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절기 설교

제목
부활의 의미 부활주일 [요 14: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4.17
오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영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다른 말로 ‘부활의 신앙’이라 일컬을 정도로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 요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부활’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의 법칙에 대해 깊이 있게 깨닫고 정립한 사도 바울은 죄의 결과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곧 죄인의 결말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두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기 때문이지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말씀한 대로 이 세상에 의인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도 없지요.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시 사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을 구세주로 시인하고 믿으면 죄로 인한 사망을 당하지 않고, 부활하여 천국에서 세세토록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실감하지 못하고 살지만 죽음은 현실입니다. 이 죽음은 인류의 오랜 고통이지요.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도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혹은 난치, 불치병과 싸우며 다가오는 죽음을 맞는 모습만 보아도 죽음의 고통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죽음 자체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이별’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낳습니다.
그런데 죄인이 당할 사망은 이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을 당하지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참 생명을 얻음으로써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들도 대부분 죽음을 경험합니다. 바로 육의 죽음을 겪지요. 그러나 성경은 이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살전 4:16). 이때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부활체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지요.
이들이 부활한 후에는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이 휴거됩니다(살전 4:17).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면서 그 몸이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바뀌지요. 이 신령한 몸은 죽지 않고 썩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로 인해 우리는 참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주실 참 생명에 대한 확실한 약속입니다.


2.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전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없다’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이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영생과 천국을 주고 싶으셨지요. 그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행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증명하셨지요.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전혀 없으신 분임을 증거합니다. 결백하셨기에 사망에 매일 수 없었고 결국 부활하셨지요.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죄인들 대신 죽음의 형벌을 당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 우리는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지요.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 또한 죄인으로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죗값을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치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이미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낮은 땅에 죄인들을 위해 보내주셨지요. 죄인들의 손에 내어주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였지요. 이것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창조주로서 하나님께서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얼마든지 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서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너무나 사랑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이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는 것입니다. 곧 천국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지요.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이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부활에 담긴 참사랑은 2천여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이 참사랑을 베풀고 계시지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신령한 자녀로 거듭납니다. 죄에 대하여는 철저히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죄악이 심히 관영하다보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영혼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하며 사망을 향해 달려가지요. 주님을 영접해 생명을 얻었다가도 죄를 범해 또다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희박한 영혼이라도 생명을 얻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롬 8:2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지요.


3. ‘참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지요. 곧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계획이 어그러지고 불통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나셨습니다. 애매히 핍박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셨지요. 십자가를 지실 때는 하나님께도 외면당하여 철저히 혼자가 되셔야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셔야 했지요.
그러나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으셨고 소망하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요.

이런 참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되기 위해 힘씁니다. 또한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합니다. 생명 다한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지요.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에, 또는 여러분의 사역지에 때로는 고난과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입니다. 전에는 죄 가운데 살므로 생명이 없었는데 주님을 만나 거듭났습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 신령한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지요. 또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은 신경, 조직, 세포를 살리고 재창조하는 권능을 보고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제 더 확고한 믿음과 소망으로 더 아름다운 천국 처소를 침노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제단에 주신 모든 비전을 함께 이루는 주의 일꾼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주님의 증거를 여러분의 삶 속에 확실히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은 참 생명, 참사랑, 참믿음을 의미합니다. 이 부활의 의미 중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9장 16절 전반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때때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날지라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용서하셨고 길을 여셨지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녀라도 잊지 못해 손바닥에 새기시는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결코 지워지지 않도록 가슴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맞는 그날, 이 사랑으로 이 자리에 이르렀다고 주님 품에서 감사의 눈물로 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4-20 오후 12:59:01 Posted
2022-04-21 오후 2:58:59 Updated

다음 글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이전글
이전 글 2022년 기도제목 (3)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