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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설교

제목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 (2) 십일조를 드릴 때 축복받는 이유 [말 3:7-10]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7.10
지난 시간에는 십일조의 개념과 유래,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고, 오늘은 십일조 드릴 때 왜 축복받는지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십일조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가 구약시대 율법일 뿐 신약시대에는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오늘날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에 담긴 뜻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오히려 신약시대에 온전하게 지켜야 하고 또한 온전하게 지킬 수가 있습니다. 바로, 율법대로 행하는 형식뿐 아니라 율법에 담긴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더 중요한 ‘마음’을 담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시대라 해서 율법을 폐할 것이 아니라 십일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아 온전히 지켜야 하지요.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책망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되 의와 인과 신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정성을 더 하여 규례를 두신 목적에 맞게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즉 십일조를 드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1.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십일조는 우리의 소득은 물론 모든 물질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결국 십일조는 주일 성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이 증거가 되는 행위요 믿음 있음이 하나님 앞에 증거가 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구원과도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마음이라면 당연히 구원받기는 어렵겠지요. 물론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해 주십니다. 육으로도 갓난아이는 너무 어려서 자신이 부모의 것으로 먹고 입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1단계 성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아직 이런 것을 분별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를 참작해 주십니다.
2단계의 믿음을 가진 성도들도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기는 하지만 십일조를 드릴 때도 있고 드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순종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지요.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이상의 성도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구원받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을 들었기에 하나님 뜻도 밝히 알고, 십일조를 드릴 때 주시는 축복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3단계 이상의 성도들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1, 2단계 성도들도 당연히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요.

우리 교회에서는 십일조에 대한 진리를 밝히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들을 보아 오셨지요. 그러니 믿음이 여린 성도들이라도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 수준의 믿음이라 해도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귀한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그 약속이 얼마나 참되면 시험해 보라고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
성도님들 중에는 학창 시절에 부모님 또는 선생님의 강요를 못 이겨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성장해서 열심히 공부한 것의 열매로 좋은 길이 열렸다면 ‘참 잘했다.’ 생각하게 되지요.
여러분 중에도 지금은 믿음이 어려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순종하시면 축복입니다. 이후에는 참 잘했다고 느끼게 되지요. 그러므로 초신자나 새 신자 분들이라도 말씀에 순종하고자 노력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 십일조를 드릴 때 축복받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단지 구원의 차원에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라 명하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십일조를 드릴 때 축복이 임한다고 말씀하시는지 그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십일조를 드림으로 저주가 끊어지고 축복의 물꼬가 트입니다.
어떤 분들은 소득이 적어서 또는 가난해서 십일조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할수록 오히려 더 잘 드려야 하지요. 그래야 축복받습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더 어려워지고 가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9)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지요. 나중에 일부 백성들이 그 땅으로 돌아와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고 불안했지요. 농사를 지어 풍작을 거둔다거나 상업이 융성한다거나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육적으로는 “침략당해서”, “형편이 좋아질 만한 환경과 조건이 아니어서” 등 얼마든지 이유를 댈 수 있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고난은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아서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므로 저주받은 결과라고 하셨지요.

이처럼 가난은 단순히 사람이 게을러서 또는 환경이나 조건이 안 좋아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가난은 죄로 인한 저주에서 비롯되었지요.
저주에는 크게 영적인 저주와 육적인 저주가 있습니다. 영적인 저주란 죄를 범함으로써 영혼이 영원한 사망 곧 지옥에 이르게 된 것을 의미하지요. 육적인 저주란 육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임한 모든 저주를 말합니다. 바로 가난은 이 육적인 저주에 해당하지요.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에게 “…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창 3:17). 여기서 ‘땅’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천지 만물을 다 포함합니다. 만물의 영장인 아담이 저주받으니 그에게 속한 이 땅의 만물도 다 같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말씀했지요.
전에는 저절로 풍성하게 맺힌 과실들을 따 먹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땅이 저주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다. 땀 흘려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가난의 고통도 이때로부터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저주에서 속량 되어야만 가난에서 벗어나 참된 부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이 저주가 끊어지고 축복의 물꼬가 트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십일조를 드림으로 저주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저주에서 속량 받으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로 인한 저주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즉 영혼의 영원한 사망을 면하게 하셨지요. 이뿐 아니라 육적인 저주 곧 가난도 대속해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저주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짐승의 우리에서 나시고 일생 가난한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육 간에 저주에서 놓이게 되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 하나님의 규례를 열심히 지켜나갈 때라야 그 저주에서 온전히 놓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말씀하십니다(말 3:7). 규례 중에서도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 드릴 것을 명하시지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행함으로 물질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 드릴 때 우리는 육적인 저주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이처럼 저주에서 속량 되고 개인의 공의에 맞게 육적인 조건도 충족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지요. 더 이상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고 공의에 맞게 축복받을 씨앗을 심었으므로 그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때는 여전히 저주 가운데 매여 있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축복이라 말할 수가 없지요. 이 부유함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질병, 사고, 가정불화 등의 문제로 불행합니다. 그러니 어찌 이것을 진정한 축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그 영혼이 장차 지옥에 가게 되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아래 음부에서 각자의 죄에 따라 형벌을 받습니다. 그중에서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슴에 ‘도적’이라 표기된 명찰을 답니다. 의자에 양손과 발이 묶인 채 자신과 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죄를 범한 사람들에 의해 돌로 맞고 죽창 같은 것에 찔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돌아가면서 서로 고문하고 고문당하지요. 묶인 영혼이 피투성이가 되어 비명을 지르지만 아무도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습니다. 이 묶인 영혼을 고문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옥 사자의 채찍에 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대 심판 후에는 훨씬 더 두려운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받아야 하지요.
십일조 설교하면 부담을 갖는가 하면 간혹 물질을 강요한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상을 알기에 진리를 가르쳐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며,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세세토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7-13 오후 1:21:46 Posted
2023-06-04 오전 11:37: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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