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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3차 영혼육 (4)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 분쟁 [갈 5:19-2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2.27
지난 시간에는 육체의 일들 중 더러운 것과 호색, 우상 숭배에 대해 설명했고 오늘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 분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죄의 삯이 사망’이란,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으므로 그 죗값으로 사망을 당하게 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사망’이란, 곧 몸의 죽음뿐 아니라 사람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것이지요. 이를 믿는 사람은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섭리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사하셨으니 이를 믿는 사람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살아도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어둠 가운데 거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곧 “나는 주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 말해도 이를 거짓말이라고 말씀합니다(요일 1:6~7, 2:4).
이제 주를 믿는 사람은 죄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술수

‘술수’란 술법, 또는 술책을 의미하는데 그중에서 술법이란 무속 신앙이나 복술 등에서 행해지는 것들입니다.
세상에 보면 흔히 신접한 사람들, 곧 악한 영의 힘을 빌어 복을 받게 해 준다거나 장래 일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주술적인 방법으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예를 들어, 대학 입시나 취업을 앞둔 자녀나 결혼할 배우자에 대해 길흉을 점치기도 하고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이유를 물으러 가는 것입니다. 어떤 불길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부적이나 어떤 비법을 쓰지요.
자신의 경쟁자를 저주하여 해롭게 하기 위해서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효험이 있다는 부적을 몸에 지니기도 하고 굿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이런 일들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19장 26절에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했습니다. 주를 믿는다 하면서 이런 일들에 미혹되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인 악한 영을 좇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는 큰 죄가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 해도 이런 일들은 어떤 유익도 없이 오히려 악한 영을 끌어들이게 되어 더 큰 재앙을 초래할 뿐이지요.
또한 악한 영들이 앞일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악한 영들도 영의 세계에 속해 있기에 육의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어서 마치 미래까지 아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지요. 단지 잠시 동안의 눈가림과 속임수로 그럴 듯하게 미혹하여 사람들의 경배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바로 악한 영의 계략입니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앞일과 모든 것을 아시며 사람에게 축복을 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술수라는 말은 단지 악한 영에 접하는 술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의미로는 술책, 다시 말해 궤사를 꾸미고 교묘한 거짓으로 상대를 꾀어가는 일들이 술수에 포함되지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악한 계교를 써서 상대의 것을 가로채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성경에도 보면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이라는 사람은 유다 백성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죽이고자 할 뿐 아니라 그 민족인 유다인 전체를 멸하려고 궤계를 꾸미지요. 또 다니엘이 왕의 은총을 크게 입자 이를 시기한 신하들이 궤계를 꾸며서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백성 유다 민족을 지키심으로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은 구원을 받았고, 오히려 악한 하만이 왕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하지요. 또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지키시니 무사했고 오히려 그를 모함한 신하들이 사자의 밥이 됩니다.
잠언 26장 27절에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했습니다. 악한 계략을 꾸미고 남을 해치려 하는 것은 현저한 육체의 일로서 자기 자신의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며 더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도를 걸을 때는 악한 사람들이 궤계를 써 속이려 해도 미혹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 중에서도 궤계에 속아서 사기를 당하는 등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욕심이 동원되어 진리를 어기고 정도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비진리가 있는 만큼 상대방의 거짓된 말에 마음이 동하는 것이지요.
만약 성도들이 욕심을 좇지 않고 정도를 걸으면 상대가 아무리 그럴 듯하게 말해도 속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모략으로 해치고자 해도 정도를 걸을 때는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피해를 막아 주시고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시는 것입니다.


2. 원수를 맺는 것

‘원수를 맺는 것’이란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파멸되기를 원하며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상대에 대해 악한 감정을 품다 보면 상대를 멀리하게 되고 나아가 미워하게 됩니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감정이 폭발하게 되고 해를 입히려고까지 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원수 맺는 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악을 행했으면 자신도 악으로 갚아 주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셨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 해도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여 감정을 품고 악을 악으로 갚지는 않으셨는지요? 원수처럼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신의 마음에 좀 맞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상대를 보면 얼굴을 굳히고 차갑게 무시하며 외면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상대가 잘못한 것으로 인해 나를 어렵게 여길까 하여 오히려 그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 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한 번 더 해 주셨는지요?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떠한 사람과도 원수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많은 영혼을 변화시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분쟁

‘분쟁’이란 자기 유익과 자기 권세를 우선적으로 여기며 이를 취하기 위해 다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입장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주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하므로 분쟁이 일어나게 되지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의 고집으로 인해 심히 분쟁하게 되고 인연을 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서로를 섬겨 주면 되는데 서로 섬김 받으려 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니 다툼과 분쟁이 있게 되지요.
의가 좋았던 형제간에도 유산 상속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거나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될 때는 심히 분쟁하게 되고 원수처럼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웃 간에도 자기 유익을 좇아 이런저런 이유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되지요. 예전 같으면 그래도 한동네 사람이고 이웃이니 그저 참고 살았을 법한 일도 요즘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당장 찾아가서 항의를 하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세상에는 사랑이 식어지고 더욱 자기 유익을 구하니 갈수록 분쟁이 더하고 개인 간에는 물론 민족 간에, 나라 간에도 전쟁과 불화가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성도들은 오직 성령의 띠로, 사랑의 띠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는 어떤 분쟁도 없이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서로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주면 얼마나 평안할까요? 또 서로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주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한 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어디를 가나 평안을 심고, 화평을 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서 5장 21절에 육체의 일에 대하여 경계하기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즉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예전에 진리를 알지 못하고 행한 것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말씀을 듣고 깨닫는 대로 기도하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이지요. 순간적으로 예전의 구습이 나왔다 해도 또다시 통회자복하고 변화되어서 결국 온전함을 이뤄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변화되고자 노력해 나가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버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여전히 육체의 일을 행하며 오히려 세상에 물들어 간다면 결국 “믿습니다” 하는 고백도 거짓말인 것이지요.
진실한 믿음과 행함으로 빛 가운데 거하시므로 이 땅에서도 축복을 받으며 영원한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3-02 오후 4:23:38 Posted
2022-03-04 오후 1:39: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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