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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66)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 [계 19:9-2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2.24
지난 시간에는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옳은 행실로 신부 단장해 가야 한다 했습니다. 마음을 얼마나 진리로 채워 영으로 일구었는가, 그것을 얼마나 옳은 행실로 나타내었는가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 입게 될 세마포가 결정된다 했지요.

천국에서 영원토록 입게 될 여러분의 옷이 이 땅에서 여러분이 영으로 일구어 행한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는 말입니다. 정녕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고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뵐 소망이 있다면 얼마나 정성스럽게 신부의 예복을 준비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도 때가 묻은 더러운 예복 차림으로 신랑을 맞으러 나갈 신부는 없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당연히 최고의 예복으로 차려입고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하고 싶을 것입니다. 가장 깨끗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세마포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정성을 다해 신부 단장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 9-10절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했습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물질이 많은 사람, 명예와 권세가 있는 사람, 자녀가 출세한 사람, 건강한 사람 등 나름대로 복에 대한 기준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시 1:1-2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또 계 1:3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하고 있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달아서 그 말씀 안에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신부의 자격을 온전히 갖추어 신랑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복된 사람이지요.

본문에 천사가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었다는 것은 이미 구원의 자격을 갖추고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사망이나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염려, 근심… 이러한 것들이 전혀 없는 복된 삶을 영원히 누리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장차 받게 될 이러한 영원한 복을 알고 믿기 때문에 늘 기뻐하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더 집착합니다. 천국이 너무나 좋은 것은 들어서 압니다. 이 땅에서 심고 행한 대로 장차 천국에서 상급으로 받게 된다는 것도 들어서 알지요. 하지만 정작 참된 믿음은 없기 때문에 결국 눈앞에 보이는 육적인 복을 좇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에 지식으로는 안다 해도 행함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복을 받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리를 듣고 알아서 믿음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복입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고 신부 단장 잘해 나가는 것이 진정 복된 일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약속대로 이뤄지며, 변함없고 영원하지요. 만약 하나님이 신실치 못하셔서 한 번 하신 말씀을 번복하시거나 인생들처럼 거짓말을 하신다면 그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이 복 있다 할 수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참이며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참된 약속의 말씀대로 장차 상급과 영광을 받을 것이니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사도 요한은 천사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들었을 때 너무나 기쁘고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전해 준 천사 앞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려 했으나 천사가 말리지요. 그 이유는 천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이시지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말씀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대언(代言)이란 남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대신하는 사람도 대언자라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대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하여 서로 화합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령의 역사로 나오는 대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보장하시며 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성령을 통하여 전하는 대언은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곧 진리 자체이므로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를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되지요.

그러므로 대언의 영이란 성령의 역사로서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영이신 하나님을 증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대언의 영은 사람이 자기의 배운 지식 가운데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 증거하지요. 이처럼 온전히 성령의 역사 가운데 증거하려면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라’고 가르치려면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성령의 주관과 인도와 역사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가 마음에 온전히 임하여 주님의 마음과 하나 된 사람은 언행의 모든 것이 성령의 주관을 받아 온전히 진리 안에서만 나옵니다.

그 단계에 들어가면 진리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지식으로 알아서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니지요. 설령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 해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진리대로만 행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그 자체가 곧 대언의 영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지요.

반면에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그것을 깨우쳐 앎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증거자 또는 대리자라 합니다. 대언의 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지요. 여러분도 온전히 진리의 마음으로 일구셔서 대언의 영으로 함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말씀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요일 2:1에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말씀하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인생들 사이의 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과 죄인 되었던 우리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대언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말씀에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므로 하나님과 인생들 사이에 대언자가 되어 주셨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11절부터는 주님의 지상 재림이 펼쳐집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했습니다. 마침내 이 땅의 적그리스도 세력이 붕괴되고 주님께서 이 땅으로 내려오시는 시점입니다.

여기서 “백마와 탄 자”가 나오는데 백마를 탄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했는데 충신(忠信)이란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이루셨다는 의미입니다. 진실이란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리셨고 오직 진실 자체로서 행하셨다는 의미이지요.

이처럼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진실 되게 이루셨기 때문에 공의로 심판하기에 합당하십니다. ‘공의’란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율법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심판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했는데 이는 주님이 원수 마귀 사단과 진짜 싸움을 벌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는 영적인 싸움을 의미하지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로부터 세 차례 시험을 받으실 때도 모두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영적인 싸움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는 바로 죄를 벗어 버리기 위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이지요. 또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12-13절에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했습니다.

주님의 눈이 불꽃같다 했는데 주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밝히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공의의 법대로 정확하게 심판하시지요.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다 한 것은 주님께서 얼마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영광을 돌리셨는지를 나타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어 영광을 돌린 사람에게 면류관을 상으로 내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구세주가 되심으로 이를 통해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일들에 대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으시지요.

