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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설교

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3) 성령의 인도받는 것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 [롬 8:12-1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8.28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받는 것에 이어서 오늘은 성령의 인도받는 것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부터 왕정 시대가 열리기까지 몇백 년 동안은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출애굽 2세대가 다 죽은 후 그 후손들은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고,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살았지요(삿 21:25). 주변의 적들에게 무수한 침략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자초한 시련들이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소돔과 고모라에나 있을 법한 더러운 죄악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같은 민족 내의 ‘지파 간 전쟁’으로 수만 명씩 목숨을 잃는 비극도 일어났지요. 백성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셔서 백성들을 위기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사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것은 아니었지요. 사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면 그만큼 백성들은 다시 어려움 속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가 없으면 결코 평탄한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삶은 고난의 연속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구약시대의 사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뜻을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과 인도를 밝히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으며 평안과 축복의 길로만 갈 수 있지요. 지난 시간에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받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 데 이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음성을 듣거나 성령의 주관을 받았을 때 우리 편에서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 불같이 기도하거나 감동 속에 찬양할 때 ‘이렇게 해야겠다.’ 주관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는 A, B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할 때 어떤 길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위해 기도하면 마음에 강하게 오는 쪽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순종해 행하지요.
이처럼 성령의 음성을 듣거나 성령의 주관을 받은 대로 행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령이 음성을 들려주시고 행할 바를 주관하셔도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는 순종하다가 중간에 변개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어떤 응답받을 제목이 있는데 마음에 ‘이번 다니엘 철야를 작정해서 드리면 응답받겠다.’는 성령의 주관이 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니엘 철야에 참석했는데 작정 기간이 다 차 가는데도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의 주관이 맞나? 그냥 내 생각이었나?’ 이런저런 생각이 틈타 변개해 버린다면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눅 18:1)이나 다니엘이 기도한 지 21일째 되던 날 비로소 응답받았다는 성경 말씀(단 10:12~14) 등을 떠올려 주심으로 작정한 대로 끝까지 철야기도를 드리도록 주관하십니다. 이때 변개함 없이 주관 받은 대로 온전히 행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변개할 마음은 아닌데 진리가 마음에 잘 무장되지 않아서 도중에 성령의 인도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따라 잘 가다가 어느 순간 자기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성령의 주관을 받아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리지 않던 땅이 매매되어서 그 수입으로 작정 예물을 드리기로 마음먹었지요. 성령의 주관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작정한 금액을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 다른 축복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계산해 보니 그 액수가 전에 땅을 매매한 금액보다 더 컸지요. 그러자 이왕이면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이 축복받은 물질로 작정한 액수보다 더 크게 드리기로 합니다. 전에 땅이 매매된 돈은 우선 개인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지요. 이런 경우도 작정한 예물을 안 드리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분명히 변개한 것입니다.
레위기 27장 9~10절에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 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드리기로 작정한 생축보다 더 좋은 것이 생겨도 바꾸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정 드리고 싶으면 둘 다 드리라고 하시지요. 드리기로 작정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변함없이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음성과 주관에 늘 순종하면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한 대로 참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았는지 곧 성령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었는지, 그 음성에 그대로 순종했는지는 열매를 보고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영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는 것 외에도 성령과 교통하는 방법에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영감으로 음성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감으로 듣는 음성은 ‘마음의 소리’로 들리는 성령의 음성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마치 소리로 듣는 것처럼 또렷하게 마음에 전달되기 때문에 음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감의 음성을 통해 주시는 내용은 매우 다양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사야, 에스겔, 호세아 등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계시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성령의 역사 속에 영감으로 음성을 들어 기록한 것이지요.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의 외부에서 성신으로 역사하셨습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으려면 마음을 진리로 일궈야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아무리 음성을 들려주셔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들을 수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실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 마음에 있는 진리의 분량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곧 마음을 진리로 일궈서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의 믿음, 곧 4단계 이상의 믿음은 마음의 비진리를 다 벗은 믿음입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군 상태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1, 2단계에 있는 초신자도 때로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습니다. 믿음의 분량이 적어도 성령 충만할 때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더 이상 밝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이뤄 영적인 믿음이 계속 성장해야 지속해서 들을 수가 있습니다. 또 마음을 진리로 일군 만큼 더 밝히, 깊게 들을 수가 있지요. 반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을 진리로 일구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의 음성을 듣고, 또 밝히 듣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비진리를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진리로 가득 채워야 하지요.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작업과 진리를 채우는 작업을 동시에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단지 진리의 지식을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진리로 일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눅 6:27) 말씀하십니다. 대부분 이 말씀을 들어보셨고 잘 아실 것입니다. 암송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가 마음에 일궈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대로 정말 원수까지도 사랑할 때 이 진리의 말씀이 마음에 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세게 밀치고 아무 말 없이 지나갔습니다. 어떤 분은 ‘순간 균형을 잃었나? 다급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이해합니다. 불쾌한 마음이 조금도 없지요. 더 나아가 ‘다치지는 않았나?’ 하고 상대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상대가 밀치는 순간 짜증이 확 나면서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지?’ 또는 ‘어떻게 사과도 안 하고 그냥 가나?’ 이런 생각들이 스칩니다. 이렇게 찰나에 떠오르는 생각은 거짓으로 꾸밀 수가 없기에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가 마음에 임한 사람은 이런 급작스러운 상황에 부닥쳐도 마음이 평온하고 선한 생각만 떠오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음에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가 일궈지지 않은 만큼 사랑의 반대인 미움이나 혈기가 동합니다. 마치 구정물이 가득 들어있는 양동이를 흔들면 구정물이 넘치는 것처럼 마음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고 진리로 채우려면 명백한 비진리를 벗은 후 양심의 악, 본성 속의 악 등 더 깊은 차원의 비진리를 버려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능력 있는 일꾼이 되기를 사모한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움, 시기, 질투, 거짓 등 명백한 비진리조차 마음에서 버리지 않고 노력만 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무리 마음에 결단했다 해도 말과 생각뿐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하리라 자원한 일꾼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꾼에도 그냥 일꾼이 있고 믿음의 일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적 전쟁에 내보낼 만한 일꾼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주관 받고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일꾼’이지요. 따라서 반드시 마음에서 비진리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순종하는 참믿음의 일꾼으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앞으로 있을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영적 장수들이 많이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8-31 오후 2:35:17 Posted
2023-06-04 오전 11:37: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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