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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3차 영혼육 (9) 이생의 자랑 [요일 2:24-25, 15-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4.03
지난 시간에는 육을 벗어 버리기 위해 먼저 끊어야 할 세 가지 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설명했고 오늘은 이생의 자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들의 영과 혼과 육은 썩어지고 변질되는 육에 속한 영혼육이 아니라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의 요소들을 벗어 버려야 하는데 먼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하지요.
이런 것들이 있으면 육을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육의 것들이 더 좋아지게 되고 더 취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이어 이생의 자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이생의 자랑’이란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려는 속성’을 말합니다. 남들 앞에 육의 것들을 자랑하기 원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원하므로 여러 가지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면 자랑하는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연로하신 분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들어 보면 “왕년에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거나 가문 자랑, 자녀들로부터 받은 선물 자랑, 손자 손녀들이 예쁘고 똑똑하다는 등 자랑이 화제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여성들이 모이면 남편에 대해 자랑하거나 비싼 옷이나 집, 보석 등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기의 외모나 재능에 대해서도 은근히 자랑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며, 때로는 권세 있는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과 친분이 있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귀영화, 지식, 재능, 외모, 이런 것들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이생의 자랑을 추구해 나가지요.
진리와 선과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에 가치를 두고 이것들을 얻기 위해 악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재물이나 권세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경쟁자를 모함하거나 비겁한 계략을 쓰기도 하며 뇌물과 폭력을 사용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랑하는 어떤 것으로도 참된 가치와 생명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이생에서는 많은 종을 거느리고 날마다 잔치하며 호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죽어서는 아랫음부의 불꽃 중에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죽어서는 혀를 적실 물 한 방울조차 얻지 못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이전에 가졌던 모든 부귀영화가 참으로 헛되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왕으로서 큰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을 때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고백하였습니다.
세상 영화를 통해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참된 만족을 얻을 수도 없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에서 얻은 부귀영화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지요. 우리나라만 해도 악한 방법으로 이생의 자랑을 구해 나간 권세자들은 그 말로가 참으로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누렸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 힘을 잃고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숨어사는 경우들이 있지요.
사업가들이 권세자들에게 뇌물을 주고받거나 부정한 방법을 취하다가 오히려 더 어려움에 빠지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하다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지요.
또한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교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불화하게 되고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생의 자랑을 취하는 사람을 멀리하시며 돕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2. 자신의 자랑을 구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멸망당한 사울

잠언 16장 5절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했고, 야고보서 4장 16절에는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처럼 악하게 자신의 자랑을 구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멸망당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중 하나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처음 왕으로 세움 받을 때의 사울은 자신을 높이려 하거나 왕이 되려고 들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망해하며 숨었고 수줍음을 타며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왕이 되어 왕의 권력을 맛보게 되자 나중에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조차 어기는 사람으로 변질되고 말았지요.
한번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치라 하시면서 아말렉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사울은 아말렉을 공격하기는 했는데 아말렉의 양과 소들 중 좋은 것들은 살려두었고 아말렉의 왕도 살려서 포로로 잡아옵니다.
좋은 양과 소를 보니 죽이기가 아까운 마음이 들었고, 또 적군의 왕을 사로잡아 오는 것이 자신의 승리를 더 빛나게 할 것 같았던 것입니다.
탐심과 이생의 자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을 보내사 그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사울은 당장 회개하고 겸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을까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0절에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했지요.
사울이 지금 “내가 범죄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 마음은 겸비한 것도 아니요 회개하여 용서받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높임 받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 선지자 사무엘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가서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세워달라는 것만 강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용서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나중에는 이방인과의 전쟁에 져서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명예를 구하고 체면을 세우려고 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되었지요. 그러니 이생의 자랑을 구했던 일들이 결국 허사로 돌아갔고, 이 땅에서는 비록 그가 왕이었다 해도 지옥에 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이생의 자랑을 구하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은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어 오히려 멸망을 자초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3. 주 안에서의 자랑은 하나님께 영광

고린도전서 1장 31절에 “…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했습니다. 앞에서는 ‘자랑하지 말라’ 했는데 이번에는 ‘자랑을 하라’ 말씀합니다.
이는 헛되고 무익한 이생의 영광을 구하고 자신을 높이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을 자랑하는 것이지요.
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 영광, 이런 것들은 마음껏 자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영광은 변하거나 썩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영원하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지요. 이런 것을 구하고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며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하늘의 상급을 받는 길입니다.
이러한 주 안에서의 자랑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그 자랑을 듣는 사람에게 믿음과 소망을 심어 주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열심을 심어 주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안에서 이생의 자랑을 구하려 하면서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분명히 겉으로는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 속 깊이에서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 하고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의도가 들어있지요. 예를 들면 “나는 교회 온 지도 오래 되었고 많은 직분을 갖고 있다” 혹은 “영적으로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하거나 “영적인 사람들과 사귐이 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은근히 높임받기 원하고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 원하는 경우입니다.

또 어떤 영적인 일들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거나 영안이 열려서 어떤 것을 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내용들을 전할 때에도 자신이 어떤 마음에서 말하는지 스스로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은혜를 나누기 위해,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전하는 사람이라면 전할 만한 상황인가를 분별하며 듣는 사람들의 신앙 수준과 마음을 고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영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목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며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으로 말을 전합니다. 이럴 때는 그 말이 덕이 되지 않고 자신의 자랑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예로, 칭찬받을 때와 책망받을 때 자신이 어떤 모습인가 점검해 보아도 이생의 자랑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을 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칭찬받는다 해서 들뜨거나 책망받는다 해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칭찬받을 때는 더 겸비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책망을 받는다 해도 자신이 변화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심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노력해 나갈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보서 3장 20~21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천국 시민이라 해도 그 영광이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어떠한 자랑을 구했는가에 따라 천국에서도 그 영광과 빛이 달라집니다. 주 안에서 부지런히 자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린 사람일수록 더 빛난 영광 중에 거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축복을 주시지만 천국에서는 더욱 정확한 공의에 따라 각 사람에게 영광을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영광 돌린 것을 드러내셔서 무수한 천군 천사와 천국 백성들 앞에서 영원한 자랑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요 13:32).
잠시 잠깐이면 지나갈 헛된 세상에서 어떤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랑과 영광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4-06 오전 10:14:18 Posted
2022-04-13 오후 2:13: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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