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특별예배

제목
2015년 기도제목(4) 재창조의 권능 [창 1: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4.12.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4-2015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이 복된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전국 및 전 세계 각지에서 오신 주의 종들과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GCN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4년도는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대로 시행하되 제가 ‘사랑의 운영’을 한 결과 성도님들의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영의 평준화를 넘어 더 깊은 영으로, 이제는 온 영의 흐름에까지 이르렀지요.

이와 같은 영의 흐름은 2015년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 시간 설명할 ‘재창조의 권능’을 힘입어 영적인 변화의 물결이 이 제단을 넘어 교계로, 세계로 거침없이 흐르게 되지요. 바로 여러분이 이 영의 흐름 안에서 영광 돌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재창조의 권능’이 무엇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빛이 있었던 것처럼 근본의 소리로 이뤄지는 권능입니다. 근본의 소리를 자유롭게 운용하면 마음에 품은 대로 또 소리를 발하는 대로 이뤄집니다. 단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세우신 창조의 근본 질서를 어길 수는 없기에 그 질서 안에서 ‘재창조’만 가능합니다.

재창조의 역사는 없었던 것을 있게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있는 것을 새롭게 하는 역사이지요. 비유를 들면 ‘꽃’이란 자체가 아예 없는데 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죽었는데 살려내는 역사입니다.

‘재창조 권능’으로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이 파손되거나 훼손되었을 때에 다시금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죽은 것도 살릴 수 있지요. 땅과 하늘과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권능입니다.

그러면 ‘재창조의 권능’으로 새롭게 해야 할 제1순위는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후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지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영이 죽게 됐고,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도 마찬가지 상태로 살아갑니다. 다행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될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사람들이 구원받을 믿음을 갖기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며, 심지어는 기독교계 안에서까지도 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사는 이런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고쳐 주기 원하시며, 그들의 더러워진 마음을 씻겨 주기 원하시지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재창조의 권능을 베풀어 주기 원하십니다.

‘저 사람은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 이렇게 여겨지는 사람에게도 다시 구원의 기회를 주기 원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근본의 사랑’입니다. 재창조의 권능은 이 근본의 사랑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재창조의 권능을 받기까지 아버지의 근본의 사랑에 준하는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는 것이었지요.

공의로는 구원받기 어려운 영혼을 구원하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공의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려면 누군가 대신 공의의 값을 치러 주는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저주를 대신 받기 위함이지요. 또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공의가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이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공의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에 맞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난 4년간 몸과 마음으로 심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고통이 가중 될수록 공의는 넓어졌지요. 그래서 지금은 엄격한 공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이들도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기 노력으로는 반석, 영, 온 영에 이를 수 없는 이들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원래는 여러분이 채워야 할 90%의 공의를 제가 대신 감당했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처럼 넓어진 공의의 범위 안에는 우리 제단의 성도들은 물론이고 교계와 세계의 많은 영혼들도 담기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패역한 세대를 대표하는 자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게 하는 공의, 심히 패역한 이들도 그 마음이 바뀌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공의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재창조의 권능이지요. 눈에 보이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증하는 표증? 물론 재창조의 권능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재창조의 권능으로 새롭게 할 제1순위 대상은 바로 ‘사람’이지요. 재창조의 권능이 임하면 두려움 속에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느낌으로 마음이 녹아져서 자유의지 가운데 스스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재창조의 권능이 어떻게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겔 36: 26-27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때에 나타날 재창조 권능의 역사에 대한 예언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셨습니다.

악으로 굳어서 단단해진 마음이라도 재창조의 권능으로는 부드럽게 바꾸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부드러워진 마음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에스겔 37장에는 에스겔이 본 환상 곧 마른 뼈들이 살아나 군대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환상에 대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2013년 연말에 풀어 주시기를 “네가 행할 재창조의 역사가 어떤 것인가를 예를 들어서 그 안에 담아두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환상의 내용을 한번 살펴보지요. 에스겔이 보니 골짜기에 뼈가 심히 많은데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마른 뼈들을 향하여 대언하게 하십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대로 대언할 때 이 뼈들과 저 뼈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서로 붙고 연결되는 소리가 났지요. 이어 힘줄이 생기고, 그 위에 살이 돋아나며, 또 그 위에 피부가 덮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번에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하셨지요.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그러자 사방에서부터 생기가 힘차게 불어와 그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즉시 살아나서 모두 제 발로 일어나 정렬하였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지요.

