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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72) 백보좌 대심판 [계 20:11-2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4.21
지난 시간에는 백보좌 대심판에 대해 본문 내용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보충하여 백보좌 대심판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도록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심판받는 장면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심판을 돕는 배심원들이 있습니다. 보좌 앞에는 책들과 생명책이 펴져 있고 또한 넓은 유리 바다가 보이지요. 책들에는 심판받을 모든 영혼들의 행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고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성도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원래 유리 바다는 생명수 강물로 채워진 천국의 바다입니다. 평소에는 맑고 투명하여 그 안에 아름다운 고기들이 노니는 모습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이지요. 그런데 심판 때는 이 바다가 첫째 하늘의 보좌 앞에 나타나 지엄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모든 사람의 행적을 뚜렷이 비춰 보이는 스크린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또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땅에서 경작 받은 무수한 영혼들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 25:33에 보면 대심판에 대해 설명하면서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양’은 구원받은 의인들을 비유한 것이고 ‘염소’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나타내지요. 곧 구원받은 영혼들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보좌 좌편에 위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난 시간에도 설명한 것처럼 심판받는 모든 영혼들이 첫째 하늘의 보좌 앞으로 직접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은 대부분 첫째 하늘에 있지만 윗음부나 아랫음부, 둘째 하늘 등에 있던 영혼들은 자신들이 있던 공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요.

단지 하나님께서 여러 공간들을 하나로 열어 주시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했습니다. 곧 아랫음부에 있던 영혼들도 영의 공간이 열리는 순간 첫째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 선 것처럼 그 위엄과 권세를 느끼게 됩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영혼들이나 지옥에서 이미 형벌을 받는 몇몇 영혼들도 공간이 열린 상태에서 심판을 목도할 수가 있지요. 심판받기 위해 보좌 앞에 나온 모든 영혼들은 각자에게 해당하는 육을 입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은 부활체를 입은 상태이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도 심판을 받기 위해 나름대로의 육을 입지요.

참고로 공간에 따라 다른 육을 입게 되는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경작받을 때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첫째 하늘의 몸을 입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수명이 다하면 마치 옷을 벗는 것처럼 몸에서 영혼만 빠져 나갑니다. 그래서 윗음부나 낙원의 대기 장소에 거할 때는 육이 없는 영혼 곧 영체로만 있다가 혼인잔치 때 부활체를 입게 되지요.

이 부활체는 둘째 하늘의 공간에 적합한 몸이지만 천년왕국 때는 첫째 하늘에서도 부활체로 지냅니다. 부활체는 비록 영의 몸이기는 하지만 아직 온전한 영체는 아니기에 육의 사람들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지요. 그리고 대심판 후에는 마침내 천국에 적합한 온전한 영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온전한 영체는 상급이 입혀진 몸으로 각 사람마다 그 빛과 향과 영광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육의 수명이 다하여 죽은 후 아랫음부에 갇힐 때는 육이 없는 영체의 상태로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심판이 끝나 지옥에 갈 때는 지옥의 공간에 맞는 육을 입게 되지요. 이 육은 영원히 썩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의 형벌을 고스란히 느끼며 고통 받는 육입니다.

심판을 위해 보좌에 앉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도 형상을 입으신 상태로 심판에 임하시지요. 대심판은 성부 하나님께서 홀로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재판장은 성부 하나님이시지만 주님과 성령님도 심판의 권세가 있으시지요.

요 5:27에 보면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하시므로 주님께 심판의 권세가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또 요 16:8에 보면 “그가(곧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하셨지요.

성령님께도 심판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과 성령님께서는 인생들의 입장에서 성부 하나님의 판결이 합당함을 보장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생들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해 보셨지요. 또 성령님께서도 인생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시므로 큰 자비와 긍휼로써 인생들을 대변하십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께서 어떤 한 영혼에 대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 사랑장 등의 기준에 비춰 판결을 내리십니다. 곧 그가 영원히 거할 처소가 어디이며 상급이 얼마나 된다는 것을 선포하시지요.

그러면 주님과 성령님께서 이 판결이 옳다는 것을 인간 경작을 받으신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보장하시지요. 그런데 이것으로 심판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증하는 단계가 더 있습니다. 곧 천국 백성들 중에서 가장 높은 서열인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선지자가 대심판을 보좌하여 심판을 돕는 것이지요.

이미 ‘천국’ 설교에서 설명한 대로 이 네 분은 최후의 대심판에서 제외됩니다. 그 거룩함과 온전함을 이미 인정받아 대심판이 있기 전에 처소와 상급이 정해지고 온전한 영체를 입으셨지요. 네 분 중 엘리야와 에녹은 많은 발언을 하지는 않지만 인간 경작 최고의 열매라는 자체만으로도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의 측면에서 모세는 율법의 측면에서 심판을 보좌합니다. 이에 더하여 배심원들이 있습니다. 백보좌 대심판의 배심원을 담당하는 것은 천국의 24장로입니다.

