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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57) 7년 환난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일곱 재앙 [계 16:8-15]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11.18
계시록 16장부터는 7년 환난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일곱 재앙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그중에서 세 번째 재앙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때는 전쟁과 자연 파괴로 인한 환경오염이 한계점에 이른 상황이지요. 바다까지 검붉은 핏빛으로 변하며 죽어갑니다. 바다가 죽으니 바다 가운데 생물들도 죽고 이는 자연계의 연쇄적인 파괴로 이어지지요.

또한 물의 근원마저도 오염되고 맙니다. 물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물의 근원마저도 오염되었으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이 일어나지요. 오염된 물로 인해 피부병과 전염병 등이 창궐하고, 사람들은 마실 물이 없어서 죽어갑니다. 갈수록 식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지요.

7년 환난 동안 권세 잡고 있던 연합 정부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공의에 따른 결과이지요. 인간이 그동안 행한 악들에 대한 보응이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며 욕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무수한 죄들을 쌓아온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참고 또 참으시며 사랑과 긍휼 가운데 기회를 주셨지요. 그러나 정하신 기한이 차게 되면 마침내 공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시며 의로우시지요. 결코 편벽됨이 없으시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공의를 굽게 하는 일도 없으십니다.

시 89:14에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하셨지요. 하나님의 참되고 공의로운 심판 앞에서는 모든 진실이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날을 두려움이 아닌 소망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계속해서 네 번째 재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계 16:8-9에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3차 대전 중에는 핵무기를 비롯하여 엄청난 위력의 무기들이 곳곳에서 터집니다. 그로 인해 자연이 심하게 파괴되고, 기후조차도 크게 변하지요. 예를 들면, 지금도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하물며 7년 환난이 막바지에 이를 때가 되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지요.

상상을 초월하는 불볕더위가 찾아오고,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으로 인해 사람들은 곳곳에서 쓰러져 갑니다. 짐승들도 예외가 아니고요. 이를 가리켜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다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천사가 재앙의 대접을 해에 쏟았다 했습니다. 이는 곧 태양과 지구 사이의 관계와 질서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즉 해와 지구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해로운 광선을 차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오존층의 파괴입니다. 오존층이란 성층권에 퍼져있는 오존 농도가 높은 대기의 층을 가리킵니다. 오존의 농도는 고도와 계절과 위도에 따라 달라지나 오존은 대부분 고도 15~35킬로미터 사이에 존재합니다. 오존은 대기 중에서는 식물과 동물에게 독성이 강한 오염 물질입니다.

하지만 성층권에 있을 때는 지구 생물계의 존속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오존은 태양광선 중에 해가 되는 자외선을 흡수하여 생태계를 보호함과 동시에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여 성층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현재의 기후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오존량 1% 감소 시 피부암 발생률은 2% 증가한다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오존량이 3% 감소하게 되면 미국에서만 매년 피부암 발생이 1만 8000여 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지요. 이러한 오존층의 고갈로 인해 자외선 차단 기능이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지구에 도달하는 자외선 양을 증가시킵니다.

그 결과 피부암의 증가, 피부 노화촉진, 안(眼) 질환의 증가, 면역기능의 저하, 농작물 수확의 감소, 해양 생물에의 피해, 지구 환경 오염 증가 등의 엄청난 피해를 유발하지요. 또한 오존층의 파괴는 지구 기온의 상승을 초래하며 습도와 증발량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로 인해 사막화가 심해지고, 태풍과 홍수의 피해도 커지며, 가뭄 피해 등도 증가하게 되지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재앙이 담긴 대접을 해에 쏟았을 때 이 땅에 일어나게 되는 현상들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살지 못할 환경이 되는 것을 가리켜 “사람을 태운다”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이처럼 극한 상황이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이름을 훼방하지요.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보게 되지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점점 더 자기 유익만을 구해 가게 됩니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을 동원하여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있는 한계를 넘었기에 세상은 점점 더 혼란으로 빠져듭니다.

