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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 (6) 아랫음부 [눅 16:22-2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3.05
지난 시간까지는 윗음부와 양심 심판, 어린아이들의 구원 기준, 아담과 하와 구원 여부 등을 설명했고, 오늘부터는 아랫음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음부라는 공간을 알아야 합니다. 음부는 천국에 속한 윗음부와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로 나뉩니다.
천국에 속한 윗음부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구약시대에,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윗음부에 대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공중강림 때까지 천국, 낙원의 대기 장소에 거합니다.
윗음부에는 3일 동안만 머물지요. 이 3일은 육의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영의 세계에 적응하는 기간입니다. 또한 윗음부는 잉태된 지 6개월 이상 된 태아가 죽은 경우 그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지도, 경작 받지도 못했기에 이처럼 별도의 공간에 거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4절에 보면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바로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곳이 아랫음부입니다. 아랫음부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불과 유황의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지요. 여기서는 과연 누가,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대기 장소, 아랫음부

인류 역사 이래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곧바로 지옥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인간 경작이 다 끝나고 백보좌 대심판을 받은 후에야 불 못이나 유황 못에 들어가지요.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바다와 사망과 음부가 죽은 사람을 내어주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은 심판받아 불 못에 던져진다’고 사도 요한이 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옥의 구조를 살펴보면 지옥의 제일 윗부분이 아랫음부입니다. 더 깊이 내려가면 그 아래에는 더 깊은 지옥, 곧 대심판 후 들어가는 불 못, 유황 못이 있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는 악한 영들을 가두는 무저갱이 있지요.
물론 지옥이 실제로 이런 모양인 것은 아닙니다. 지옥의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것이지요. 이처럼 지옥은 깊이와 차원이 다른 공간이 여럿 있다는 것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은 지금 아랫음부에서 형벌을 받으며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영혼도 있고 며칠 전에 죽은 영혼도 있지요.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자신이 지은 죄악대로 참혹한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의 표정을 보면 구원 여부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습니다. 생전에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도 호흡이 끊기기 전 마지막 순간에는 영안이 열려 영의 세계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때 두 천사를 봅니다. 이 두 천사는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마중 나온 천사들이지요. 환한 빛 속에 대기한 천사를 보는 영혼은 미소 띤 얼굴로 평안히 눈을 감습니다. 그 시체도 비교적 오래도록 경직되지 않지요. 하루 이틀 지나도 마치 잠든 듯 생전의 모습이 잘 보존됩니다.
반면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두 지옥 사자가 와서 그 영혼을 아랫음부로 끌고 갑니다. 죽기 직전에 영안이 열려서 이 지옥 사자를 본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숨을 거둡니다. 두려움과 고통 속에 죽어가지요. 그래서 얼굴빛도 어둡고 몸도 굳습니다.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지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구원 여부가 확실치 않아 천사들과 지옥 사자들이 이 영혼을 두고 힘을 겨루기도 합니다. 천사들이 영혼을 데려가려고 하면 지옥 사자들이 “이 사람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다.” 하며 계속 송사하지요. 이런 경우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 주어야 합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도록 계속해서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하지요. 이렇게 해서라도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으로 가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2. 아랫음부 큰 구덩이에서 3일간 적응 후 형벌 받을 장소로 이동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두 지옥 사자에 의해 아랫음부로 끌려가 큰 구덩이 같은 곳에 던져집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이 몸에서 빠져나온 후 윗음부에서 3일간 적응 기간을 거치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도 아랫음부의 대기 장소에서 3일 동안 거하지요. 큰 구덩이가 바로 이런 대기 장소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도 육의 몸을 벗은 직후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따라서 지옥이라는 영의 세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구원받은 영혼들이 윗음부나 낙원에 머물 때는 기쁨과 평안만 있습니다. 눈물, 슬픔, 애통이 있는 이 땅의 삶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랫음부는 이렇게 안식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 땅의 슬픔,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이 시작되는 곳이지요.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고 극심한 고통만 점점 가중될 뿐입니다. 지옥 사자에게 끌려와 대기 장소, 곧 큰 구덩이에 던져질 때부터 이런 끔찍한 현실과 맞닥뜨립니다.
크고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갖가지 새들이 날아와서 구덩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쪼아댑니다. 이 새들은 이 땅의 조류와는 다르지요. 징그럽고 흉측하게 변형된 영물(靈物)들입니다.