24장로가 어떤 분들인지는 계시록 4장에서 이미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서도 어떠한 한 분야가 더욱 탁월하여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분들이라 했지요. 믿음, 소망, 사랑, 충성, 선, 진실, 절개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보석 같은 마음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배심원의 자리에 서기 전에 대심판의 1순위로 먼저 심판을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심판대에 서는 것은 24장로 중에 서열이 가장 높은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심판대에 서게 되면 그 일생이 모든 영혼들 앞에 낱낱이 선포됩니다. 얼마나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는지, 수많은 연단 속에서도 어떻게 승리했는지, 그 믿음과 충성, 모든 공적이 드러나지요.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네 분의 선지자가 모든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하심으로 합당한 영광과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24장로들이 서열대로 심판대에 서고 각자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참고로 24장로 외에도 본격적인 백보좌 대심판이 이뤄지기 전에 먼저 상급 심판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인들 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막달라 마리아와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이분들이 심판대에 서면 그 선함과 주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온전하고 진실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들이 심판대에 서서 증언하는 자체가 인간 경작을 이루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본래 받을 상급 위에 더한 상급을 받게 되지요.

그러면 24장로들은 어떻게 배심원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이 땅에서는 배심원들의 다수결에 의해 피고의 유죄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지만 백보좌 대심판에서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24장로들은 심판의 측정 기준이 되어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결이 온전하심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지요.

예를 들어 뜨거운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충성한 사람이 심판대 앞에 서면 사도 바울에 비추어 심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충성이 얼마나 값지고 존귀한 것인가를 측정한 결과에 따라 상급이 주어지지요.

반면 하나님을 믿다가 핍박 때문에 주님을 떠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았던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심판대 앞에서 어찌하든 자기 입장을 옹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나는 너무 심한 핍박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하지요. 그러면 십자가를 거꾸로 지기까지 했던 베드로나, 사자 굴에 들어갈지라도 타협하지 않았던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나서게 됩니다.

그분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상황과 그것을 이겨낸 신앙을 말하게 될 때 이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요. 자신이 주님을 배신한 것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보좌 대심판은 재판장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네 분의 선지자 그리고 24장로들로 완벽한 구성을 이룹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혼자 이루신다 해도 그 심판은 온전하고 정확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분들로 확증하게 하심으로 한 영혼, 영혼을 심판함에 있어 더욱 더 신중을 기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대심판이 시작되면 먼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죄인들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 나와 대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형벌 받던 지옥의 대기 장소인 아랫음부에 그대로 머물면서 심판을 받지요. 그중에서도 죄가 무겁고 중한 사람부터 심판을 받아 불못 혹은 유황못으로 형벌이 정해집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먼저 심판받고 나면 다음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에 대한 심판은 벌을 주기 위한 형벌의 심판이 아닙니다.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정하기 위한 ‘상급 심판’이지요.

계 22:12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상급 심판은 평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됩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의 경우 심판의 순서는 믿음의 분량이 큰 사람, 상급이 큰 사람부터 진행됩니다. 이 모든 심판이 끝나면 모두가 한꺼번에 각자에게 주어진 천국의 자기 처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참혹한 7년 환난을 보았고 경작을 마무리하는 대심판의 장면도 목도했지요. 그리고 이제는 마침내 천국을 보게 됩니다.

본문 계 21:1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했지요. 여기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는 말씀은 “이제 첫째 하늘의 공간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지난 시간에도 설명한 것처럼 첫째 하늘은 인간 경작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므로 경작을 마친 시점에서는 폐해집니다. 그렇다고 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운행되거나 생명이 번성하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대심판이 끝나고 나면 모든 영혼들은 각자의 처소가 정해지고 영원히 그 정해진 처소에서 거하게 됩니다.

그러면 심판 후에 각각의 공간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지요.

셋째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구원받은 영혼들이 들어갑니다. 다만 구원받은 영혼들 중에서도 모태에서 죽은 영혼들은 셋째 하늘의 천국이 아닌 윗음부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이 있고, 경작을 받지 않은 아담의 후손들이 이전처럼 영원히 살아갑니다. 원래 둘째 하늘에는 빛의 영역과 함께 악한 영들이 권세 잡았던 어둠의 영역도 있었지요. 그러나 심판 후에는 악한 영들이 무저갱에 갇히므로 둘째 하늘에는 어둠의 영역이 사라지고 빛의 영역만이 남게 됩니다.

첫째 하늘은 앞에서 말한 대로 공간의 문을 닫으시므로 영원히 사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남겨지구요. 하늘과 달리 지옥의 공간도 있습니다. 경작받은 사람들 중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지옥의 불과 유황못에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다만 구원받지 못한 태아나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아랫음부에 머물게 됩니다.

