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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3차 영혼육 (2) 육체와 육체의 일 [요일 2:24-25, 갈 5:19-2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2.13
요즘은 남녀를 불문하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먹으면 예뻐지고 날씬해진다는 음식들로부터 각종 기능성 화장품이나 다이어트 용품들이 무수하고 성형수술도 아주 보편적인 추세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성형수술로 아름답게 바뀐 사람의 인생은 이전보다 더 가치가 있을까요? 주를 믿지 않고 그 영혼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육적으로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삶의 가치는 달라진 것이 없으며 여전히 썩어질 육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진리로써 내면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영혼이 아름다운 만큼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므로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장차 천국에서는 영원한 영광 중에 거하게 됩니다. 마음을 진리로 이룬 만큼 외면적인 아름다움도 보너스로 따라오게 되지요.
전도서 8장 1절에 “…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말씀한 대로, 영혼이 잘되는 만큼 사나운 인상이 선하고 고운 인상으로 바뀌며, 어둡고 세상에 찌들었던 얼굴도 영적인 빛이 임하여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따져 보면 평범한 얼굴이라도 ‘그 사람 참 예쁘다, 아름답다’ 하고 호감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성결되고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세상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투자요, 유익된 일이지요.


1. 모든 죄성을 버려야 성결될 수 있어

지난 시간에 설명한 용어를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몸”은 아담의 범죄 후 진리의 지식이 빠져 나간 사람의 형체이며, “몸의 행실”은 몸 안에 담긴 비진리를 좇아 나오는 행실입니다.
육신은 진리가 빠져 나간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이며, 이러한 “육신”을 낱낱이 나누어서 말하면 “육신의 일”입니다. 몸과 결합된 죄성들 곧 미움, 시기, 질투, 음욕, 욕심, 교만, 혈기 등 이런 하나하나가“육신의 일”이며 이것들을 총칭해서 “육신”이라 합니다.
육신의 일을 행한다는 것은 사람이 행함으로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만 범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가진 보석을 보고 실제로 도적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것을 갖고 싶다, 주인 몰래 가져오고 싶다’ 생각하면서 탐심을 품었다면 곧 마음으로 범죄하여 육신의 일을 행한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마음으로 범죄한 것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처벌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며, 원수 마귀도 육의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기에 육신의 일에 대해서도 송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말씀하셨고, 요한일서 3장 15절에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으로 범죄한다는 것은 이미 행함으로 나올 바탕을 마련한 것이며, 마음으로 범죄하는 사람은 행함으로 범죄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가시관을 쓰시고 피 흘려 주신 것은 바로 육신의 일을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지요.
우리가 성결되고 거룩해지려면 육신의 일을 버림으로 생각으로도 범죄하지 않아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불순종한 아담 이후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들과 자기 스스로 받아들인 죄의 성질들이 사람에게 속속들이 배어 있어서, 이러한 죄성들을 뽑아낸다는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금식하고 철야하고 불같이 기도하며, 죄성을 벗어 버리고자 생명 다해 노력할 때에 성령님이 도우시며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마침내 마음에서 죄성들이 벗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금식 등을 드릴 때는,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하게 느낄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와 악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느낄 때 쉽고 신속하게 죄성들을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2. 육체와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했다면 육신의 일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때렸다면 이렇게 폭력으로 나온 행함이 육체의 일입니다.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은 육신의 일이지만 실제로 훔쳤다면 이것은 육체의 일이지요.
육체의 일을 총칭하는 단어는“육체”입니다. 그러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 중 어느 쪽이 더 죄질이 중할까요? 마음에 있는 죄성이 현저히 드러난 육체의 일이 더 중하지요. 따라서 성경 곳곳에 육체의 일을 행하는 자는 구원받지도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창 6:3, 고전 6:9~10, 갈 5:19~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에 아직 육신이 남아 있고 육신의 일을 범했다 할지라도, 이를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성령이 임해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후에도 육체의 일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육체 가운데 거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하실 수가 없지요. 성령의 충만함이 점점 사라지다가 결국에는 성령이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어렵지만, 행함으로 범죄하는 것은 자기 의지 가운데 능히 절제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보고 마음에 탐심이 들어서 ‘저걸 슬쩍 가져갈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안 돼’ 하고 스스로 절제시키면 되지요. 화가 나서 때리려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도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얼른 내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 줄 알면서도 절제하지 않고 계속 육체의 일을 범해 나간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짐짓 범죄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초신자라면 육체의 일을 단번에 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열 번에서 아홉 번, 여덟 번, 이렇게 줄여 나가서 결국에는 육체의 일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더구나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육체의 일은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했습니다.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짐짓 육체의 일을 행해 나가면 결국 이것이 큰 죄의 담으로 쌓여서 회개하고자 해도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이 두려운 하나님인 것 같고, 구원의 확신조차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1) 육적인 음행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라고 말씀합니다.
음행이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서로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앞으로 결혼할 사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며 장래를 약속했다 해도 결과를 보면 변개하여 갈라서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배우자가 있으면서도 부정을 행하여 다른 사람을 취한다면 이 또한 음행입니다.
요즘은 너무나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여러 가지 음행들을 아주 자연스러운 일처럼 묘사하며 미화시키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불법적인 관계를 갖는 사람들에 대해서 애틋하고 절절하게 묘사하여 아름다운 사랑인 것처럼 입력되게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런 내용을 재미있다고 보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만큼 죄에 대한 분별력이 약해지며 무감각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악영향까지 사람들의 음행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런 인터넷 음란물을 통해서 음행을 유발하는 자료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더구나 더러운 것과 호색적인 것들까지도 더 쉽게 추구해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음행을 경고하는 말씀이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에베소서 5장 5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했고, 히 브리서 13장 4절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아무리 세대가 악하다 해도 주를 믿는 우리는 결코 악한 세대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서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2) 영적인 음행
그런데 사람 사이의 육적인 음행 외에도 영적인 음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를 믿는다” 하면서 점을 본다거나 부적을 소유하는 등 사술을 취하는 것을 말하지요(고전 10:21). 이는 곧 악한 영을 섬기며 귀신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장을 보면,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병이 들자 이방신에게 사자를 보내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인지 물어 보고자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를 심히 서운히 여기심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하셨고, 왕에게는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지요. 그 말씀대로 아하시야는 병상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 하고,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과 귀신을 의지하는 행함이 바로 영적인 음행이며 이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와 같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은 심히 마지막이 가까운 시점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자녀들과 마지막 때 하나님의 도구로 쓰실 사람들을 애타게 찾으십니다. 그래서 정녕 죄를 벗어 버리고자 간구하는 자녀들에게는 반드시 은혜와 능력을 풍성히 주시며 불같은 성령의 역사로 신속하게 성결되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힘있는 영적 장수들로 나와 마지막 때를 이루는 역사 속에 큰 사명을 감당하며 장차 새 예루살렘의 영광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2-16 오전 10:20:06 Posted
2022-02-18 오후 1:35:1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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