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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청년

제목
선하다는 것 바울,마리아 헌신예배 [요일 1:5]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4.25
2010년 바울 마리아 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헌신예배를 준비하신 모든 헌신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선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이 선을 여러분의 마음 안에 이루면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아들, 딸로 인정받아 지극한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으로 이룬 만큼 천국에서도 영광을 누리며 여러분의 모든 행함에 대한 상급도 온전한 것으로 받아 누릴 수 있지요.

이런 사실을 알기에 헌신자 여러분은 물론 우리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항상 선을 사모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선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선하고 이 성결의 복음을 듣기 전보다는 선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기준은 세상 사람들보다 선하다 하는 것이 아니고 예전에 비하면 선하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 말씀에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빛이라 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악이 전혀 없는 선을 이뤄야 하지요. 악이 없는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하심 속에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의와 틀 속에서만 바라보면 자신의 선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 인정받을 수 있는 마음을 나는 얼마나 이루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 악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선을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첫째, 악을 철저히 미워하고 싫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씀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선을 이루려면 당연히 선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해야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선을 사모한다 하면서도 악한 것에 여전히 미련을 두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성결되기 원합니다" 기도는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악을 버리지 않고 옛사람의 구습 속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실하기 원한다면 거짓이라는 악을 철저히 미워해야 합니다. 이제 거짓말을 안 해야겠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그 육의 속성 자체를 철저히 싫어해야 하지요.
그러지 않으면 기도 시간에는 "정직하게 해 주세요" 하고 열심히 기도하고도 현실로 돌아가면 기도한 것을 잊어버립니다. 자기에게 큰 유익이 될 만한 상황을 만나면 또다시 속이게 되지요. 물론 기도한 것이 있으니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이번만은 좀 대충 넘어가자 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있는 거짓된 속성 자체를 참으로 싫어하는 마음이 된다면, 큰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악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얼마나 자신에게 해롭고 부끄러운 것인지 여러분이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악을 싫어하여 버릴 수 있고, 그런 만큼 선을 사모하여 이룰 수 있지요. 사람이 어떤 악으로 인해 연단을 받으면 그 악이 얼마나 자신에게 해로운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물이 팔팔 끓는 주전자를 보면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지요. 그러나 뜨거운 주전자에 한 번 손을 데고 나면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주전자는 더 이상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이 아니라 뜨겁고 무섭고 아픈 것이 되지요. 자신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체험해 보았기에 좋아했던 것도 싫어하게 되고 스스로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이루기 위해서도 먼저 악을 철저히 싫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나쁘고 해로운지 스스로 깨달아야 하구요.
어떤 성도님이 혈기를 크게 내고 나서 며칠 동안을 감기 몸살로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환자 기도를 받아도 여전히 열이 펄펄 끓고 아파서 끙끙 앓던 중에 혈기 낸 일이 문득 떠올라서 통회자복을 했지요. 그러고 나서 기도받으니 금세 열도 내려가고 감기가 나았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교훈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혈기를 낸다는 것이 이처럼 나 자신을 해롭게 하는구나, 내가 악을 발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지킴 받지 못하게 되고 사단에게 송사거리를 내어 주는구나 깊이 깨닫게 되지요. 그러니 이제 어떻게든 혈기를 버리고자 진심으로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적질이나 간음, 교만, 미움, 시기, 질투, 무엇이든 그로 인해 연단을 크게 받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나를 해롭게 하는지 명심하게 되지요.
시편 119편 71절에도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했지요. 그러나 지혜가 있다면 이렇게 큰 연단의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아도 악을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연단 받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교훈 삼아 자신의 악을 발견하여 벗어 버리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악으로 연단을 받고 그것이 나쁜 줄을 깨달았으면 다른 모든 악도 나쁜 줄 깨닫습니다. 악을 하나하나 버릴 때마다 매번 연단을 받고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악은 하나님께서 심히도 싫어하시는 것이고 또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못되는 것입니다. 유익이 안 될 뿐 아니라 여러분의 축복을 가로막고 오히려 시험 환난을 당하게 하지요. 더 좋은 천국에 갈 수도 없게 하며 심할 때는 여러분을 지옥으로까지 끌고 갑니다.
로마서 12장 9절 후반절에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하신 말씀처럼 철저히 악을 경계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고 미세한 것이라도 용납하지 말고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둘째,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선한 사람은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 입의 말도 다 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아서 잘 가르치며 뜨겁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중심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하려고 해도 생각과 마음까지 선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 인정받을 수가 없지요. 선하지 않은 생각, 진리가 아닌 생각은 결국 악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물론 선을 사모하는 여러분이라면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선한 생각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해도 서운해 하거나 감정을 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하지요.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판단 정죄하지 않고 상대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며 상대의 입장에서 좋게 생각하려고 하구요.
어떤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도 그 생각이 진리가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나름대로는 선을 행한다 하면서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지요. 기관장님 한 분이 마음이 뜨거워서 큰 부흥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기관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함께 모이고 전도와 심방에 함께하자고 부탁하지요. 그런데 회원들 중에 어떤 분들은 기관장님의 애타는 마음에 상관없이, 마음을 잘 모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럴 때도 기관장님이 영의 생각을 한다면 조급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습니다.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저분도 더 충만할 수 있도록 내가 더 사랑으로 기도해야지 하지요. 끝까지 상대를 믿음으로 바라봐 줍니다. 자신도 기관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 모두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반면 육신의 생각이 있다면 어떨까요? 저분도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어찌 이렇게 충성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 속에서 판단 정죄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나한테 불편한 마음이 있어서 일부러 마음을 모아 주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오해하여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요. 옆 기관은 오히려 기관원들이 마음을 모아 뜨거운 마음으로 기관장을 도와주는데 우리 기관은 왜 이럴까? 나 혼자만 뜨거우면 무엇 하나 회원들이 안 따라 주니 너무 힘들다 하면서 이렇게 비교를 하니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따기도 전에 낙심해 버리기도 하지요.

