지요.

바늘 가는 곳에 실이 따르듯이 ‘공의’에 뒤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제단에 때때로 폭풍우 같은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시고, 인내의 시간을 주신 이유도 이 희생을 씨앗으로 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만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고 많은 영혼을 새 예루살렘에 들이려는 섭리가 가장 아름답고 풍성하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농산물의 질과 양을 높이려면 그만큼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단을 통해 알곡을 많이, 특히 최상의 알곡을 많이 거두시기 위해 정확한 공의 가운데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런 만큼 저는 이 제단의 양 떼를 책임지는 목자로서 많은 희생과 헌신을 심어야 했습니다. 또 우리 성도님들도 대부분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려고 하지 않고 힘껏 달려오셨지요.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이 축복의 시험과 연단을 주셨습니다. 급속한 영의 흐름도 만들어 주셨지요. 힘써 달려온다고 했으나 아직 버리지 못한 죄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은 다시금 마음의 허리띠를 동이고 근신했습니다. 그 결과, 이 제단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제단이 되었고 여러분은 사랑받는 성도님들이 되셨지요.

성도 여러분, 경작이 일정한 법도 없이 대충 이뤄진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도 빛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경작을 받은 사람들 또한 적당히 신앙생활 하고 구원을 받는다면 큰 행복과 영광을 누릴 수는 없지요. 지금 하나님께서는 근본의 빛으로 은혜를 더하시면서 동시에 여러분 스스로가 믿음의 성장을 쟁취해 나가라고 독려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또 목자의 희생으로만 구원과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것은 공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장차 여러분에게 주어질 영광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축복이 손에 잡힐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두신 이유도 이제는 잘 알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일꾼들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이루실 때까지 그저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 보십시오. 성전을 이뤘을 때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훨씬 적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소중한 물질은 물론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물론 목자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유를 들면, 심장은 몸의 중심부입니다. 이 심장이 힘차게 뛰지 않으면 혈액순환이 안 돼서 온몸에 산소와 양분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본 교회는 이 교단의 심장부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책임자입니다. 따라서 제가 저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많은 영혼의 생명이 경각에 달릴 수도 있지요. 그렇기에 저는 어찌하든 교회를 책임지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며 공의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게 주신 권능이 크다 해도 첫째 하늘의 공의를 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의 시점에서 영육 간에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이나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둘째 바퀴는 ‘사랑’

‘섭리’라는 수레의 다른 바퀴는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공의와 함께 수레를 움직이지만 공의보다 더 중요합니다. 결국 이 사랑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섭리를 이루는 핵심이지요.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심에 있어서 먼저 공의를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희생입니다(요일 4:9~10).
이에 대해 비유를 들어 보면, 종종 물에 빠진 자녀를 구하기 위해 부모가 물에 뛰어들었다가 아이만 살리고 부모는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보도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안타까움도 주지만 그 희생의 사랑이 감동을 안겨 주지요. 이처럼 자녀를 살려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은 부모의 깊은 마음에 있는 사랑을 이끌어냅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로 소중한 ‘생명’을 버리는 희생으로 나오지요.
하나님께서도 이 마지막 때, 무수한 영혼이 사망을 향해 치닫는 극한 상황 속에서 큰 사랑을 보이고 계십니다. 자녀들을 구원하며 더 좋은 상을 주시기 위해 희생의 사랑을 나타내고 계시지요. 이로 인해 인생들은 하나님 근본의 사랑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의 사람들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에게 인간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의 고통을 겪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큰 사랑을 구체적인 행함으로 표현하셨지요.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사건은 약 2천 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성령을 통해, 또 놀라운 권능으로 이 사건이 참이며, 성경의 모든 메시지 곧 하나님의 사랑이 참임을 증명하고 계십니다.
만약 이 제단에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권능의 역사들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물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그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죄악이 관영한 이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지 못하지요. 이에 저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권능을 구해 왔습니다. 지금의 큰 권능을 받기까지 인고의 삶을 살아왔지요.
저와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죄, 사망에 이르는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런 엄격한 공의의 법칙 가운데 우리는 오히려 용서와 긍휼의 하나님을 뵈었지요.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사는 여러분이 되셨습니다. 어찌하든 하나님의 뜻을, 목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되셨지요.
여러분도 이처럼 공의로 빚은 환경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도 이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바퀴를 달고 거침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에 ‘영광’이라는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힐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큰 권능으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세계 만민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 제단에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때로는 그 말씀이 당장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먼저는 축복을 쏟지 않고 다 받을 수 있도록 그릇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특히 더 큰 그릇을 만들어 주고 계시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섭리입니다. 우리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을 보석으로, 한 알의 씨앗을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께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의 향으로 제사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11-18 오후 1:04:02 Posted
2020-11-22 오전 9:54: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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