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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지옥 (13) 아랫음부 3단계 형벌 - 사울왕 [삼상 15:22-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5.07
지난 시간에는 3단계 형벌을 받는 인물 중 빌라도에 대해 말씀드렸고, 오늘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1. 날카로운 창에 배가 꿰뚫린 상태로 매달려 형벌을 받는 사울

아랫음부에서 3단계 형벌을 받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날카로운 창에 배가 꿰뚫린 상태로 매달려 있습니다. 창날이 날카로울 뿐 아니라 창에는 뾰족뾰족하고 예리한 송곳이 촘촘하게 박혀 있지요. 날카로운 창에 찔린 고통과 함께 체중 때문에 몸이 아래로 쳐지면서 상처가 찢어지는 고통을 받습니다. 창이 관통한 복부는 창에 박힌 예리한 칼날, 송곳 같은 것에 의해 헤집어져서 피부 속의 근육, 뼈, 내장이 다 들여다보입니다.
이 창은 어떻게 잡아 뺄 수도 없고 빼려고 해 봐야 빠지지도 않습니다. 오직 지옥 사자만 이 창을 움직일 수 있는데 징그러운 짐승의 탈을 쓴 지옥 사자가 때를 따라 다가와서 창을 돌립니다. 그러면 창날과 창에 붙은 흉기가 같이 회전하면서 온 뱃속을 더욱 심하게 헤집어 놓지요.
지옥 사자는 영혼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깁니다. 그러니 좌로 우로, 이리저리 얼마나 세게 돌리겠습니까? 이때 폐와 위, 심장과 창자 등 배 속의 장기들이 다 파열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뱃속이 찢겨서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도 금세 상처가 회복됩니다. 그러면 다시 지옥 사자가 다가와서 창날을 돌리지요. 이처럼 사울은 아랫음부에 떨어져 왜 이런 참혹한 형벌을 받는 것일까요?