그나마 연합 정부로 인해 유지되던 질서도 파괴되고, 연합 정부도 점차 기반이 흔들리게 되지요. 마침내 연합 정부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연합 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으로 지배해 나갈 때는 그나마 불만 세력들이 잠잠했습니다. 혼란에 빠졌던 사회 질서가 회복되고 식량과 자원 문제 등을 해결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연합 정부가 그러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사회 질서도 다시 무너져 가고, 식량이나 식수도 공급받기 어려워지지요. 저마다 자기 살길을 찾기에 바빠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나라들은 더 이상 연합 정부의 통제와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자기 생존을 위해 각자의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계 16:10-11에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짐승은 7년 환난 동안 전 세계를 장악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연합 정부이지요. 이 연합 정부는 거대한 컴퓨터를 동원하여 세계를 통제하고 장악해 간다 했습니다. 이러한 연합 정부 또는 그들이 도구로 사용하는 컴퓨터를 가리켜 짐승이라 한다 했지요.

이 짐승의 보좌에 대접을 쏟습니다. 짐승의 보좌란 가장 핵심적인 세력을 가리키지요. 전 세계적인 재앙과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되면서 연합 정부의 수뇌부마저도 권세와 힘을 잃어갑니다. 수많은 사회기반 시설과 통신망 등이 파괴되어 더 이상 컴퓨터를 통한 통제 역시 불가능해지지요.

연합 정부가 통제하던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러워집니다. 이것을 가리켜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진다”고 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짐승의 정부를 추종하며 따랐던 사람들 또 그들의 도구로서 하수인 노릇을 했던 사람들은 탄식하며 마음 아파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권세가 사라져가기 때문이지요. 이런 모습을 가리켜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문다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기가 난다’는 말에는 육적인 의미에서 실제로 종기와 같은 피부병 등으로 고통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영적으로는 연합 정부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권세와 힘이 사라지고 삶이 위협받으므로 이로 인해 고통 받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종기가 나면 그것이 곪아터지듯이 연합 정부가 내부적으로 곪아간다는 말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하늘을 원망하기만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렵게 된 탓을 하늘로 돌리며 하나님을 더 훼방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악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그것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이나 주변 탓으로 그 원인을 돌리려 하는 것이지요.

계 16:12에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강물이 말랐다는 것은 짐승 곧 연합 정부가 힘과 권세를 잃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연합 정부의 경제적 지배력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사실 연합 정부가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경제력이었습니다.

그 경제력의 배경은 바로 자원, 그중에서도 석유였지요. 3차 세계대전의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연합 정부는 중동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합니다. 그것은 곧 석유 자원에 대한 지배력이지요. 본문에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랐다는 것은 석유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곧 연합 정부가 힘과 권세를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극심한 재앙으로 인해 석유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 오히려 석유 자원은 바닥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곧 전 세계로 알려지고 각 나라들은 석유 확보에 혈안이 되지요.

이전까지는 자원 분배 역시 연합 정부가 나서서 처리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석유 자원이 고갈되어간다는 소식에 각 나라마다 조금이라도 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지요. 그나마 남아 있는 석유 자원도 이제는 제대로 분배되지 않습니다.

연합 정부도 자기들이 먼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들과 관련 있는 나라에 우선적으로 석유 자원을 공급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지역이 생깁니다. 불만이 쌓이다가 결국 터지기 시작하지요.