여러분도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차 천국에서 상급으로 받게 될 면류관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면류관 중에 이름을 쓴 것이 하나 있고 자기 즉 주님밖에는 아는 자가 없다 말씀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시면서 분리된 아들들에게 각각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게 근본의 이름을 주신 것이 있지요. 바로 이 이름을 새겨 넣은 면류관이 있는데 그 이름은 태초에 함께 계셨던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물론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그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근본의 이름을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아시지요.

“주님께서 피 뿌린 옷을 입으셨다” 했는데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것을 나타냅니다. 이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심으로 생명을 얻게 하셨지요. 그런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오직 진리의 말씀대로만 가르치셨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명을 이루셨지요. 그래서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6절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합니다.

이 땅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호위하여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함께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역했던 선지자들과 주의 이름으로 사역했던 사도들 등 머리급에 있는 분들도 함께하지요.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이란 살아 운동력 있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것으로 만국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심판이 된다는 뜻이지요. “철장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한 권세로써 역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확한 공의대로 심판하신다는 뜻이구요. 어떤 행함의 열매를 맺었는가에 따라 칭찬과 상급 또는 형벌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 쓰였다 했는데 옷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모든 하늘들의 하늘을 품고 계시지요. 주님의 다리 역시 모든 하늘들의 하늘 위에 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 그 이름이 쓰여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모든 하늘들 위에 왕이 되시며 주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17-18절에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합니다.

한 천사가 해에 서서 외친다는 것은 공의 가운데 선포한다는 뜻입니다. ‘해’는 빛 곧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는 정확한 공의를 의미하지요. 이러한 공의에 따라 심판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새들이 와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육적인 의미에서 진짜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저주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비참하게 죽은 시체들의 고기를 새들이 날아와서 먹는 것은 저주를 상징하지요. 옛날 역사에 보면 저주를 받아 죽은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놔두었던 것을 봅니다. 왕들, 장군들, 장사들, 말들, 말 탄 자들이란 적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주를 대적한 자들입니다. 새들이 그들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이들이 공의의 심판에 의해 저주받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또한 새들이 자유 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도 먹는다 했습니다. 이는 명예나 권세, 부귀, 지위고하 등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사람들은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을 통해 그들이 행한 것에 따라 세세토록 고통을 받게 되지요.

19-21절에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했습니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란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지요.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란 주님과 주님을 호위하여 이 땅으로 내려오는 선지자들과 천군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이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주님의 군대와 맞서 전쟁을 한다 했는데 이는 실제로 전쟁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주님을 대적할 수 없으며 주님의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여기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아비규환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세상이 함께 파괴되며 적그리스도 세력들 간에도 살생과 파괴가 일어나지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주님의 지상 재림이 임박한 이 순간에 그동안 온갖 악을 자행해 왔던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거기다가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혼란과 절망만이 엄습해 오지요.

바로 이러한 상황들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생존을 위해 자기들 안에서도 살생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상 재림과 함께 이 모든 혼란도 종식됩니다. 그리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게는 준엄한 공의의 심판이 임하지요.

짐승이란 연합정부의 머리된 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란 연합정부와 결탁한 종교 세력의 수장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이때 거짓 선지자가 이적을 행했다는 것이 그들이 주님이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처럼 실제로 어떤 이적을 행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적이란 발달된 과학문명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했던 속임수들을 의미하지요. 적그리스도와 연합한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고 그의 말에 따르도록 만들어 갑니다.

이처럼 큰 악을 행한 그들은 이 땅에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곧바로 유황불에 던져집니다. 이 둘은 이미 그 죄악이 너무나 명백하기에 백보좌 대심판도 거치지 않고 지옥의 가장 뜨거운 유황불에 산 채로 던져지지요. 또한 그들과 연합했던 무리들도 7년 환난의 막바지 혼란 가운데 대부분 죽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백보좌 대심판이 있기 전까지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다가 결국에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 받지요.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운다는 것이 이처럼 죄악의 값을 치르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천년왕국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육의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던 부와 명예와 권세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지지요. 물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이 땅의 삶도 성실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땅의 삶은 결국 영원한 삶을 준비하기 위한 것뿐입니다.

고후 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말씀하지요. 더욱이 이 땅에 육으로 심고 쌓아둔 것 중에 내세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영으로 심은 것만을 장차 내세에서 영원한 것으로 받을 수 있지요. 먹든지 입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 또한 아버지를 사랑하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반드시 하늘나라에 쌓입니다. 오늘도 이처럼 영원한 것을 위해 영으로 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히 11:16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했지요. 바로 우리의 본향 그중에서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참된 복을 누리며 세세토록 거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2-23 오후 3:59:01 Posted
2023-06-04 오전 11:32: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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