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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63) 연합정부의 실체, 영적인 음행 [계 18:2-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2.03
7년 환난의 마지막이 되면 이 땅에도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의 심판이 있습니다. 7년 환난 동안 이 땅에서 권세 잡고 있던 적그리스도 세력들에 대한 심판이지요. 이러한 사명을 받은 권세 있는 천사가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 천사의 권세와 영광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말씀 할 정도이지요.

계 18:2에 이 천사가 외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큰 성 바벨론 즉 이 땅에 권세 잡고 있던 연합 정부가 무너질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합니다. 이것이 연합 정부의 실체입니다.

연합 정부는 귀신의 처소이며,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의 사주를 받는 더러운 영들의 소굴이었지요. 세상을 어지럽히고 죄악 가운데로 이끄는 온갖 더러운 영들이 모인 곳입니다. 영적으로 이처럼 더러운 곳이기에 거기에는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입니다. 새들 중에는 죽은 사람이나 짐승의 고기를 먹고 사는 새들이 있지요.

이런 것처럼 영적으로 더러운 곳에는 그 어둠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연합 정부 역시, 영적으로 더러운 곳이기에 그곳에는 온갖 더럽고 가증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지요.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비진리와 악들을 행했고,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많은 일들도 행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더럽고 가증한 것이지요. 이를 통해 여러분은, 어둠이 있는 곳에 어둠이 모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이나 모임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거나 영적으로 더러운 영의 영향을 받을 때 그곳에는 반드시 육의 모습들이 생겨납니다. 육을 추구하고 정욕을 좇는 사람들이 모여들지요.

반면에 영적으로 깨어 있고 늘 진리 안에 거하는 조직이나 모임은, 설령 육을 좇으려는 사람이 왔다 해도 물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지요. 바로 여러분이 속한 모든 조직과 모임이 영적으로 이처럼 힘 있고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세상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능력입니다.

계 18:3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진노의 포도주는 공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연합 정부와 그들에게 동조했던 무리들은 하나님 앞에 음행을 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그 음행에 대한 진노의 포도주 곧 공의의 심판이 임하지요. 심판으로 인해 연합 정부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그 하부에 있던 조직들도 무너집니다.

“땅의 왕들”이란, 연합 정부를 도왔던 나라와 그 나라의 머리들을 의미합니다. 연합 정부에 동조하여 권세 잡고 악을 행하던 무리들을 지칭하지요. 그들도 결국 행한 대로 값을 치릅니다. 그런데 꼭 연합 정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만 공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더불어 음행한 사람들”도 심판을 받게 되지요.

여기서 말씀하는 “음행”이란 영적인 의미의 음행입니다. “영적인 음행”이란 ‘인간이 발달된 과학문명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음행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포함하지요.

예를 들어,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이는 마음으로 음행했다 할 수가 있습니다. 마 5:28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지요. 그러니 비록 행함으로는 음행하지 않았다 해도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는 것 자체가 영적으로는 이미 음행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을 두고 마음을 세상에 빼앗긴다면 이 역시 주님 앞에 영적으로는 음행이 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여전히 세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 영적인 음행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의심을 품고 있는 것도 영적인 음행에 해당되지요. 뜨겁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때는 기쁘고 감사하지만 시험 환난이 오면 이내 은혜를 잊고 의심합니다. 이전에 체험했던 하나님의 역사까지도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며 의심하지요. 이처럼 마음에 여전히 의심을 가지고서 믿지 못하여 갈팡질팡하는 것도 영적인 음행입니다.

물론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때로는 의심이 들거나 충만함이 떨어져서 은혜를 잊을 때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분명한 증거들을 보았고 체험했으며 그만큼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 했음에도 여전히 두 마음을 품고 의심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음행하는 죄가 됩니다. 이는 결코 작은 죄라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지요.

다음으로 “땅의 상고들”이란 연합 정부에 붙어서 부당하게 부(富)를 축적해 온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부정부패로 치부한 고위층의 권세자들과 그들과 손잡고 부당한 거래를 하여 자신들의 부를 쌓아온 사람들이지요.

연합 정부가 겉으로는 세계의 평화와 질서 그리고 자원과 식량의 공정한 분배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부당하게 엄청난 부를 쌓아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 정부에 붙어서 자신들의 유익만을 구하고 부를 축적해 온 무리들도 연합 정부의 붕괴와 함께 결국 망할 수밖에 없지요.

계 18:4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남은 자들에게 끝까지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회가 주어지지요. 7년 환난 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이스라엘 민족,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가진 엄청난 부(富)에 눈독을 들입니다. 전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들 유대인들을 포섭해야 하지요.

