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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70) 천년왕국, 곡과 마곡 [계 20:7-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3.31
천년왕국 동안 이 땅에는 마치 그림 같은 삶이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는 수로 시작했지만 아름다운 환경 속에 평안하게 살면서 참혹했던 7년 환난의 기억도 점차 멀어집니다. 점차 인구가 불어나 땅에 가득하지만 서로 다투거나 고통을 주는 일은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도 없지요.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어노는 세상에서 부족한 것 없이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안하게 살던 사람들이 천 년이 마치고 사단이 무저갱에서 잠시 풀려나면 순간에 미혹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주어진 삶에 불만이 없었는데 이제는 교만과 시기 질투, 미움, 혈기 등 악한 생각과 감정들이 요동합니다. 더 이상 영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싫어지고 자신들도 섬김 받기를 원하지요. 영의 사람들이 빛난 성에서 존경받고 사는 것처럼 자신들도 좋은 것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이런 미혹을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은 먼저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불만과 불평을 말하면서 또다시 미혹해 갑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악한 생각을 전하여 그 세력을 규합하게 되고 이들은 순식간에 큰 무리를 만들게 되지요. 마치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감염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순식간에 악한 생각에 물들어 갑니다. 전화나 전파를 통해 서로 연락할 수는 없지만 말과 마차를 통해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불평 세력들이 순식간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합한 조직을 본문 8절에는 ‘곡과 마곡’이라 표현했지요. ‘곡과 마곡’이란 말은 에스겔 38장에도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에스겔서와 다른 의미입니다. 에스겔서에 나온 내용은 장차 구체적으로 풀어 드릴 때가 있을 것이고 본문에서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곧 육의 사람들이 연합하여 만든 조직, 단체라는 정도로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천년왕국이 진행되면서 인구가 많아지면 이들도 나름대로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7년 환난 중에 살아남았던 육의 사람들은 이미 문명과 조직 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후손들에게도 조직에 대해 전해주므로 천년왕국 동안에도 이 땅의 사람들은 쉽게 질서와 조직을 세울 수 있지요.

물론 주님과 영의 사람들의 주관 아래에 있기에 머리된 육의 사람들이 어떤 독재 체제를 만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육의 사람들 자체적으로도 규율과 질서 속에 통제되는 조직이 생기고 그들 중 머리급이 있다는 말이지요.

육의 사람들은 모두가 좋은 환경에 살지만 각자의 기질적인 차이가 있다 했습니다. 체력이나 지혜, 달란트, 성품 등이 서로 다르지요.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머리급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풀려나면 이런 머리급들부터 표적으로 삼아 미혹합니다. 그들을 먼저 미혹하는 것이 영향력도 더 크고 미혹의 파급 효과도 더 확실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악한 생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가족으로, 민족으로, 대륙으로, 결국 전 세계로 번져갑니다. “그 수가 바다 모래 같다” 했으니 결과적으로 심히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물론 육의 사람들 모두가 미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서도 영의 사람들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악한 사람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곧 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이릅니다.

9절에 나온 대로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포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이란 영의 사람들이 사는 성입니다. ‘성도들의 진’에서 성도들이란 육의 사람들 중에서 미혹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구요. 사단의 미혹을 받은 육의 사람들은 영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은 육의 사람들까지 공격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을 공격한다고 해서 영의 사람들이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육의 사람들이 몰려와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려는 위기의 순간,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그들을 소멸해 버리지요. 즉각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불로 심판받은 육의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지고 그들을 미혹했던 원수 마귀 사단도 다시 무저갱에 갇히게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이제 다시는 나올 수 없고 영원히 무저갱에 갇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 미혹의 사건 속에서도 배신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육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다만 정상적인 인간 경작을 받은 것은 아니기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낙원의 가장자리에 거하게 되지요.

그런데 10절에 보면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불못, 유황못은 사람들 중에서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 가는 곳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아니요 악한 영이므로 불과 유황못이 아니라 무저갱에 떨어진다 했지요.

그런데 왜 본문에는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운다”고 했을까요?
이는 실제 마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혹 받은 육의 사람들 중에서도 마귀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받아 배신의 사건을 주동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마귀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마귀짓을 했던 사람들이지요. 사람이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이면 악한 생각을 하게 되고 마귀의 역사를 받아들이면 그 악한 생각이 악한 행동으로까지 나오게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마귀의 역사를 받는 것과 마귀가 완전히 주관해 버리는 것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요. 종종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저런 악행을 할 수 있나?’ 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도 저버리고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행치 못할 범행들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도 ‘마귀짓’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악한 일들이 바로 마귀가 그들을 사로잡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므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 편에서는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마귀가 완전히 주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귀가 직접 행동하는 것처럼 추악한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때도 앞장서서 배신을 주동하는 육의 사람들이 바로 이같이 마귀의 역사를 직접 받게 됩니다. 이렇게 마귀에게 직접적으로 조종 받은 사람들이 불로 심판받아 불과 유황못에 던져진 것을 본문에서는 마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년왕국이 끝나고 나면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본격적인 최후의 대 심판이 시작됩니다.

