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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3차 영혼육 (5) 시기와 분냄, 당 짓는 것과 분리함 [갈 5:19-2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3.06
지난 시간에 육체의 일들 중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 분쟁에 대해 설명했고, 오늘은 시기와 분냄, 당 짓는 것과 분리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가 임하면 그 순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뜨겁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눈물로 감사하고 생명을 드리겠다고 다짐하며 실제로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충성과 열심, 혹은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정녕히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인정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했지요.
우리가 참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고백하며 눈물로 찬양한다 해도 정작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랑의 고백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지요.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는 것,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며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는 것, 이것이 참된 신앙의 증거입니다.


1. 시기

‘시기’는 자신보다 남이 낫다고 여길 때 마음이 요동하여 불편함을 느끼고 상대를 멀리하며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심해지면 투기가 되는데, 이런 시기와 투기로 인해 상대를 해롭게 하는 여러 가지 행함이 나오게 되지요. 악의에 찬 분냄이 나오기도 하고, 분쟁하고 당 짓는 일도 생기며 살인도 나옵니다.
시기라는 하나의 근본 뿌리에서부터 투기와 그 밖에 여러 가지 육체의 일들이 파생되어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기는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참으로 추한 죄악입니다. 잠언 14장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한 말씀처럼 시기하는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뼈가 썩는 고통을 받게 되지요.
성경에 보면 레아와 라헬은 자매 사이인데도 서로 시기하여 다투며 남편인 야곱까지 힘들게 합니다(창 30:1). 이런 다툼이 나중에는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지요. 곧 라헬의 아들 요셉이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자 다른 열 명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는 마음까지 품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어린 동생을 이방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아버리는 사건이 벌어지지요. 한 핏줄인 동생조차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며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무정함이 바로 시기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도 결국 근본 원인은 시기였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했는데, 시기가 미움을 일으키고 결국 살인까지 낳는 사례가 예나 지금이나 드물지 않은 것입니다.

제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시기의 속성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저 사람은 이런 단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는데 왜 저 사람은 잘되고 사랑받는 것일까?’ 하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지요. 더 나아가 상대가 미워지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고, 그 행복을 짓밟고 싶어 합니다.
상대의 행복을 자신과 비교하며 마음이 상하는 것도 그 근본은 시기에서 비롯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인정받는데, 저렇게 행복한데, 나는 뭔가,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절망하거나 자신에 대해 낙심해 버리기도 하지요.
특히 나이나 신앙의 경력이 비슷하거나 비슷한 사명을 갖고 있는 비슷한 대상에 대해 그러기가 더 쉽습니다.
시기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칭찬을 받을 때 마치 자기 일처럼 행복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칭찬을 받는다면, “내 아들, 내 딸은 이런 결점이 있는데 칭찬하네” 하고 불편해하실 분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내 자녀는 저렇게 칭찬받는데 나는 칭찬받지도 못하네” 하며 마음 아파하시겠는지요? 그런 생각이 없이 기쁘고 행복하실 것입니다. 비록 내 자녀에게 어떠한 부족함이 있다 해도 사랑을 받으니 더욱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대상이 내 자녀일 때, 내 가족일 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감사하는 것이 영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에게는 요나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통하여 서로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았지요.
사실, 육적으로 보면 요나단은 다윗을 원수로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사울의 왕위가 자신에게 계승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으니 자기 왕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요나단은 오히려 다윗을 도우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도 그를 격려합니다(삼상 23:16~17). 남이 좋은 것을 취하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행복하며, 남이 고통을 받으면 나도 아프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2. 분냄

어떤 사람은 분을 내면 언성이 높아지고 상대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폭력을 행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다윗을 심히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 했는데 반대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사랑하여 어찌하든 살리고자 애를 썼지요.
하루는 요나단이 사울에게서 다윗을 피신시켰는데 이를 안 사울이 심히 노해 요나단에게 악을 발합니다(삼상 20:30). 그럼에도 요나단이 다윗을 두둔하자 단창을 던져 치려 하지요. 자신의 아내와 대를 이을 아들을 패역한 말로 욕하고 아들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하니 이것만 보아도 사울이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혈기가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심히 어렵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온유하게 보이는 사람도 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속으로 꾹꾹 눌러 참는 것일 때가 많지요. 그래서 술을 마신다거나 어떤 상황이 되면 속에 쌓아 둔 것이 폭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혈기의 뿌리가 있다 보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혈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소한 짜증을 내고 분을 내었다 해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록 잠시 혈기를 냈다 해도 중심에서 회개하고 혈기를 벗어 버리면서 변화되어 나가면 되지요.
그러나 크든 작든, 분냄이라는 죄성이 있으면 사망으로 가는 큰 육체의 일로 나와질 수 있기에 혈기의 근본 뿌리까지 뽑아내야 합니다. 분내는 것이 점점 정도가 심해지고, 또 사울과 같이 권세가 있어 마음대로 분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결국 사울과 같은 악을 발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죄는 사소한 것이라 해서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혈기를 내는 데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어찌해서 분이 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악이 있고 혈기가 있기에 분이 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고 온유한 사람은 상대가 원인을 제공한다고 해서 분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 의분은 육체의 일인 분냄과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하고 두려운 말씀으로 책망하시거나,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 의로운 분냄이지요.
부모가 자녀를 책망할 때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자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분명 분냄이고 하나님 앞에서도 합당한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자신의 감정 가운데서가 아닌 자녀가 잘못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사랑하지만 짐짓 엄하게 책망하는 것은 육체의 일과는 다릅니다(잠 13:24).


3. 당 짓는 것과 분리함

‘당 짓는 것’은 전체와 하나 되어야 하는 사람이 전체의 흐름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해서 나뉘고 다른 무리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무리에서 나뉜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사람들끼리 더 친하다거나 자주 만나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을 짓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므로 이에 대해 육체의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좇아서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공격하기도 하지요. 수군수군, 비방하며 정죄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심히 분쟁하고 배척하는 일들도 생기지요.
잠언 18장 1절에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한 말씀처럼, 자기 소욕을 좇아 나뉘었기 때문에 지혜를 배척하고 비진리를 좇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 유익을 좇아 당을 짓고 분리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위, 즉 다윗의 왕위를 빼앗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서서히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시작하지요. 마침내 자기편으로 포섭한 사람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렇게 궤계를 꾸며 당을 짓고 분리한 압살롬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외면하시니 아무리 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 가운데서도 당 짓는 일들이 있습니다. 누구파, 누구파 하면서 편을 가르고 분쟁하며 주의 종과 다른 성도들을 판단 정죄합니다. 이렇게 당을 짓고 다투다 보면 나중에는 분리하여 나가기도 하지요.
선교회 안에서나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뽑아서 머리로 세웠다면 그가 조금 부족함이 있고 생각이 다르다 해도 일단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어둠이 짙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믿는다 하면서도 죄에 물들어 양심이 무뎌지고, 참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도님들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감사하며 신속하게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며 빛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3-09 오전 10:48:41 Posted
2022-03-13 오전 11:58: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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