그래서 이미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유대인들을 포섭할 만한 그럴듯한 미끼를 던집니다. 그 미끼란 유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성전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이지요. 유대인들은 이 약속에 속아 적그리스도에게 협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이용하고 난 적그리스도는 때가 되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이에 자신들이 속은 줄을 알게 된 유대인들은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요. 그러나 아직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건재하기 때문에 여전히 그들에게 미혹당하는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자신들을 도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리라는 기대에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7년 환난도 막바지에 이르게 되고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붕괴 위기를 맞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 즉, 연합 정부의 정체도 만천하에 밝히 드러나게 되지요. 바로 이때, 이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지막 외침이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參預)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의 최후를 보고라도 지금이나마 정신을 차려서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경계의 말씀이지요. 물론 이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짐승의 표를 받았고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도 대부분 순교한 후입니다. 하지만 그때라도 어찌하든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비록 그때까지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미혹 당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에 이를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꼭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외치고 또 외치게 하시는 말씀이지요. “거기서 (즉, 어둠과 죄악 가운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십니다.

계 18:5에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이 땅에서 행한 악들은 하늘에 사무칠 정도입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비참하게 죽였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그 모든 불의한 일들을 다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날에 행한 그대로 갚아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행함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아십니다. 선한 행함을 기억하여 반드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지만 악한 행함도 기억하고 갚아 주시지요. 물론 악한 행함을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것은 심판날에 반드시 심문을 받게 되지요. 심지어 마 12:36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계 18:6에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성경에는 행위대로, 또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 2:23에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했지요.

갈 6:7-8에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했습니다.

요 5:29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했지요. 마 16:27에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죄에 빠진 자녀라도 어찌하든 죄를 용서하고 그가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시지요. 그렇지만 무조건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작은 죄를 지었을 때 무조건 용납해 주다 보면 자칫 더 큰 죄를 지어가게 만들 수가 있지요.

죄를 지어도 용서하고, 또 죄를 지어도 용서하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 죄를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죄에 대해 마음이 무뎌져서 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죄인 줄 알고 행하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올 힘과 능력이 없지요. 또한 이런 사람 하나로 인해 주변이 함께 죄로 물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5:6 후반절에 보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죄가 죄를 낳게 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이는 여러분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육의 것을 하나씩 용납하다 보면 그것이 나중에는 더 큰 육을 낳게 되지요.

지금은 마음 안에서 세상을 하나라도 더 버려 나가기가 급한 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오히려 세상의 것을 마음 안에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는 마치 ‘나는 영으로 안 들어갈래요.’ 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고후 9:6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열심히 심는데도 왜 많이 거두지 못할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스스로는 열심히 많이 심는다 생각하는데도 바라는 것만큼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영혼이 잘되어서 진리 위에 굳게 서고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지요. 썩어질 이 땅의 것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상급을 쌓으며 사는 삶이 진정 가치 있고 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잘된 후에 그 영혼이 성장하는 만큼 물질의 축복도 주셔서 참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니 아직 물질의 축복을 받을 만큼 영혼이 잘되는 축복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때를 늦추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이지요.

만약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기 전에 물질의 축복을 먼저 주시면 그것이 도리어 해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게 되고, 점점 세상을 취하다가 사망으로 갈 수가 있게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잘되기까지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육의 법칙에 의해서도 열심히 심고 노력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축복이 오지요. 다만 그것이 참된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 값지고 아름답게 쓸 수가 있지요.

계 18:7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자들이 어떻게 행했는지가 잘 나옵니다. 자기들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치하였지요. 그들이 겉으로 내세웠던 정의와 평화는 단지 빛 좋은 허울에 불과했습니다. 속으로는 이처럼 자기 영광을 구하며 자기들의 유익만을 구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결코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이 땅에 쌓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마음껏 취했다면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을 것이 없지요.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 대해 행 4:32에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도 사심도 다 벗어내야 진정 천국에 소망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지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이처럼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수히 핍박하며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난과 애통을 주었지요.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루시퍼의 주관을 받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얼마나 교만의 극치에 이르고 있는지 알 수가 있지요.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도 루시퍼는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었지요.

사 14:12-14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루시퍼의 주관을 받는 적그리스도 역시 자기들 스스로를 신성화시키며 자신들에게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스스로를 “여황으로 앉은 자”로 여기면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지요.
“과부”는 불쌍하고 힘든 처지를 의미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이제 붕괴의 길로 접어들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었음에도 자신들은 결코 “과부”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끝까지 회개하고 돌이킬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높이며 하나님을 대적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스스로 높아지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심판이 임하는지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주를 믿는다’ 고백한다 해도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한 사람은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 10:12에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경계하고 있지요.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 이 정도 수준이다’ 스스로 생각하며 마음이 높아지게 되면 그것이 자칫 영적인 교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교만은 루시퍼가 가장 좋아하는 육의 속성 중에 하나이지요. 믿음의 반석에 서고 영으로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세상을 조금씩 취하다 보면 그것이 자라 결국 죄를 낳게 되지요. 깊은 본성 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어떤 상황에서도 죄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영으로, 온 영으로 이룬 사람은 하나님 앞에 늘 겸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중심의 고백들을 하지요. 이런 마음이기 때문에 범사에 자기 것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영으로, 온 영으로 이룬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궁구하지요. 하물며 아직 영으로 이루지 못한 사람은 어찌해야겠습니까? 판단하고, 정죄하고, 헤아리는 모든 것이 바로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잠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는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겸손으로 존귀의 앞잡이를 삼아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2-02 오후 2:34:29 Posted
2023-05-04 오후 3:55: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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