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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58) 아마겟돈 [계 16:16-18]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12.02
7년 환난이 시작되면서부터 지구상에는 끝없는 재앙이 계속됩니다. 천사가 일곱 봉인을 떼고 일곱 나팔을 불며 일곱 대접을 쏟는데 그때마다 재앙은 점점 더 심해지지요. 전쟁과 자연 재해들이 계속되고, 그로 인한 환경오염과 각종 질병이 창궐합니다. 7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들은 환난의 막바지에 이를수록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해져 가지요.

그런데도 7년 환난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인간 역사의 마지막 시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눈앞에 극심한 재앙들을 볼 때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지요.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봐도 사람들은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자연 환경 등 모든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더 7년 환난이 시작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져 가게 되지요.

하물며 7년 환난이 막바지에 이를 때가 되면 모든 상황이 어떻겠습니까?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고 점점 더 절망적으로만 변해 갑니다. 마침내 천사가 일곱 대접을 쏟게 되면 그때는 재앙들이 절정에 이르게 되지요. 지구 환경파괴와 오염으로 인한 질병의 재앙, 석유 자원 고갈로 인한 혼란과 분쟁 이런 것들이 심각한 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큰 전쟁의 조짐이 보이지요.

계 16:16에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바로 전쟁을 위한 모임입니다. 세 영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설명을 했는데 본문과 관련하여 좀 더 보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세 영은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 했고 각각 용의 입과 짐승의 입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 했습니다.

먼저 용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은 이스라엘의 머리 된 자를 통해 역사한다 했지요. 짐승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은 연합 정부의 머리 된 자를 통해서 역사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은 연합 정부와 결탁하는 종교의 수장(首長)을 통해 역사하지요.

이 더러운 영들을 ‘개구리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개구리는 징그러운 형상을 갖고 있으며 그 입에서 나는 소리가 요란하고 시끄럽지요. 종류에 따라 좀 덜 징그러운 것도 있지만 흉측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애굽에 내린 열 재앙 중에도 이 개구리 재앙이 들어 있습니다. 이는 애굽의 왕 바로가 개구리와 같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지요. 개구리 한 마리만 보아도 질색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이것이 길거리나 온 집 안에 가득하고 부엌에, 밥그릇 안에, 잠자리에까지 올라온다면 얼마나 징그럽고 끔찍하겠습니까?

징그러운 개구리는 영적으로 가증한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개구리의 그림이나 형상을 합당치 않은 곳에 사용해서는 안 되지요. “이들이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이적을 행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늘 목도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같은 실제적인 표적을 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감언이설과 속임수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람들을 미혹하여 온 천하가 휩쓸리게 될 큰 전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 각국이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과 악함 속에서 전쟁을 일으키고자 스스로 모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면적으로는 결국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차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만들어졌기에 각국이 이렇게 움직이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 여건이란 석유 자원의 고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동안은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에서 연합 정부가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습니다. 각종 자원들도 연합 정부를 통해 공급되었지요. 그런데 석유 자원이 고갈되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이로 인해 세계는 혼란스러워지고 각 나라들은 자기 살 길을 찾게 되지요.

특히 그동안 잠잠했던 강대국들의 동요가 더욱 심합니다. 강대국들은 나름대로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은 연합 정부에 협조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길을 택해 왔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연합 정부만 믿고 의지해서는 안 되겠다. 조금 남은 석유 자원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직접 움직여야겠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연합 정부에 내주었던 세계의 주도권을 다시 잡아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이러한 움직임들이 연합 정부에 포착됩니다. 그러자 연합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중동과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 국가들을 포섭하여 힘을 모으고자 하지요.

그래서 세 더러운 영의 주관을 받는 자들 곧 연합 정부의 머리, 그들과 결탁된 종교 집단의 수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머리 된 자가 중동의 주변 국가들을 현혹하여 모아들입니다. 그러면서 감언이설로 설득을 하지요.

“강대국들이 지금의 체제에 불만을 품고 중동 지역의 석유를 장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너희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연합 정부가 너희를 더 윤택하게 해 줄 수 있고 다른 강대국들로부터도 지켜 줄 수가 있다.” 대략 이런 내용들로 설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16절에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한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아마겟돈에 대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므깃도를 지명합니다.