끝으로 지옥의 가장 깊은 무저갱에는 악한 영들이 영원히 갇혀 있게 되구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한번 처소가 정해지고 나면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는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첫째 하늘, 천국의 성도들이 첫째 하늘로 가는 일도 없고 둘째 하늘의 사람들이 셋째 하늘의 천국에 가는 일도 거의 없지요.

물론 예외적인 경우들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경우 하나님께서 셋째 하늘의 성도들에게 보여 주시고자 둘째 하늘의 사람들을 부르실 수도 있지요. 그러면 둘째 하늘에서도 머리급 되는 몇몇이 올 수 있지만 각각의 공간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이 결코 자주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천국을 설명하기 전에 심판 이후 윗음부와 에덴동산의 삶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지요.

에덴동산에서는 첫 사람 아담 이후로 계속해서 평화로운 삶을 이어왔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쫓겨나고 첫째 하늘에서 인간 경작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에덴동산에 남은 아담의 후손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왔지요.

그들에게는 죄가 들어오지 않았기에 옷을 입어서 수치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지 않고 산다 해서 그들의 삶이 원시적인 것이 아니지요. 창세기 강해에서 설명한 것처럼 오히려 이 땅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문명을 누리고 삽니다. 뛰어난 지혜로 만들어낸 문명과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서로 사랑하여 계속 낳고 낳으며 번성해 왔지요. 이들은 대심판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이런 삶을 그대로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윗음부에서의 삶은 천국이나 에덴동산에 비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천국의 성도들 특히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천국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지요. 낙원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천국 곳곳을 원하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공의의 법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연회도 베풀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즐길 수도 있지요. 사모하던 선지자들을 찾아가 대화도 할 수 있고 행복과 안식, 영화를 마음껏 누리며 삽니다.

천국에서도 낮은 처소로 갈수록 그 자유는 점점 제한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2천층에 있는 사람들은 낙원에서 2천층까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3천층이나 새 예루살렘에는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지요. 낙원의 사람들은 낙원의 공간 안에서, 원하는 것을 누릴 수가 있구요.

또 에덴동산, 곧 둘째 하늘의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삶을 누립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며 자녀를 낳고자 하면 낳을 수 있고, 원치 않으면 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에덴동산이나 천국에 비해 윗음부는 상대적으로 가장 제약이 많은 공간입니다.

원래 윗음부에 있는 영혼들은 모태에서 태아 상태로 죽은 영혼들이라 했지요. 이들은 죽었을 때의 형태대로 윗음부에 머물다가 성도들이 부활할 때 이들도 육을 입게 됩니다. 이는 성도들의 부활체와는 달리 태아의 상태로부터 순간에 성장하는 몸이며 적당한 나이에 이르면 더 이상 늙지 않습니다. 이렇게 육이 성장하여 성인의 형태가 되었다 해도 정신적으로는 태아로 있을 때와 다름이 없지요.

그래서 이 육이 성장하고 나면 마치 백지와 같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영의 지식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그동안의 역사와 인간 경작에 대한 것, 천국이나 여러 공간에 대한 것,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배우지요.

이런 지식들을 배울 때는 다 같이 배우고, 쉴 때는 다 같이 쉬고, 이처럼 단체적으로 움직입니다. 셋째 하늘에 있는 영혼들처럼 이곳저곳을 여행하거나, 개별적인 자유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가 없고 정해진 시간의 흐름대로 살게 되지요.

비유를 들어 대학생은 수강신청을 할 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짭니다. 수업을 듣는 것도 듣지 않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초등학생은 대체로 학교에서 정해 준 시간표가 있고, 정해진 수업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윗음부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게 되며 천국과 달리 자유로운 것이 아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불행하거나 힘든 것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지만 더 많은 것을 누릴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고 우리보다 먼저 소천한 성도들은 지금 천국의 대기 장소에서 자신의 처소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 안의 대기 장소에서 그 밖의 성도들은 낙원의 대기 장소에서 기다리지요.

기다린다 해서 무료하게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 나름대로 영의 지식들을 배우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즐겁게 보냅니다. 또 여러분의 일가친척 중에 먼저 소천하신 분들은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면서도 이 땅의 가족이나 성도들의 소식을 궁금해 하지요. 종종 좋은 소식을 전해 들으면 함께 기뻐하며 마음으로 우리를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때가 되면 이렇게 대기 장소에서 기다리던 성도들과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와 위엄 있게 늘어선 배심원들 그리고 창세 이후 이 땅에 태어난 영혼들이 다 모여 있는 장면은 얼마나 엄청난 장관이겠는지요?

그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서기를 원하십니까? 두려움과 후회가 아니라 기쁨과 평안으로 곧 들어갈 천국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한 번 정해진 천국의 처소와 상급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일단 천국에 들어가면 더 이상 상급을 쌓을 기회가 없지요. 이 땅에서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며 하나라도 더 많은 상급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4-20 오후 1:52:10 Posted
2023-06-04 오전 11:32: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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