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주일 대예배

제목
3차 영혼육 (12)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요일 2:24-25, 롬 8:5-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5.01
오늘은 혼의 분야 중 영에 속한 혼의 작용과 육에 속한 혼의 작용, 곧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에게 혼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배운 지식을 떠올려서 생각할 수도 있으며, 지식을 지혜롭게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혼의 작용은 영에 속한 것과 육에 속한 것, 곧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으로 나뉩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혼의 작용’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작용하는 과정은 서로 다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은 진리의 마음이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영, 혼, 육 중에 영이 주가 되어 혼을 주관하는데 마음을 영으로 일군 만큼, 곧 진리로 마음을 채운 만큼 마음속의 진리가 혼을 주관하는 것이지요.
가령, 애매히 자신을 욕하는 상대가 있다고 할 때 마음을 영으로 일군 사람은 혼에 앞서 진리의 마음이 먼저 반응을 합니다. 사랑, 용서, 화평 이런 마음이 작용하게 되고 그 마음이 혼을 주관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그 마음을 평안케 하는 답을 해 줘야겠다. 그의 오해를 풀어줘야겠다’ 이렇게 혼의 작용을 진리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까지도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서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진리의 마음이 주관하는 대로 혼이 순종하여 다음에는 육을 움직여 나갑니다. 부드러운 낯빛으로,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상대에게 답을 하게 되지요.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옵니다. 이때는 혼이 주가 되어 마음속의 비진리를 통해 마음을 요동하게 만들지요. 만약 자신을 욕하는 것을 들으면 먼저 혼적인 작용이 일어나 ‘무례하다. 불쾌하다.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을 무너뜨린다’ 등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혼을 주관하는 것은 사단이고, 사단이 악한 생각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러한 혼의 작용을 따라 자기 안에 있는 비진리의 마음, 곧 혈기, 감정, 미움, 자존심 이런 것들이 요동하여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대와 부딪혀서 혼을 내줘야 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육도 이 비진리의 마음에 순종하여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됩니다. 거친 음성으로 욕을 하기도 하고, 무엇을 던지거나 때리는 등 폭력을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육, 곧 몸은 껍질과 같아서 알맹이인 영과 혼이 주관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2.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

원래는 영이 혼을 주관해야 하고, 혼은 영에게 순종하여 육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의 영은 죽어 있어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영이 주인 노릇을 못하니 혼이 주인이 되어서 육을 주관해 나갑니다. 주님을 영접해서 일단 영이 살아났다고 해도 마음을 열심히 진리로 채워 나가야 영이 점점 더 힘을 얻어 혼을 주관할 수가 있지요. 영이 혼을 주관할 때는 어떤 것을 접한다 해도 진리의 생각이요, 영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영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는 혼이 먼저 작동을 해서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를 통해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영이 죽은 세상 사람이라 해도 때때로 양심에 남아 있는 선을 좇아 진리에 속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비진리를 통해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혼을 주관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사단이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에게 순종하여 육신의 생각을 할 때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는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영으로 들어가기는 더욱 어렵지요.

1)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의 세계의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육의 세계에서 일반적인 지식과 이론, 틀 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동정녀가 예수님을 잉태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즉시 자신의 이론을 동원합니다. ‘동정녀가 어떻게 잉태할 수 있는가?’ 하거나 ‘사람이 물 위를 어떻게 걷겠는가? 예수님께서 얕은 곳으로 걸어 오셨겠지’ 하고 나름대로 이론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영으로 듣게 되면 이런 영적인 말씀도 능히 이해가 되고 믿어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니 능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수긍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당장 자신의 유익에 관련된 일에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시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섬김 받기보다는 섬겨 주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축복이라 하시지요.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이런 말씀이 이해가 되지도 않고 순종하지 못하므로 축복도 받지를 못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해도 ‘당장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수입의 십분의 일씩이나 드려’ 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색하게 행하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손해를 볼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대로 보장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상대를 섬기고 낮아지면 뭇사람에게 인정받아 머리되게 해 주시지요. 믿음으로 하나님께 심으면 분명히 영육 간에 차고 넘치도록, 또는 그 이상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은 말씀대로 순종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지도 못합니다. 마태복음 19장에 한 부유한 청년이 예수님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지요.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영생이 있다는 사실도 믿으며 나름대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 왔습니다. 선한 마음도 있어서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말씀을 들을 때 나름대로 예수님을 신뢰하여 나온 것이었지요.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든 보화를 나눠 줘야 한다고 하니 육신의 생각이 먼저 동원됩니다. ‘이 많은 재물을 다 나눠 주다니 너무 아깝다’, ‘예수님을 좇는 것이 과연 내 인생과 모든 소유를 걸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런 저런 육신의 생각이 앞서 근심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다 나눠 주면 하늘에 쌓인다고 해도 그 말씀을 믿기가 어렵고, 재물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으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영원한 천국 보화를 얻을 기회를 놓치고 말지요.

2)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자신의 틀 가운데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길을 스스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간증을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줄을 잘 압니다. 능히 암도 에이즈도 치료하시며 부러진 다리도 즉시 고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몸에 가시와 같은 이물질이 깊이 박혀서 빠지지 않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몸에 박힌 가시는 질병이나 연약함과 다르니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이런 육신의 생각에 막혀 있으면 기도를 받을 믿음도 생기지 않고 기도를 받아도 믿어지는 믿음이 오지를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으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니 이것 또한 해결해 주신다’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3)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고 응답과 축복을 막을 뿐 아니라 영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장애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매사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에게조차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혹은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당연히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럴 때도 “내 부족함을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면 되지, 속히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힘을 줍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가 이 모양이니 하나님께서도 날 사랑하실 수가 없겠다. 아무리 해도 이것밖에 안 되니 난 구제불능인가보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힘을 잃고 기도를 못하거나 사명 감당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할 자리에도 보이지 않지요.
똑같은 아픔을 겪었다 해도 영의 생각을 한 사람은 평안과 기쁨 속에 더 신속히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반면에 육신의 생각을 통해 좌절하고 낙심한 사람은 그만큼 뒤쳐지고 늦어지는 것입니다.
이 밖에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경우는 일상에서도 무수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이론을 앞세우기에, 나름대로의 틀을 깨지 못해서, 부정적인 성격 때문에 등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게 되는 여러 원인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마음의 비진리, 곧 육신 때문입니다(롬 8:5). 아무리 자신이 진리로 생각하려 하고 영으로 생각하려 해도 마음에 육신을 버리지 않으면 육신을 좇아 육신의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다 벗어 버리고 영의 마음을 이루면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서 영의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생각을 하는지, 영의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다른 결말을 보게 됩니다. 그 영혼의 문제까지도 좌우하게 되지요.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아 육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범사에 진리를 좇아 영의 생각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영생의 길로만 인도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5-04 오전 11:38:15 Posted
2022-05-06 오전 10:49:34 Updated

다음 글 3차 영혼육 (13) 이전글
이전 글 3차 영혼육 (11)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