‘이미 육에서 분리된 영혼이 무슨 고통을 느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새들 또한 영물이기 때문에 영혼에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이 새들에게 쪼이면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지요. 날카로운 부리에 쪼일 때마다 몸이 찢겨 피가 나고 살가죽이 벗겨져 나갑니다. 피하고자 해도 피할 곳이 없으니 다만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거나 몸을 움츠릴 따름이지요.
수많은 영혼이 커다란 구덩이 안에서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옥을 믿지 않던 이들도 이런 상황에 닥치면 ‘지옥이 정말 있었구나.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두려움에 몸서리칩니다. 다시 돌아갈 길도 없고 이 끔찍한 현실을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큰 구덩이에서 3일을 지낸 영혼들은 자신의 죄목과 죄악의 경중에 따라 형벌 받을 장소로 옮겨집니다. 천국도 광활하지만, 지옥이라는 공간 역시 넓고 깊습니다. 지옥의 일부인 아랫음부에만도 이렇게 대기 장소를 비롯해 수많은 장소가 있지요. 곳곳마다 구원받지 못한 무수한 영혼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3. 끝없이 되풀이되는 아랫음부의 참혹한 형벌

아랫음부는 어둡고 습하면서도 불길이 끊임없이 지글지글 타오릅니다. 스산함과 불쾌함이 소름 돋게 하지요. 끊임없이 때리고 찌르고 찢는 고문으로 인해 영혼들은 쉼 없이 비명을 지르며 신음합니다.
눈이 있어도 눈이 있는 것이 아니요, 입이 있어도 입이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손이 있고 발이 있어도 손발이 있는 것이 아닌 고통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팔다리가 한 번 잘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리 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생명이 다해 죽으면 그만이지요. 또한 기절이라도 하면 잠시나마 극심한 고통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팔, 다리, 목 그 어느 부위를 베어낸다 해도 다시 붙습니다. 피를 흘리고 또 흘려도 다함이 없습니다. 고문으로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으스러지며 장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도 잠시 후면 원래대로 회복되지요. 그러면 고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형벌이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지요.
영혼은 영원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잠시 잠깐의 쉼도 용납되지 않지요.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신음이 끊이지 않고 귓전을 울립니다.
전쟁터의 참혹한 풍경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로하신 분 중에는 격렬한 전쟁을 직접 겪어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영화나 사극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해 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접전이 벌어진 전장에는 부상자들이 여기저기 쓰러져서 신음합니다. 자기 팔다리가 저 멀리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울부짖는 사람, 눈알이 빠진 사람, 머리가 터져 뇌수까지 쏟아져 나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람,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요란한 폭음에 손 내미는 동료도 뿌리치고 혼비백산하는 병사들, 자욱한 포연과 먼지로 숨 막히도록 매캐한 공기, 피비린내, 신음과 비명, 울부짖음, 이런 혼란스러운 전장을 가리켜 사람들은 흔히 ‘생지옥’이라고 합니다.
이런 전쟁터와 비교할 수 없이 너무나 두렵고 참혹한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형벌로 괴로워하며 ‘어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까?’ 고민하지만 도저히 실낱같은 희망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아랫음부’라는 참혹한 현실뿐이지요.
거기에 더해 더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과 유황의 지옥이 보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결국 불 못, 또는 유황 못에 떨어질 것을 압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당장 고문으로 인한 고통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가중되지요. 그 지옥을 보면서 “이곳도 이렇게 괴로운 데 저 불 속은 어떨까?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어떻게 견딜까? 내가 왜 이곳에 들어왔을까?” 하며 후회하고 또 후회합니다. 끝없는 한숨과 탄식만 터져 나올 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국에서 일부 무신론자들, 곧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버스에 다음과 같은 광고판을 달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 이는 진화론의 주창자인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와 맞물려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신이 없다면 정말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신이 없는 삶, 정확히 표현하면 하나님이 안 계신 삶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무엇을 즐기며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많은 것을 절제하며 좁은 길을 갑니다. 그러나 억지로 힘들게 가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장차 받을 영광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기쁘게 갑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느끼고 체험하기에 행복하게 달려가지요.
하나님께서 안 계신다면 천국도 지옥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껏 즐길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이 없는 사회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 절대적인 진리가 없는 세상이 결코 편할 리가 없지요. 그 누가 참된 선을 추구하며 살겠습니까?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짧은 인생을 최대한 즐기려고 욕망을 좇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야말로 고통스러운 생지옥이지요.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직 선을 좇아 살아가심으로 지옥과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날마다 깨닫고 체험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3-03 오후 3:18:08 Posted
2023-03-10 오후 1:02:3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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