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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설교

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8)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롬 8:12-1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10.02
지난 시간에 이어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우리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어렵지요.
육신의 생각을 벗어버려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해서 깨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군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지요.
주님을 갓 영접한 믿음의 1단계에는 기억 장치에 비진리의 지식이 더 많습니다. 마음에 일군 진리의 분량도 적지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고 세상에 있을 때처럼 구습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말씀도 잘 행하지를 못하지요. 아직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육신의 생각인지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믿음의 2단계는 진리의 말씀을 어느 정도 알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마음에서 벗어버리지 못한 비진리가 많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도 많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에 막혀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그러나 믿음의 2단계 수준의 육신의 생각은 설교를 경청해서 듣다 보면 대부분 발견됩니다. 들은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이 더 분명하게 깨우쳐 주시지요.
같은 믿음의 2단계 안에서도 믿음이 조금 더 성장하면 자신을 발견하는 단계에 접어듭니다. 말씀을 통해 판단, 정죄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또 판단, 정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상황에 놓이면 여전히 판단, 정죄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비진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먼저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군수군하고 싶은 마음, 미움, 교만 등 버리지 못한 비진리가 발동하지요.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을 물리치려고 해도 계속 떠오릅니다. 솟구쳐 오르는 거센 물줄기를 억지로 막아도 물줄기가 여전히 솟아오르는 것처럼 마음의 비진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계속 나오지요.


2.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들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지요. 이 말씀을 모르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말씀을 잘 안다고 해서 모두가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는데도 기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염려하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 근심이 계속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육의 일들을 염려합니다. 또는 어떤 연단이 올 때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거나 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더디면 낙심하지요. 그런데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이 마음에서 기쁨을 몰아낸 것이지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마음에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 천국 소망, 위로부터 주시는 평안함이 있지요. 이 기쁨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현실이 어떻든 간에 이 사실을 믿고 항상 기뻐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를 믿지 못하고 염려, 근심, 걱정 속에 삽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요. ‘내가 더 일해야 많이 벌 수 있고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하면서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낙심하지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면 눈앞의 현실만 보게 되므로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바빠서.’ 또는 ‘온종일 일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기도할 힘이 없다.’ 또 ‘지금 시험 기간인데 열심히 공부하고 끝나면 그때 열심히 기도해야지.’ 이렇게 핑계를 댑니다. 다 육신의 생각이지요. 기도한다고 해도 중언부언하거나 졸면서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어떻게 주관하실까요?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울려주십니다(눅 22: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신 말씀을 떠올려 주시지요(빌 4:6).
또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습관을 좇아서 무릎을 꿇고 중심을 모아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땀 흘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어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더 경건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옆 사람이 내 기도를 듣지는 않을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생각하지요.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육신의 생각 속에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응답받을 수도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육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누구나 감사할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 놓이면 감사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지요. 성도 중에는 주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는 분들도 있지만 믿음이 성장하면서 점차 문제를 해결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나는 가난하고 건강하지도 않고 가정이 화목하지도 않아서 감사가 당연히 안 나온다.’라고 한다면, 육신의 생각임을 알아야 하고 그 생각 그대로 변함없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감사할 조건이 없어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감사할 수 있도록 역사해 가십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지요. 또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감사하면 감사할 제목이 생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악조건도 좋은 조건으로, 불통도 형통으로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막 9:23).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했고,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말씀 그대로 순종하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현실을 바꿔 주십니다. 문제를 해결 받고 응답받는 것이 참으로 쉽지요.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있는 한은 이렇게 응답받는 것이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잘 알지만,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때와 다름없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요. 세상 방법을 의지하고, 그러다 안 되면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기뻐하지도, 기도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3.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쉬어져

주님을 영접하자마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채워진 비진리가 하루아침에 벗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생각의 문을 열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지요.
그런데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는 대부분 이 영적인 믿음의 크기가 겨우 구원받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이 믿음을 자기 삶에 온전히 적용할 만큼 믿음이 큰 것은 아니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만큼, 즉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어내는 만큼 이 영적인 믿음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의 힘’을 체험하는 만큼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적인 믿음이 자라지요.
감사하게도 이 제단에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체험을 하면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지요. 세상에 살면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이 깨어져서 신속하게 영적인 믿음이 자랍니다.
영적인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설령 파도 같은 시련이 와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기도하면 아니 될 것도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깨어져 없어졌기 때문에 굳건한 믿음을 불어넣어 주시는 성령의 음성만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마 11:30).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항상 평탄한 길을 걷게 되니 행복하지요. 그러므로 빨리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쉽게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큰 문제 앞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 문제를 오히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축복의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이 아닌 영에 거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의 자녀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05 오후 5:03:54 Posted
2023-06-04 오전 11:37: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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