이런 생각들이 모두 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선한 일을 하고자 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 만큼 선하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믿음으로 부흥시키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못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모습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욕심, 내가 보기에 선한 것을 주장하는 의와 틀,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것,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속상하고 참지 못하는 마음 등 여러 가지 육의 모습들이 나오지요. 여기서 진리가 아닌 생각들이 나오구요. 그러면서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 내고 있다 하면서 자신이 선을 이루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영의 생각을 하고 있는가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항상 깨어 분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선한 생각만 이루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셋째,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사랑이 있으면 악을 행치 않고 범사에 선한 열매를 맺지요.
물론 이때 사랑이라는 것은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육적인 사랑은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 해도 결국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랑입니다. 자기 유익과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상대에게 악을 행할 수도 있지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영적인 사랑이 있어야 선을 이룰 수 있음을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방탕한 삶을 살다가 거지 행색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큰 잔치를 벌여 주었지요.
그런데 탕자의 형 곧 큰 아들이 밖에서 종일 일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이 잔치를 보고는 그만 마음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열심히 일한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잔치를 벌여 주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책망을 받아야 마땅한데 마치 큰 공이라도 세우고 돌아온 것처럼 아버지가 잔치를 벌여 주셨으니 이해가 안 되지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할수록 자기가 화내는 것이 정당한 것 같고 그럴수록 억울한 생각, 서운한 생각이 더 밀려옵니다.
동생이 아버지의 돈을 받아가서 방탕하게 놀고먹을 때 나는 바보라서 집에서 일만 하고 있었나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아버지는 왜 나보다 저 동생을 사랑하시나 동생은 자기 몫의 유산을 다 받아 써버렸는데 아버지는 내가 일해서 불려 놓은 이 재산도 또 동생에게 나눠 주시겠구나 이런저런 온갖 생각들이 다 드는 것입니다. 형이 계속해서 옳고 그름만을 따지려고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만 계속 동원되고 선한 생각을 할 수가 없지요.

선을 사모하는 여러분은 형과 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버지께 서운하고 동생을 책망하고 싶어도 일단은 꾹꾹 참고 웃는 얼굴로 들어가시겠지요? 또 아버지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니 불평하지 말고 기쁨으로 순종해야지, 동생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니 다행이지 하고 어찌하든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선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선을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참으로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아버지의 선한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며, 단지 자기의 악을 눌러놓는 것뿐입니다.

만약 형이 이렇게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며칠이 지나도 아버지의 태도는 여전하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건강이 상했으니 좋은 음식들을 먹어라, 좀 더 쉬어라, 몸은 어떠니?" 하면서 계속 동생을 위로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형은 속이 더 부글부글 끓어오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선이니까,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도리이니까 그래도 참아야지 이런 것이 아니지요. 형이 아버지처럼 동생을 사랑한다면 판단, 정죄도 없고 서운함도 없습니다. 동생 때문에 내 유익에 손해가 갈까 봐서 계산적으로 따지는 모습도 없지요.
아버지의 마음이 그런 것처럼 동생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그 초라한 행색을 보니 불쌍하여 어찌하든 위로해 주고 싶지요. 그러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며 감정과 불편함이 요동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억지로 참아야 하고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면 악을 발하게 되지요.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사랑하면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고, 비록 잘못을 행한다 해도 믿어 주며 좋은 것도 다 내어 주고 희생하고 섬기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 리를 가자" 하면 십 리까지도 행복하게 동행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속옷을 달라" 하면 기꺼이 내어 줄 뿐 아니라 "겉옷은 안 필요하세요?" 하고 먼저 물어볼 수 있지요. 애매히 뺨을 맞는 것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찌하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여러분의 마음에는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임했는지요? 만약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선인가, 악인가" 고민되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사랑인가"를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으로만 행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마태복음 5장 48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이 성결의 복음을 들은 여러분이 범사에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선을 사모하여 이루는 것도 적당히 선한 정도에 그치지 말고 악이 전혀 없는 선을 이루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악을 철저히 미워하고 싫어해야 합니다. 둘째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이루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영육 간의 축복들을 다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이루심으로 사도 바울처럼, 또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선한 향을 여러분 안에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 진한 향에 감동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시며 장차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4-26 오후 7:44:06 Posted
2010-05-10 오전 9:06:2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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