영의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시작할 때부터 육의 사람들에게 누누이 가르치고 당부합니다. “천 년 동안은 평화롭게 살지만 때가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풀려나게 된다. 그럴 때 절대 미혹 받으면 안 된다.”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이면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섬겨야 한다.” 이렇게 거듭거듭 알려주지요.

또 육의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는 예전에 인간 경작과 7년 환난의 참상을 겪었고 천년왕국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압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악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지요. 또 직접 7년 환난을 체험 못한 후손들도 주님과 영의 사람들을 보았고, 천년왕국의 평안을 누려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참인 것도 압니다. 그러니 영의 사람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때는 명심하겠다고, 미혹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배신하게 되는 것일까요? 마치 정답을 미리 다 알려주고 시험을 보는데도 낙제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지요. 혹시 여러분 중에는 ‘참 이해가 안 간다. 나 같으면 절대 미혹 받지 않을 텐데’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냥 경작을 마치시면 될 텐데 굳이 심판 전에 이 천년왕국을 두셔서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가게 하시나?’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실 때는 의미 없이 이루시는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공의와 사랑 속에서 나타내야 하는 뜻과 섭리가 있으시기에 하나하나의 과정들을 엮어나가시지요.

그러면 첫 번째 질문부터 답을 해 보겠습니다. 육의 사람들은 그토록 진리를 보고 들었는데도 왜 사단의 미혹을 받게 되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왜 선악과를 따 먹었을까? 나 같으면 절대 안 그랬을 텐데’ 하지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는데도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이 미혹하자 아담과 하와는 그 미혹을 받아들입니다. 뱀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미혹했지요. 이런 말에 귀가 솔깃하니 결국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게 되고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자녀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일들을 얼마나 세세하게 가르쳐 주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해서 이렇게 육의 사람이 되었다. 슬픔과 고통, 사망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너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당부하게 되지요.

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피의 제사이니 반드시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라”하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듣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땅의 소산을 드렸습니다.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자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만을 갖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때도 긍휼히 여기셔서 그 마음이 악한 것을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권면하십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사랑받는 동생을 시기하여 동생을 죽이기에 이르지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 중에도 이 가인처럼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의 제사를 드리면서 곧 진리를 아무리 들어도 행치 않으면서 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으시나? 왜 나에게는 이렇게 축복이 없나? 원망하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하던 사람들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진리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비유를 들어 직장에서 미혹이 옵니다. 직장에서 딱 한 번만 우상 앞에 절하면 승진도 할 수 있고, 크게 보너스도 받는데 반대로 절하지 않으면 사장님의 미움을 사서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지요.

그럴 때 “나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수는 없다” 하시겠습니까? 그럴 분도 있지만 “하나님, 직장에서 쫓겨나면 이 나이에 취업할 곳도 없고 가족들은 어찌합니까? 내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절만 한 번 하겠습니다. 그 대신 보너스를 받으면 헌금도 많이 하고 구제도 하겠으니 이해해 주세요.” 이럴 경우도 있지요. 결국 가인처럼 육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 가룟 유다는 어떠합니까?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아 늘 진리를 듣고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봤고, 물 위를 걸으시는 것도 봤지요. 그런데도 결국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이니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게 됩니다.

천년왕국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진리를 듣고 또 들었어도, 자기 스스로 마음을 지키지 않고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이면 이렇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순한 양처럼 살았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천년왕국에 대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 끝 지점에 천년왕국을 두셨을까요? 인간 경작이 끝났으니 곧장 심판을 하면 되실 텐데 천년왕국의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이제 경작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와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6일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신 것처럼 6천 년의 경작을 마치고 천 년 동안 안식하시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경작 받은 지구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두루두루 돌아보게 하시는 의미도 있지요.

또 이와 더불어 이 천년왕국에 담긴 중요한 섭리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성을 체험하게 하는 인간 경작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이 좋다고 진정으로 느끼고, 자발적으로 그것을 택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것을 체험해 봐야 합니다. 곧 죄악으로 인해 오는 고통을 체험해 봐야 진정으로 선과 진리가 좋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진리를 택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자신이 배운 진리의 지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도 깨닫지 못했지요. 고통이나 슬픔, 죄와 사망을 체험하지 못했고 어떤 불행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식적으로는 들어서 알지만 마음 깊이 깨닫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 주신 하나님께 중심에서 사랑과 감사를 드릴 수도 없었지요.