여기다가 그동안 덮어두었던 문제들에 대한 불만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게 됩니다. 연합 정부가 불평등하게 행했던 일들에 대해 그동안은 참고 덮어 갔는데 이제 그것들까지 함께 터져 나오는 것이지요. 이것이 결국 전쟁이라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는 말씀이 바로 이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전쟁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 나름대로 강대국을 이루었던 나라들이 그동안 연합 정부에 협조하던 것을 깨고 연합 정부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이지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금 남은 석유 자원을 차지하고자 전쟁까지도 불사하게 됩니다. 더 이상 연합 정부에 협조하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는 이번 기회에 세계의 주도권을 다시 한 번 잡아보려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계 16:13-14에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루시퍼의 주관을 받는 더러운 악의 영들이 세상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지요. 더러운 영이 각각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 했습니다. 용은 악한 영의 세계에서 루시퍼를 대신하여 어둠을 주관해 나가는 실질적인 권세자입니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은 이 땅의 악한 자들을 주관하여 미혹해 가지요. 이때는 특히 용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이 이스라엘의 머리된 자를 통해 역사합니다.

다음으로 짐승은 연합 정부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그 우두머리를 가리킵니다. 짐승의 입에서 더러운 영이 나온다는 것은 그 우두머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어둠으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이지요.

마지막으로 거짓 선지자는 7년 환난 때 연합 정부와 결탁하는 종교의 수장(首長)을 의미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 가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시퍼의 주관을 받아 사람들을 미혹하는 세력이지요. 그의 입에서 더러운 영이 나와 사람들을 미혹해 가는 것입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어둠과 악에 속한 영들로서 혼란과 전쟁과 파괴를 일으킵니다. 이들이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은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시점이 되면 또 한 번의 전쟁이 허락되지요.

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석유 자원을 둘러싼 전쟁입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동안에 쌓였던 여러 가지 불만들이 표출되어 터지는 것이지요. 강력한 연합 정부에 의해 통제되던 상황이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전쟁으로까지 번져나갈 수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합 정부가 그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힘 있는 나라들이 협력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연합 정부의 힘이 워낙 강력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협조하는 것이 자기들의 유익에도 맞기 때문에 잠잠히 따라주었던 것이지요.

7년 환난의 혼란을 안정시키고 그나마 경제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력 집단에 협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금 세계가 혼란스러워지자 예전의 강대국이었던 나라들도 각자 자기 살 방법을 찾게 되지요. 그동안 아무리 힘이 많이 쇠퇴했다 해도 여전히 큰 힘을 가진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이 연합 정부에 반대하며 다시금 자기들끼리 연합하여 맞서게 되지요. 연합 정부가 약속했던 경제적인 혜택이 더 이상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가 방법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연합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세계 패권을 잡아보겠다는 야심을 품습니다.

애초에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뭉쳤던 나라들이기에 다시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흩어지게 되지요. 이처럼 7년 환난의 막바지에는 전 세계가 다시금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며 혼란 상황 속으로 빠져 갑니다.

계 16:15에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어떠한 사람들이 7년 환난의 고통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를 경계해 주시는 말씀이지요. 신부단장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신부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옷’은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신부된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의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할례하지 않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지도 않으니 그 마음이 여전히 죄악으로 가득한 마음이요,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적으로는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사람이 겉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할례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죄악을 품고 있다면 이는 겉으로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다 해도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과 같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육적인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닌 마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의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계 19:8에 보면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말씀하지요.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천국에서는 세마포 흰옷을 입게 되는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했습니다.

천국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죄로 물든 육의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아름다운 예복인 의의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아 아름다운 신부로서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에 할례하여 신부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지요.

마 24:42-44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 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셨습니다.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머리로는 많은 것을 알지만 막상 행함이 따르지 않는 신앙, 그러면서 점점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신앙, 이러한 신앙을 경계해야 하지요.

계 3:18에 보면 이처럼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셨지요.

이 땅의 금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의 금 곧 변치 않는 믿음을 사야 합니다. 흰 옷 곧 거룩한 행실을 이루어야 하지요. 세상 것을 바라보다 멀어버린 눈을 돌이켜 영원한 천국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혹여 이 말씀에 해당되는 성도님이 있다면 처음 행위와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렇지 않은 성도님들이라도 영적인 충만함과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체험하는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언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 해도 기쁨과 담대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든 만민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1-23 오후 12:58:20 Posted
2023-06-04 오전 11:32: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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