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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제목
십자가의 도(17) 가상칠언(3) [요19:28-30,눅23:4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5.07.31
1. 제 5언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을 보면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건조한 기후에서 오랜 시간을,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상태였지요. 그러나 이때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신 것은 단순히 육적인 갈증을 호소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곧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핏값을 찾아드림으로 그 갈증을 해소시켜 달라고 당부하시는 영적인 말씀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핏값을 찾아드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까닭은 죄인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므로 예수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것은 바로 지옥으로 갈 영혼들을 열심히 전도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지요. 직접 전도하는 것 외에도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나 선교를 위해 물질로 심는 것 등 간접적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말씀하시자 어떤 사람이 해융에 적신 신 포도주를 예수님의 입에 대어 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입에 대신 것은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대로 신 포도주를 맛보셔야 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69:21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하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신 것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드시고 우리에게는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신 포도주, 곧 오래되어 묵은 포도주는 구약의 율법을 의미하며 새 포도주는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된 신약의 사랑의 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죄인들은 반드시 죄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하고 죄사함을 받으려면 매번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속죄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셨으니 곧 우리를 위해 신 포도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깨우쳐 주시고자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며 신 포도주를 받아 입에 대셨다는 사실입니다.

2. 제 6언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을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했는데 여기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의 의미는 인류 구속의 섭리를 다 이루셨으며 곧 사랑으로 율법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율법에 따르면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모든 죄인들이 사망의 형벌을 받고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매번 소나 양을 잡아서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속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7:27에는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과정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미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불쌍한 영혼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얼마든지 악한 사람들을 멸하실 권세가 있으시지만 아무 힘이 없는 약한 사람처럼, 죄인들의 손에 잡혀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시며 손발에 못 박히는 모든 고통을 당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사랑과 희생으로 인해 인류를 주관하던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권세가 깨어지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섭리를 다 이루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으니 우리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온전한 성결이며 온전한 충성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영적인 사랑, 팔복을 이루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말씀하신 대로 열심히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면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천국에서 새예루살렘의 하나님 보좌 가까이 거하며 친히 하나님을 뵈올 수가 있게 됩니다. 부지런히 신부단장을 마치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곧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때 “내가 다 이루었나이다” 고백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제 7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6을 보면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는데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며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말씀들이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기도할 때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구약이나 신약을 보면 누누이 기도할 때는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항상 큰 소리로 기도했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의학자들은 사람이 심히 애를 쓸 때 모세 혈관이 터져서 땀과 함께 피가 배어 나오므로 땀이 핏방울처럼 되는 현상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밤처럼 추운 시간에도 땀이 흐르도록 부르짖으시며 더구나 심히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셨기에,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며 아버지 앞에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육의 생명은 끊어진다 해도 영혼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영혼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지요.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혼육 설교에서 자세히 말씀드렸는데 육은 영혼을 담은 껍질에 불과하며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영원불멸한 것으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의 몸을 지으신 후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명의 씨, 곧 아담의 영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영 안에 영의 지식들, 곧 진리로 채워 주셨고 이렇게 생명의 씨를 진리의 지식들이 감싸고 있는 영 자체가 아담의 마음이었지요.

혼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기억 내용들, 그리고 기억한 것을 떠올려 생각하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들을 통틀어 말합니다. 원래 맨 처음 아담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움직여 나갔습니다. 영이 진리로 채워져 있으니, 영이 주관하는 혼과 육도 진리에 속해 있었지요.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므로 영이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활동이 정지되자 사람의 혼이 주인 역할을 하게 되어 육을 주관해 나갔는데, 혼은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아 비진리의 지식들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이렇게 마음에 비진리가 채워지는 만큼 원래 하나님께서 심어 주셨던 진리는 빠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 온유함,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빠져나가고 미움, 혈기, 자기 유익을 구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채워졌지요.

이러한 비진리의 지식이 생명의 씨를 둘러싸고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상태를 바로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활동이 멈췄다고 해도 사람의 영이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영은 영원불멸하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서 만드신 것이기에 소멸될 수가 없지요.

그러면 사람의 육이 죽으면 혼은 어떻게 될까요? 뇌가 있어야 뇌세포를 통해 기억도 하고 생각도 합니다. 육이 죽어 두뇌의 기억장치가 정지되면 영이 없는 짐승은 육과 함께 혼도 소멸되어 완전히 무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이 있는 사람은 혼의 작용이 마음으로 전달이 되어서 마음에 입력이 되므로 혼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 입력된 혼의 상태, 다시 말해 영혼이 결합된 형태로 영원히 존재하게 되지요. 그래서 주님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되는데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 교통하며 마음에 진리를 공급받아 진리가 채워지는 만큼 비진리를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진리가 마음에 채워지면 진리의 생각만 하며 진리로 행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영이 살아나고 온전히 진리로 마음이 채워지면 그런 사람을 “영혼이 잘되었다”고 하는데, 영혼이 잘되는 만큼, 곧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만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요삼 2절).

요한복음 3:5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 곧 영이 살아난 사람들은 수명이 다하면 영과 혼이 결합된 상태의 영혼이 천국으로 갑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나지 않아서 진리로 마음을 일구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영혼들을 수용하기 위해 예비된 곳이 지옥으로서 죄 가운데 살다가 수명을 다한 영혼들은 원수 마귀와 함께 영원한 지옥불 속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기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긴다는 기도를 올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섭리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여 이루셨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생사화복과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9-31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이런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깊이 마음에 새긴다면,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신다 하셨으니 하나님께 정녕 믿음으로 의지할 수 있다면 질병의 문제는 물론 직장이나 사업터의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께 맡겨드린 것처럼 여러분도 사람의 방법이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모데후서 4:8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되고 열심히 충성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룬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신다 해도 평안하게 아버지 앞에 영혼을 부탁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상칠언을 명심하여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큰 소리로 외치신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으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영화로운 의의 면류관을 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8-01 오전 2:19:31 Posted
2019-07-24 오전 10:47:5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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