그러므로 부족한 것이 없이 살면서도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선악과를 따 먹기에 이른 것입니다. 천년왕국 때 육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천 년 동안 수없이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막상 사단이 미혹하면, 자유의지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기지요. 이는 천 년 동안 어떤 고통을 겪어 보지도 않았고 사망의 무서움이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선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서 정말로 선이 좋다고 깨달았다면 절대로 악을 택할 리가 없지요. 그러나 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모른다면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처럼 그럴 듯한 미혹을 받을 때 흔들려서 악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에서 선을 택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상대성을 겪어야 하지요. 그래서 인간 경작의 과정이 있어야 했고, 인간 경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수 마귀 사단도 있어야 하고, 지옥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세 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똑같이 자유의지를 주어도 어떤 사람들은 선을 택하고 믿음을 지키지만 어떤 사람들은 악을 택해서 멸망으로 갑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만 만드시지 왜 배신하는 쭉정이 같은 영혼들을 만드셨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 악한 사람을 만들지 말고 선한 사람만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 자신의 선택입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좋은 씨를 심습니다. 모든 씨앗에 정성을 다해 비료와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지요. 그런데 같은 씨에서 자란 이삭 중에는 알이 꽉 찬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 빈 쭉정이가 나옵니다. 농부가 쭉정이를 만든 것이 아니라 농사의 결과로 나온 필연적인 부산물이지요.

쭉정이를 하나도 안 만들려면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알곡도 얻을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을 진행하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성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뿐 아니라 무수한 증거들을 통해 선과 악 중 무엇을 택해야 할지를 알려 주시지요.

우주와 천하 만물을 통해 창조주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셨으며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증거를 보여 주시고 아무리 간절하게 당부하셔도 결국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지요.

자유의지 속에 진리를 택한 사람은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 속에 악을 택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공의의 법에 따라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의지를 조정하셔서 무조건 선을 택하도록 만든다면 악을 택하여 지옥에 갈 사람은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 참 자녀도 나올 수 없습니다. 또 선만 택하게 만드시고자 한다면 이미 순종만 하는 천사가 무수히 있으니 굳이 인간 경작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구요.

그러나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부모라면 순종만 하는 로봇이 있다 해서 자기 자녀가 필요 없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로봇이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사람같이 생기고 사람처럼 행동한다 해도 참 자녀의 의미와는 다르지요.

또한 어린 자녀가 이래도 “예” 저래도 “예” 이렇게 자기 의지도 없이 부모에게 “예”만 한다면 뭔가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착하다고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좀 모자라게 보일 수도 있지요. 자녀들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로봇처럼 순종만 하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말썽도 피웁니다. 자기 생각에 맞지 않을 때는 불순종도 합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로봇과 비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부모에게 안겨주지요. 물론 부모에게 고통만 주는 자녀도 있지만,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를 때는 착하게 잘 자라기를 소망하면서 키우는 것이구요.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참 자녀들을 원하셨으며 그래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가 있으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는 악을 택하는 쭉정이도 나올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을 통해 우리에게 이처럼 인간 경작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정녕 이런 섭리를 이해하신다면 롬 11:33 말씀처럼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올 것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참 자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만세 전에 예비하시고 경작하시되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배치하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시지요.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 교회가 개척한 이후 여러분은 수없는 권능을 보고 듣고 체험하셨습니다. 또 나름대로 경작 받은 시간들을 통해 육이 얼마나 무익한 것이며 악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성결을 사모하며 천국 새 예루살렘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면서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은 얼마나 복되신지요? 그러나 그 신앙의 열매를 온전히 맺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정녕히 결단해야 합니다. 죄성을 덮어 놓고 숨겨놓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여 마음에서 벗어 버려야 하지요.

천년왕국 동안 화평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마음의 죄성을 버린 것이 아니므로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으니 악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신앙생활에 열심 내다가도 어느 순간 미혹을 받으면 실족하는 것입니다. 마음 근본에서 죄성을 뽑아 버려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신실할 수 있고 악의 길로 빠지지 않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기 전 아직 기회 있을 때에 부지런히 마음을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맞게 되는 그 순간 여러분은 “내가 정녕 후회 없는 경작의 시간을 보냈나이다.” 하고 고백할 수 있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장차 7년 혼인잔치와 천년왕국과 영원한 천국의 삶을 맞을 때 가장 영화로운 자리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3-30 오후 4:42:44 Posted
2023-04-03 오후 4:09:4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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