므깃도는 갈릴리 남서쪽 위치한 요새 도시로 고대로부터 유명한 전쟁터 중의 하나였지요. 그러나 여기서 아마겟돈이란 어떤 구체적인 지명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파괴자의 모임’이라는 의미이지요. 세계를 파괴해 나가는 자들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다시 한번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이제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을 쏟게 됩니다. 일곱 번째 마지막 재앙을 설명하기에 앞서 본문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성도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주십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신 것입니다. 이런 참혹한 재앙들과 상관이 없으려면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는 주님을 믿는다 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자신을 점검케 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임금의 잔치 자리에 초청되어 나왔지만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 한 사람이 나오지요. 보통 잔치 자리도 아니고 왕이 베푸는 잔치입니다.

준비 없이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심히도 무례한 것이 되지요. 모두 최고의 예복을 정성껏 차려 입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예복 없이 앉아 있으니 금방 눈에 뜨이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그에게 와서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민망하여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지요.

마 22:13-14에 보면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잔치 자리에 초청되어 나왔다는 것은 그래도 주님을 믿는다 하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요. 자신은 일단 초청을 받았으니까 당연히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복이 없으니 결국 쫓겨나더라는 사실입니다.

예복이 없다는 말은 곧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 가운데 살았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나는 주를 믿는다.” 하고,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영적으로는 잠들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와 기도회에 참석을 하고 나름대로 직분이 있고 봉사 활동도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다 깨어 있는 것이 아니지요.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에 할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에서 입을 수 있도록 정결한 신부의 예복을 준비해야 하지요.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움과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다 했으니 7년 혼인잔치에 들어오지 못하고 결국 구원과도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날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님이 곧 오신다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조차도 귀를 기울이지 않지요. 마지막 때의 징조로 큰 재앙들이 일어날 때는 당장에는 놀라고 긴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빈번해지면 그마저 익숙해져 버리지요.

그러니 7년 환난에 이르기까지 재앙과 환난이 점점 심해져가도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늘 있어 왔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油價) 하나만 봐도 여러분이 잘 알 수 있지요. 갑자기 크게 올랐다가도 조금은 내리고, 또 올랐다가 조금 내리고 이렇게 반복하는 동안 사람들의 감각이 무디어져 온 것입니다.

당장은 큰일 날 것처럼 난리를 하다가도 이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지요. 마찬가지로 큰 재앙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피해를 입어도 그런 일들이 계속되면 익숙해져 버립니다. 이런 재앙들이 특별히 마지막 때의 징조라고 생각하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눅 17:27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사람들은 심판이 임하기 직전까지 썩어질 이 땅의 일들에 열중하다가 갑자기 끝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깨어 있지 못하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마지막 때라고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라고는 하지만, 설마 그렇게 급하게 주님이 오실까? 그래도 아직은 좀 더 여유가 있겠지?”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하든 깨어 있어서 시대의 흐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아야 하지요. 옷은 영적으로 ‘마음’을 의미한다 했습니다. 자기 옷을 지키라는 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일수록 세상 어디를 가도 더러움에 쉽게 접할 수 있지요.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고, 썩어질 것에 마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의 날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며 부지런히 성결 되기 위해 힘써야 하지요. 그래야 주님께서 오실 때 온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보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들의 옷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롬 13:14에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했습니다.

갈 3:27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주님과 같이 거룩한 마음을 이룰 때 온전히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말할 수가 있지요.

골 3:12에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과 같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이런 거룩한 마음의 옷들을 입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 옷은 단순히 마음을 나타내는 비유에만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마음에 이루는 만큼 여러분에게 실제로 그에 합당한 옷이 입혀집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가운데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에게는 교통함의 옷이 둘러집니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옷처럼 둘러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장차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 마음에 이루고 행한 것들이 실제 보여지는 옷으로도 주어집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흰 세마포 옷이지요. 그냥 단순히 하얀 옷이 아니라 빛의 옷으로서 성결을 이룬 만큼 옷에서 발하는 광채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세세토록 살아야 하는 천국에서 늘 똑같은 세마포 옷, 한 벌만 입는 것은 아니지요. 성결의 옷, 거룩함의 옷, 찬송의 옷, 충성의 옷, 온유의 옷, 기도의 옷, 의의 옷, 진리의 옷 등 각자에게 주어지는 옷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가 있습니다.