2. 사울이 아랫음부에 떨어져 참혹한 형벌을 받는 이유

1) 왕의 권세가 주어지니 겸손함이 사라지고 교만해져
왕위에 오를 때만 해도 사울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지목하시자 사무엘은 사울에게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지요(삼상 9:20~21).
또한 백성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왕이 될 사람을 제비뽑자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울은 짐 보따리인 행구 사이에 숨어 있었지요(삼상 10:20~22). 이렇게 수줍어하는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지목되자 어떤 비류는 “사울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며 멸시했지만, 자존심 상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았지요(삼상 10:27).
얼마 후 길르앗 야베스 지역에 암몬이 쳐들어오자, 사울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 암몬을 물리치고 백성을 위기에서 구합니다(삼상 11장). 하나님의 붙드심 속에 그 후로도 승승장구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이런 마음을 크게 보시고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이 마음이 변질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면 하나님 앞에 더 겸비해야 하는데 금세 교만해졌지요. 예를 들면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직접 드립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범죄를 거듭하지요.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치라 명하시면서 남녀노소 사람들은 물론 가축까지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미 출애굽 당시에 정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하고 심판을 선포하셨지요(출 17:14). 즉 아말렉은 이미 멸망 받을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던 것입니다.
이런 아말렉을 그대로 남겨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나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그 불씨를 철저히 없애야만 했지요. 그런데 사울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산 채로 잡아끌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옵니다. 양, 소 등 좋은 가축들도 끌어오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변명과 남의 탓만 해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바라셨지요. 그러나 백성들의 계속되는 간청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백성 중에 가장 준수한 사울을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을 좇지 않고 명을 따르지 않으니 마음 아프셨지요.
사무엘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근심해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나아가 처음 왕이 될 때의 마음을 상기시키려 하고, 사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지요(삼상 15:17, 22~23). 그러자 사울은 회개하는 듯했지만, 자기 과실을 백성 탓으로 돌리고(삼상 15:24) 그래도 백성 앞에서 왕으로서 체면을 차리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삼상 15:30). 사무엘은 이런 사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결국 이 사건 이후로 죽을 때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지요. 사무엘의 권면을 누차 듣지 않은 사울은 결국 버림받고 맙니다.
만약 어떤 과실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권면이나 지적을 받는다면 곧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하며 과실을 숨기려 해서는 안 되지요. 속히 돌이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실 수 있고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사울이 죄를 지적받았을 때 그때라도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사울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변명하고 남의 탓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비해야 했지만 여전히 명예에 눈멀어 왕으로서 백성에게 높임 받으려고만 했지요. 자신이 잘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 주셨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3) 탐욕과 시기심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 해
사울은 점점 더 명예, 권세를 지키기에 급급해 눈이 어두워져 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을 대적하기에 이릅니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의 거대한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또 보내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자, 그의 자질을 인정하고 군대의 머리로 세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때부터 사울의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왕좌를 위협하는 자라 하며 다윗을 주목하지요.
그러나 다윗에게는 어떤 욕심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성할 뿐이었지요. 이런 다윗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은 큰 위기를 여러 차례 모면했습니다. 다윗은 나라와 백성, 사울 왕을 위해 생명도 바칠 수 있는 마음이었지요.
사울은 이런 다윗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탐욕과 시기심 때문에 오히려 다윗을 일평생 원수로 여기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거하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85명이나 살해하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계수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이 계속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는데도 당장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는 사울의 핍박을 통해 다윗이 연단 받아 정금같이 나올 것을 아셨기에 참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인내하시며 사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 사울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지만 그때마다 살려 주었습니다. 이처럼 사울을 향한 진심을 보이자, 사울은 자신을 선대 하는 다윗의 진심을 느끼고는 감동해 소리 높여 울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때뿐 중심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해 또 쫓아다니지요.
사울은 끝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고 돌이키지 않은 채 자기 욕심을 따라갔습니다. 결국 전장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요. 이는 이방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울은 이렇듯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좇기보다 자신의 명예, 자존심을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왜 그가 아랫음부에서 창에 꿰뚫려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다윗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 때문에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지기도 했지요. 이런 악행에 대한 대가로 아랫음부에서 날카로운 창에 배를 찢기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렇게 매달려서 신음하면서 이전에 주어졌던 회개의 기회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왜 불순종했던고, 내가 왜 하나님을 대적했던고.’ 물론, 이미 지옥에 떨어진 마당에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터져 나오는 후회와 탄식의 깊은 한숨은 어쩔 수가 없지요. 그나마 형벌의 고통이 더 심해지면 이런 후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악한 원망의 말, 불평의 말을 쏟아 놓습니다.
그러고 있노라면 다시 상처가 아물고 소름 끼치는 지옥 사자가 다시 창을 돌리기 위해 다가옵니다. 지옥 사자가 시야에 들어오면 다시금 공포에 휩싸이지요. 앞으로 당할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막혀 옵니다. “나를 그냥 두소서. 제발 그만하소서.” 애걸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사울을 볼 때 더욱 흡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옥 사자는 창을 잡아 돌립니다. 돌리고 또 돌릴 때마다 사울은 몸이 찢기는 고통을 쉼 없이 받습니다.


3. 사울을 교훈 삼아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들 앞에 항상 겸비해야

우리는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 앞에 높아져 있진 않은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직분이 높을수록 사랑받고 인정받는 자리에 있을수록 첫사랑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하지요.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 주시지 않았다면 사울처럼 지옥에서 고통받을 존재들이지요.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은혜 주시고, 건강과 물질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충성하는 일꾼이 되게 하셨지요. 이런 우리가 그 무엇을 ‘내가 했다고,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나 믿음의 형제들 앞에서나 항상 겸비해야 합니다. 섬김받으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지요. 마음을 할례 하여 교만, 명예, 권세, 물질에 대한 탐심 등 정욕을 철저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런 비진리의 행함이 나왔다면 곧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곤고함을 느낍니다. 사랑의 징계도 임하지요. 그러나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범죄하면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종이나 일꾼을 시기하여 모함하고 훼방하기도 하고, 교회 안에 당을 짓고 분리하기도 합니다.
사울 왕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표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울의 결말을 교훈 삼아서 결코 이런 길을 걸어서는 안 되지요. 특히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달아서 생각 또는 말로라도 대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참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사랑받고 인정받을수록 더욱 낮아집니다. 또 하나님을 진정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할 여유가 없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장 높은 그곳, 곧 새 예루살렘으로 이끄실 때까지 늘 가장 낮은 곳에 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5-04 오후 1:48:56 Posted
2023-05-21 오후 4:04:3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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