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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2차 영혼육 (12) 말씀과 하나님, 사람의 마음, 영 [요 3:5-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1.16
오늘은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과 하나님, 사람의 마음, 영 등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마음을 닮은 마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에 앞서 “말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과 하나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채워 주신 영의 지식들이 말씀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많은 경우 “말씀은 곧 성경에 있는 말씀이요 진리”라는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말씀에 대해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했고 또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했지요.
이런 표현들을 보면 말씀이란 단순히 66권 성경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포함하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이기도 하고, 동시에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근본된 실체”이기도 하지요.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무한하신 분이므로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이 필요없으시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하시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태초”라는 말조차 필요없지만, 여기서 태초라는 구분점을 주신 것은 사람 편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혼이라는 틀이 있어서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혼적인 한계를 깨뜨리고 궁구해 본다면 하나님께는 시작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참고로 창세기 1장 1절에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여 “태초”가 나오는데 이는 요한복음의 태초와 의미가 다릅니다, 창세기의 태초는 영원 전의 태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시점으로서, 실제 시작이 있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장 1~3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하나님이 말씀과 함께 계셨다고 하여 마치 말씀과 하나님이 각각인 것처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하여 말씀과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설명합니다. 또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지 않고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했으니 하나님보다 말씀이 먼저 계셨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즉 하나님과 말씀은 하나이지만 각각 분리해서 칭할 수도 있고, 분리해서 생각할 때는 말씀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는 온 우주 공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 곧 말씀이 빛과 소리로서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인간경작을 위해 영의 형상을 입으셨고, 동일한 마음을 가지신 삼위 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셨습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되셨지요.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근본이 모두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근본이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 1:14).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함은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를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가지신 것도 인간경작을 계획하신 이후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시고 천군 천사나 사람 등 다른 존재들이 있게 되니 서로 구분할 수 있는 명칭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말씀 곧 하나님의 마음이 먼저 있으셨고 하나님의 명칭과 하나님의 형상은 나중에 생긴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과 하나님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이신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비유를 들면, 사람의 몸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면 실체인 몸이 있음을 압니다. 결국 몸과 그림자는 하나요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인데, 굳이 선후를 따지면 몸이 먼저인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하나님보다 먼저이지만 결국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이지요.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라 했는데, 우리에게 주신 성경 66권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며 근본 속성이신 말씀의 일부분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 중, 인간경작을 받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내용을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 말씀을 양식 삼으면 이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고, 이는 곧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이뤄진다는 말이 되지요.
이렇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임한 만큼 영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놀라운 역사가 따름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합니다.


2. 사람의 형상과 마음

그러면 사람은 마음이 먼저일까요, 형상이 먼저일까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영이 탄생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영의 지식들이 채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마음이지요. 즉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이 먼저이시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형상이 먼저요 마음이 나중인 것입니다.

사전을 보면 마음이란, “사람이 인식하고 느끼고 뜻을 세우는 활동, 혹은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활동”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은 “영 자체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지식”을 뜻합니다.
맨 처음, 아담의 마음은 완전히 빈 그릇과 같고 백지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마치 그릇 안에 무엇을 담듯이 사랑, 온유, 화평, 진실, 겸손과 같은 진리의 지식들을 하나님께서 심어 주셨지요. 그래서 아담의 마음이란, “생명의 씨가 있는 영 자체와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의 지식”입니다. 이것은 곧 아담의 “영”과도 같은 의미이므로 그냥 영이라고 하면 되고, 처음에는 “마음”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하여 그의 영이 죽은 후에는 “마음”과 “영”이 더 이상 같은 의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영이 죽게 되자, 그의 마음에서는 생명의 지식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게 되었고 그 대신 혼을 통해서 원수 마귀가 심어 주는 비진리의 지식들이 들어오게 되었지요.

이처럼 아담이 타락한 후에 사람의 마음은 “원래 있던 진리 대신 비진리가 생명의 씨를 감싸고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마음 안에 진리만 있을 때는 “영”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 안에 비진리가 들어와서 더 이상 영이라 할 수 없으니 “마음”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진리의 마음을 까만 마음이라 하고 진리의 마음을 하얀 마음이라고 하면, 원래는 아주 깨끗한 하얀 마음이었던 것이 점차 까만 마음으로 물들어 감으로 하얀 마음과 까만 마음이 섞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진리의 지식 가운데서 때로는 선한 마음과 행실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진리의 지식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비진리로 물들어 감으로 마지막 때가 되어가면서 악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직 진리의 지식이 남아 있다 해서 사람의 영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이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지식을 공급받지 못하며 이전에 받은 생명의 지식이 약간 남아 있다 해도 결국은 다 뽑혀 나가게 되어 있지요.


3. 죽은 영을 살리는 방법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의 씨가 다시 활동하게 되고 성령은 마음에 영의 지식들을 심어 줍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 아담 이후로 점점 검어진 마음이 다시 하얀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불같이 기도하면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만큼 까만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사랑, 선, 진실, 온유, 겸손과 같은 영의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만큼 하얀 마음이 더 많아집니다. 이렇게 계속해 나가면 마침내 까만 마음이 조금도 남지 않은 온전한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결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받기는 했는데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까만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혹은 처음에는 열심히 죄를 버리기 위해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미지근한 신앙이 되어서 죄와의 싸움을 그쳐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전에는 조금씩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고 있었는데, 죄와의 싸움을 멈춘 다음부터는 또다시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까만 마음, 비진리의 마음으로 있으면 그 속에서 생명의 씨가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마음에 성령만 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물 곧 말씀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요 3:5). 또한 성령을 받았다 해도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계속 까만 마음으로 있으면 이미 받은 성령이 소멸될 수 있지요(살전 5:19). 한번 성령을 받고 구원받았다 해도 거기에 안주하여 변화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말씀한 대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부지런히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며 진리의 지식을 담아가야 합니다. 온전히 하얀 마음으로 회복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마음에 담긴 진리의 지식들을 성경 안에 기록해 주셨습니다(딤후 3:15). 우리가 성령을 받고 이 말씀들을 부지런히 양식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이 땅에서도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더 가까이 거하게 됩니다. 흠도 티도 없이 하얀 마음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들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영원히 살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성도님들은 아버지 마음을 온전히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새 예루살렘의 영광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1-19 오후 7:15:12 Posted
2022-01-21 오후 1:28:4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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