옷의 색깔과 문양도 다양하지요. 기본적으로는 모두 흰 세마포 옷이라 했지만 경우에 따라 화려한 색깔들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의 옷은 이 땅의 단순한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등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붉은 색 옷이라고 하면 단순히 붉은 색의 옷이 아닙니다.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옷이지요.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 밝게 빛나는 전구를 얇은 붉은 천으로 둘러싸면 은은한 붉은 빛이 배어나옵니다. 이런 것처럼 천국의 옷은 눈부시게 밝은 빛이 발해지는데, 그 안에 오묘한 색상들이 감도는 것이지요.

단순히 흰색의 옷만 아니라 다양한 빛깔의 옷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또 특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있다면 그에 해당하는 문양들이 옷에 새겨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 사역자였다면 천국의 옷에는 찬송의 문양이 들어가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를 무수히 쌓았다면 기도의 문양이 화려하게 수놓아집니다. 이런 문양들은 보는 성도들로 하여금 감동과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또 옷에는 여러 가지 장식도 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상급은 브로치로 주어진다 했지요.

이렇게 단순히 흰 세마포 옷 하나만이 아니라 빛깔도, 문양도, 옷에 착용하는 장식도 다양하지요. 이 땅에도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진 많은 옷들이 있습니까? 하지만 이 땅의 어느 시대, 어떤 왕족의 차림도 천국에서 주어지는 옷에는 비교할 수 없지요.

여러분이 더 성결을 이룬 만큼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며 상급을 쌓은 만큼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옷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 16:17-18에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일곱째 즉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는다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섯 천사가 대접을 쏟았습니다. 첫째 천사는 땅에, 둘째는 바다에, 셋째는 강과 물 근원에 쏟았지요. 넷째는 해에, 다섯째는 짐승의 보좌에 여섯째 천사는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았고요.

마침내 일곱 번째 천사는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았다 했습니다. 이는 이전 어느 재앙보다 더 광범위하고 큰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공기는 어느 일부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하늘에 사람이 사는 모든 공간에 있지요. 그래서 일곱 번째 대접이 공기에 부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전 세계에 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즉 이 음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음성입니다. “되었다” 하신 것은 일곱 번째 대접을 쏟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났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결국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다시 한번 알려 주시는 말씀이지요.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 속에 정해진 결과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 뇌성,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번개’는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예정된 일들, 언약하신 일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의미하지요. 다음으로 ‘음성’은 “하나님의 힘”을 나타냅니다. 힘차고 우렁찬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힘 곧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의미하지요.

이처럼 번개와 음성이 울려 퍼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가운데 말씀하신 바가 그대로 이뤄질 것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즉 “되었다” 말씀하신 대로 이제 모든 것이 끝마쳐지게 됨을 보장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뇌성’은 ‘진노’를 표현합니다. 지금까지 인간 경작을 이루시는 동안 참아 오신 모든 것들에 대한 진노를 나타내지요.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으시기 위해 인간 경작의 오랜 역사동안 천 년을 하루같이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점점 죄악으로 관영해 갔지요.

이제 경작의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 공의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으로 또 전에 없었던 큰 지진으로 나타나는 것이고요. 인류 역사상 큰 지진이 여러 차례 있었고 오늘날도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세계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7년 환난 동안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큰 규모의 지진들이 일어나지요.

이제 이 마지막 순간에는 7년 환난 동안 있었던 어떤 재앙보다 크고 창세 이후로 보지 못했던 사상 최대의 지진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진노가 복합적으로 분출됨으로써 천지가 진동하는 것이지요.

이런 번개와 음성과 뇌성, 큰 지진이 이 땅에 펼쳐지게 되는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엄청난 핵전쟁이지요. 즉 7년 환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어마어마한 핵전쟁이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장차 천국에서 어떤 옷들을 입고 싶으십니까? 어떤 문양과 장식을 원하시는지요? 그 소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성결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상급도 열심히 쌓으시고요. 이런 소망 가운데 깨어 있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충성도 할 수 있지요. 깨어 있는 사람만이 의 가운데, 진리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마음에 할례하며 결국 성결을 향해 달려갑니다. 여러분이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잠자고 있는 신앙인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니까? 충성하십니까? 성결을 향해 전진해 나가고 있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반드시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천국의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하고 천국의 잔치에 함께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자리에 꼭 함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2-07 오전 11:38:29 Posted
2023-05-19 오후 2:47:4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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