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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성령 성령강림주일 [행 2:1-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5.28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에 관한 세 가지 분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자신이 고난받을 것과 제자들 곁을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지요. 이 ‘또 다른 보혜사’가 오면 영원토록 함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십자가 고난을 받아 돌아가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약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지요. 부활의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4~5). 이에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 이후 이 말씀을 붙잡고 마음을 같이해 기도에 힘썼지요. 그러던 중 오순절 날이 이르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고 불과 같은 성령이 함께 모인 각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처음 임하신 성령은 믿는 각 사람의 마음 안에 계시면서 ‘돕는 영’으로서 역사하십니다. 마치 가정교사처럼 진리를 가르쳐 주시지요. 때론 어머니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믿음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 문에 골인할 때까지 방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항상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계시는 것보다 성령이 오시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의 몸을 입으셨기에 육의 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성령은 영이시기에 육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모하는 모든 영혼과 동시에 함께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바로, 이 성령에 대해 잘 정립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령은 찾고 사모하는 이들에게 오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했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죄인의 마음에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믿지 않은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은 주님을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뒤에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죄를 벗어 나가며 아버지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다시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사람에게는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 받은 모든 자녀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기를 원하시지요(눅 11:13). 또한 영계의 법칙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으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찾고 사모하는 이들에게 오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각 사람이 얼마나 성령을 찾고 사모하느냐에 따라 성령의 도우심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성령 충만함 받기를 얼마나 사모하느냐에 따라 각 사람의 성령 충만한 정도는 달라지지요. 성령 충만함이란 성령이 각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진리를 통해 영의 공간을 느끼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육이 전혀 없고, 죄가 전혀 없으며, 평안과 기쁨과 감사만 있는 영의 공간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준비가 돼야 하고 간절히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려면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하지요. 죄의 담이 있으면 성령이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도 죄를 회개하고 성령 충만함을 사모함으로 간절히 구하면 성령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이처럼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 반드시 은혜와 충만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계속 구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중심의 찬양,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성령 충만함 받기를 사모해야 하지요. 그러면 처음 성령 받았을 때의 충만함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만큼 영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해 영의 공간을 느낄 때는 매우 행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의 맛을 느끼게 해 주신 것이지요. 얼마나 ‘영’이 좋은지를 맛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더욱 사모함으로 영을 추구해야 하는데 여기서 멈춰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지 않고 예전에 받았던 성령 충만함도 잃어갑니다. 그러면서 영을 추구하던 마음이 다시금 육으로 향하기도 하지요. 정녕 천국을 소망한다면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찾고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성령 충만함을 입고 있다 해도 항상 성령 충만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늘 사모함으로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물론 내 편에서도 노력해야 하지요. 처음엔 잘되지 않아도 노력해 나가면 미처 생각지 못한 기도 제목들도 성령이 술술 떠올려 주십니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위해 늘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롬 8:27).
여러분 자신보다 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알고 계신 분이 성령이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 얼마든지 기도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깨달을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성경은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 기록했지요. 또한 성령 자체가 진리의 영이시니 성령이 성경에 담긴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아십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음성이나 주관이나 감동함으로 그 뜻과 의미를 깨우쳐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며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의 임재와 주님의 부활에 관한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했지요. 이처럼 구약의 예언을 베드로가 깨닫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이신 것도 베드로는 알았지요. 성령이 깨우쳐 주셔서 알게 된 것입니다. 이후로도 베드로와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의 구원의 도를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겼다고 했지요(행 4:13).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말씀을 깨닫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예배 시간입니다.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의미는 바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예배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여러분 편에서 ‘진정’으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바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에 임할 때 신령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말씀을 깨닫는 능력도 주시고 때에 따라 적절한 말씀도 떠올려 주십니다(막 13:11). 전도나 심방, 상담할 때 성령은 상대의 심령에 꼭 필요한 말씀을 떠올려 주실 수 있지요. 이러한 성령의 능력 가운데 일하면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능력은 참으로 무한합니다. 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도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신앙생활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함으로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유 들면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도 자기 힘으로 자동차를 끌고 밀며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자동차의 엔진을 켜서 신나게 운전하고 가는 것과 같지요. 사람이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 멀고 힘든 길도 짧은 시간에 쉽게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은사들이나 권능들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성령의 능력은 큰 힘이 되지요.


3. 성령이 계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깊은 것도 깨닫는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이 계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깊은 것도 깨닫는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도 깨닫는 마음’이란 곧 영의 마음, 온 영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하나님에 대해 밝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영의 마음으로 바꿔 가는 역사는 오직 성령이 계심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요한복음 3장 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성령으로 영을 낳을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6장 13절 전반 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말씀한 대로, 우리 마음에 계신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진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뜻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지요.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음성과 주관에 열심히 순종하면 영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죄에서 떠나게 되고 빛 가운데 행하게 되지요.
마음에 원래 있던 육의 속성을 벗어내는 것도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속속들이 배어있는 육의 속성들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벗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 편에서도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노력하며 기도해야 하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육의 속성을 소멸하는 능력은 성령이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은 불로 육의 속성을 태워주십니다. 이처럼 육의 속성이 사라지는 만큼 육신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도 사라지지요. 예를 들어 자존심이라는 육의 속성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라진 사람은 섬김받지 못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는 육신의 생각이 들지도 않지요.
성령은 우리 마음을 정확하게 살피시면서 우리가 벗어야 할 육의 속성을 계속해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더 채워야 할 영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끊임없이 알려 주시지요.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해 나가는 사람은 신속하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참 자녀가 많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값진 열매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배려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재림하시기까지 주를 믿는 성도들을 친히 양육하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시지요. 이러한 성령을 보내 주심에 감사하며 더욱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5-25 오후 3:22:24 Posted
2023-06-02 오후 1:27:4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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