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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제목
십자가의 도(18) 이 비밀이 크도다 [마27:51-54,엡5:31-3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5.08.14
1.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일어난 일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신 후 운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51-53을 보면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뒤 발생한 놀라운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했지요.

우선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은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막혀 있던 죄의 담이 헐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성전에는 성소 안에 지극히 거룩한 성소, 곧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앞에는 휘장이 드리워져서 이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일 년에 일차,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제물을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죄인들을 위해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속죄의 제물이 되신 후에는 성소의 휘장이 갈라진 것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어졌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인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19-2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했지요.

이렇게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죄를 속하셨기에 주님을 믿는 이들은 성전에 들어와서 예배할 수 있고 직접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교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범죄하면 직접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합니다. 고해성사를 받은 사람이 대신 용서의 기도를 하면 그것을 인해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범죄한 사람이 회개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믿음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 중보의 기도를 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회개는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직접 기도하는 것입니다. 회개 기도만이 아니라 모든 기도가 마찬가지입니다. 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시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는 휘장이 찢어졌을 뿐 아니라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 하여 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심히 애통하고 탄식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서 해조차 빛을 잃었습니다(눅 23:44). 흠 없는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내어 주신 아픔과 예수님께서 죽으셨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히 애통하시므로 이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또한 52절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수명이 다하면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부활하여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때문이지요.

구약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도 성경에 예언된 구세주를 간절히 사모하므로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믿은 사람도 있었지요. 이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육의 수명이 다하여 죽은 사람들을 ‘자던 성도’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20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이들도 부활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이 비밀이 크도다” 말씀의 영적인 의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성도들은 마지막 때 육으로도 부활하게 될 뿐 아니라 주를 믿는 순간 먼저 영적인 부활을 하게 됩니다.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에베소서 5:31-3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사람이 결혼을 하면 부모를 떠나 남편과 아내가 한몸이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 비밀이 크도다” 말씀하신 것은 바로 세상 사람들의 결혼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랑되신 주님과의 관계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세 전에 숨겨진 영적인 비밀, 곧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8:44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셨고 요한일서 3:8에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죄악된 세상에 속하여 범죄해 나가면 죄에 순종하는 죄의 종이요, 원수 마귀의 주관을 받게 되니 “너희 아비는 마귀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마귀가 아닌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이 됩니다. 또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결합하여 하나가 되지요. 이렇게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요한복음 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신 말씀대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성령으로 계속 영을 낳아가게 하시지요. 성령으로 영을 낳아간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에 진리의 지식을 채워나간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사람들은 영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요(롬 8:15, 갈 4:6).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에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의 마음에 대해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먼저, 명백한 진리의 마음과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 곧 하얀 마음과 까만 마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사람에게 생명의 씨가 생겼습니다. 그 후로 진리를 심어 주시므로 생명의 씨를 중심으로 진리가 감싸져 있는 것이 바로 아담의 영이요, 아담의 마음이 되었지요. 이렇게 맨 처음 아담의 마음은 오직 진리로만 채워진 하얀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담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자, 원수 마귀 사단이 아담에게 역사하여 죄와 악, 불의, 불법 등 비진리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마음에는 원래 있던 하얀 마음과 함께 원수 마귀가 심어 준 까만 마음이 공존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또 하나의 새롭게 만들진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양심으로서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우면서 스스로 입력한 것들이 더해져서 형성됩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서 자기 나름대로 가치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양심이지요.

이러한 양심은 사람마다 지역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다릅니다. 사소한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이 찔리는 사람이 있고 큰 거짓말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별로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사람마다 양심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 보기에는 선한 양심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선하다 하실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에는 분노와 서운함이 있어도 억지로 참고 용서하는 사람이 있을 때, 세상 사람의 양심으로는 선하다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선한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 앞에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서운함조차 없이 원수라도 사랑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진리의 마음, 비진리의 마음, 그리고 양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 마음 중에 하나님께서 처음 심어 주신 진리의 마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가 될수록 세상이 악해지므로 사람들의 양심도 점점 더 악해지지요.

맨 처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는 하나님과 교통하여 진리를 공급받아야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비진리가 들어오니 세 가지 마음이 생명의 씨를 점점 감싸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비진리가 생명의 씨를 감싸서 생명의 씨가 활동하지 못하게 하므로 생명의 씨는 점점 활동이 위축되고 꼼짝 못하게 되어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지요. 이렇게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생명의 씨가 비진리에 둘러싸여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켜 “사람의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식물의 씨앗이 죽은 것 같이 보여도 그 안에 생명이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싹이 나고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죽은 영이 언제 다시 살아나는 것일까요? 바로 성령을 받을 때입니다. 사람이 전도를 받아 복음을 듣게 되면 하나님의 빛, 생명과 진리의 빛이 마음속에 비추어집니다. 이때 마음에 남아 있는 진리의 마음, 선한 마음이 이 빛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성령은 마음 안에 생명의 씨와 결합을 합니다.

이렇게 성령과 결합하게 되면 생명의 씨가 꿈틀거리며 활동을 시작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교통이 시작되며, 다시 진리의 지식을 공급받기 시작하지요. “미움, 교만, 다툼, 혈기, 간음” 등의 비진리로 가득차 있던 마음에 “사랑하라, 섬기라, 낮아지라, 화평하라” 등의 진리가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마음의 비진리를 버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진리의 마음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 해도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마음을 주관하여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도록 하는데, 사단은 혼을 통해, 곧 생각을 통해 마음속의 비진리를 주관하게 됩니다. 비진리가 많으면 마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받기 전에 먼저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받게 되므로 육체의 소욕을 좇아 멸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비록 진리를 많이 들었고, 오랜 시간 기도를 한다 해도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버리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를 좇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해도 마음이 곤고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밝히 체험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0:5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하고 변화되어 세 가지의 마음 중 비진리의 마음을 벗어버렸다고 해도 그것으로 연단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양심의 악, 다시 말해 깊은 본성 가운데 숨겨진 죄성들을 발견하여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양심”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우면서 스스로 입력한 것들이 더해져서 형성된다 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양심이 다시 자신만의 깊은 본성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깊은 속 마음입니다.

본성 속의 비진리는 하나님의 의와는 맞지 않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나 옳고 정당하기 때문에 스스로 발견해서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연단 중에 사람의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를 발견하게 하시므로 온전히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순전한 욥이 그토록 연단을 받아야 했던 것도 자신의 의를 깨달아 버리기 위해서였지요. 욥은 세 마음 중에 비진리의 마음은 벗어버렸지만 아직 깊은 본성 속의 악은 버리지 못했는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을 받게 되자 본성 속에 숨겨진 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악이 발견된 후에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니 욥은 그 자리에서 철저히 회개할 수 있었고 온전한 진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말씀을 듣고 열심히 자신을 발견하고 깨달아 나가면 본성 속의 비진리도 신속하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남에게 해당하는 말씀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를 못하는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신앙의 발전이 더딘 것이지요.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고 본성 속의 비진리도 발견하여 벗어버리고 나면 이제는 진리의 마음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영의 사람이라 인정받게 되고 신령한 영의 세계를 항상 체험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마음에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으니 하나님 앞에 담대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고(요일 3:21-22) 범사에 믿음대로 역사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아 생명의 씨와 결합한 진리의 마음이 커진 만큼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고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더 가까운 곳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영을 낳아 장차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받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8-15 오전 1:56:38 Posted
2019-07-24 오전 10:47:5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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