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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 감사 주일

제목
감사의 마음 맥추감사주일 성찬예식 [시편 7: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6.07.0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본문 시 7:17에 보면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했지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며 그 은혜와 사랑 가운데 거할 때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지요.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이 시간은 우리가 드릴 감사의 제목 중 세 가지 분야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각각의 분야를 증거할 때마다 더욱 진한 감사의 향으로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마음의 향을 기뻐 받으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가정과 일터와 사업터에, 은혜와 축복으로 더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감사의 조건 첫째는 삶의 의미를 찾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참된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헛된 것을 좇아갑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세상 사람과 별 차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 명예와 권세, 지식, 그런 것에 가치를 두며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누리는 것을 목표 삼아 살아갑니다. 남보다 적게 누리는 것 같으면 마치 실패한 인생인 것처럼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며 좌절하고 낙심하지요.

반대로 부귀영화는 남부럽지 않게 누리면서도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여 외로워하고 더욱 세상 정욕만을 좇아가기도 합니다. '죽으면 다 끝'이라는 허무함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던져 버리기도 하고요. 마치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서 나침반이 고장 난 배와 같이 표류하는 모습들이지요.

성결의 복음을 들은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왜 살아가십니까?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새 예루살렘 아버지 보좌 앞에 이르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가는 시간들이지요. 머지않아 신랑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천국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먹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나가는 것이지요.

이런 소망 속에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얼마나 복되고 즐겁습니까? 구원해 주신 은혜를 떠올리면 기쁨이 넘칩니다. 죄를 버리며 변화되어가는 것만큼 성령의 감동함 속에 행복이 넘칩니다.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수록 강물같이 솟아나는 즐거움 속에 살다가 장차 천국에서는 이와 비할 수 없는 영광과 행복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진한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께 감사할 조건 둘째는 강건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영육 간에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이십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고 천국의 소망이 있으니 이 땅에서는 고통스럽게 살아라” 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아버지는 우리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 영혼이 잘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알려 주시지요.

출 15:26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 곧 진리 안에 거하면서 날마다 아버지의 형상을 찾아가는 분들이라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영적인 빛으로 둘러 주시므로 질병이 틈탈 수가 없지요. 이미 있던 질병 균도 태워지지요.

또 전에는 몸이 연약해서 쉽게 지치고 힘이 없어 툭하면 넘어지던 분들도 교회 다니면서 충성하고 봉사하다 보니 어느새 강건해지셨다는 간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게 강건해졌으니 사명 감당도 전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천국 소망도 더해지지요.

혹시 질병이 틈탔다 해도 여러분은 어찌해야 하는지, 방법을 압니다. 즉시 돌아보고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면 되지요. 또 회개할 것이 없다면 더욱 감사하고 기뻐하면 되고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을 내보이면 어떤 중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전능하신 하나님, 치료하시는 여호와께서 책임지고 고쳐 주십니다. 더구나 이 제단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권능이 있으니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더 수월하지요.

이렇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때 전보다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질병만이 아니라 어떤 인생의 문제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질병도, 그밖에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행복만 주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께 감사할 조건 셋째는 새 예루살렘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마 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었으면 그다음에는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낙원에서 1천층, 2천층, 3천층, 마침내 새 예루살렘까지 부지런히 침노해 들어가야 하지요.

어떻게 침노합니까? 행함으로 짓는 죄는 물론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결국은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도 뽑아내고 성결을 이루어야 하지요. 또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도 이런 영적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를 못합니다.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 예루살렘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지요. 낙원이나 셋째 하늘이나, 새 예루살렘이나 이런 표현들이 나와도 ‘다 똑같은 천국을 말하는 것이겠지’ 막연하게 짐작할 뿐입니다. 죄성을 뽑고 성결된다는 개념조차 없으니 성결을 이루고자 노력할 수도 없고요.

그러나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천국의 분류를 알고, 천국 생활을 압니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지요. 영적인 수준들이 얼마나 높으신지요? 이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할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알려 주어도 여전히 그 길로 가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에게 99%의 공의를 채우게 하셨고, 신뢰와 사랑으로 하나 된 분들이라면 나머지 1%의 공의만 채우면 갈 수 있게 하셨지요.

비유를 들면 아버지는 여러분에게 새 예루살렘 잔치의 초대장을 보내시면서 그 길을 자세히 알려 주는 지도까지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그래도 못 오는 사람이 있을까봐 이제는 새 예루살렘으로 올 수 있는 자동차까지 보내 주신 것입니다. 걸어서 오고, 뛰어서 오라는 것이 아니라 올라타기만 하면 자동차로 쉽게 올 수 있다 하시니 이제 더 이상 지체하고 망설이는 분은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더욱 기쁨과 감사로 새 예루살렘을 향해 전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후에는 성찬예식이 있습니다. 성찬은 우리를 위해 살과 피를 다 내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런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항상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함을 명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요 6:53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지요.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는다’는 뜻이지요. 그 말씀을 마음에 영으로 이루어서 자기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그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영적인 의미는 우리 성도님들은 대부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잘 아는가’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느냐’입니다.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직분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느냐에 따라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버려야 한다고 배웠으면 즉시 자기 안에 있는 미움을 발견해서 버리기 위해 노력해 가야 합니다. ‘싫다, 밉다’ 하는 느낌이 들려고 하는 순간 ‘아니야, 싫지 않아, 밉지 않아’ 이렇게 생각과 느낌을 바꿔야 하지요.

또한 행함으로도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예전 같으면 외면하고 지나갔을 사람을 만나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인사하고 손잡아 줍니다. 상대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 행하거나 기뻐할 만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한 번, 두 번 해 보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미움이라는 죄성이 마음에서 근본 뿌리까지 뽑히도록 불같은 기도를 쌓아 가야 하지요. 그럴 때 성령이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합니다. 사랑이 채워지고 미움이 뽑혀 나가는 것입니다. 혈기도, 간음도, 교만도, 탐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결국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지요.

오늘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 다시 한 번 성찬식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축복을 더 온전히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7-04 오전 11:34:37 Posted
2016-07-11 오전 11:07:1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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