이것이 바로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마른 뼈’는 도무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이 마른 뼈와 같은 사람들이 많지요. 도무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이들, 그 심령이 낡고, 악하고, 변질되고, 변형되어 심히 타락한 영혼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태의 영혼들도 재창조의 권능으로는 회복되고, 정화되며,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면 지금부터는 ‘재창조의 권능’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 대상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 일당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사람이라도 다시금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와 다단 등이 당을 짓고, 모세를 대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라는 레위인으로 성전을 섬기는 사명이 있는데 그 부분을 넘어서 자기들도 제사장이 되고자 했습니다. 또한 다단과 아비람 일당은 모세가 애굽에서 자기들을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고생만 시킨다며 반발했지요.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도 악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요. 민 16:32-33에 기록되기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땅’은 육적인 땅과 함께 영적으로는 ‘아랫음부’를 의미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들도 죽으면 아랫음부에 있는 대기 장소에 3일간 머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랫음부에 떨어지자마자 대기 장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격적인 형벌을 받는 곳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들의 악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은 큰 죄’가 신약에도 있습니다. 바로 성령 훼방‧거역‧모독이지요. 그래서 막 3:29에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 중에서 이러한 성령 훼방‧거역‧모독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앞으로 교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능의 종이 드러날 때에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들과 반대로 시기하여 대적하는 이들로 나뉘지요. 분명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아도 자신의 악에 가리워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악한 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판단 정죄하고, 비방하기도 하지요. 이는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도 회개하여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재창조의 권능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고라 일당과 같은 이러한 사람들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요.

저는 그들이 죽기를 원치 않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악하게 나온다 할지라도 오히려 긍휼한 마음이 듭니다. 또한 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의 고통을 이미 제가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선불로 값을 치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을 위해 중보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회개의 영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재창조의 권능으로 변화될 패역한 무리 중 둘째 부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리고 가룟 유다처럼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성령을 속이고,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그 곁에서 덕을 보려는 속셈이 있었지요. 돈궤도 자기가 맡았고, 때때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셨지요.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말았지요. 이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행 1:18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사리사욕 때문에 주님을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요. 회개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떤 이들입니까? 초대교회의 불같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그들도 은혜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땅을 팔아 드리겠다고 했지요. 막상 돈이 손에 쥐어지자 욕심으로 그중의 얼마를 감추고 일부만 드렸습니다. 이에 권능의 사도 베드로가 성령의 밝은 역사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꾸짖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죽고 말았지요.

은혜의 체험을 했으면서도 성령을 속이는 것은 너무나 큰 죄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는 교계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또는 가룟 유다보다 더 심한 악을 행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도 버릴 수 없으므로 제 마음에 품어 구원시키길 원하십니다. 그들을 버리지 않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 보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권능이 사랑으로 역사되면 이러한 이들도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재창조의 권능으로 변화될 패역한 무리 중 셋째 부류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처럼 지식의 틀로 인해 성령의 역사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대적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구약의 율법을 줄줄 암송할 정도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주신 참뜻은 깨닫지 못하고, 지식으로만 알았지요. 요 5:39 후반절에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성령의 감동함으로 성경을 궁구했다면 구약에 수차례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신 줄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이 자기 지식의 틀에 갇혀 성경을 보았기에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눈앞에 계신데도 알아보지를 못했지요. 눈뜬장님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계에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신학을 오랜 시간 연구했다.” “내가 목회를 몇 년 했으며, 나도 하나님 앞에 드린 날이 이만큼이다.” “나는 신학박사요, 누구보다 성경에 정통하다.” 이렇게 자부하지만, 정작 성령의 역사는 잘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그 지식이 교만이 되어 임의로 판단‧정죄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재창조의 권능으로 이런 사람들의 단단한 틀도 깨뜨려 주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받아 구원의 기회를 잡기 원하시지요.

성경은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풀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수한 금식과 기도로 영계를 뚫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을 이뤄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내며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런데 ‘성경을 아노라’ 하는 이들 대부분은 영계를 뚫기 위한 그만한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이에 제가 그들이 하지 못한 그 분량까지 대신 감당해 주었기에 이런 이들도 단단한 지식의 틀을 깨뜨리고 성령의 역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앞으로 교계에 나가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타락돼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성경을 너무나 잘못 알고 있는 이들, 육과 결탁된 행동을 하는 이들, 이런 이들이 많음에 놀랄 것이라 하셨지요.

저는 그런 이들에게도 죄 사함의 기회를 주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4년간 고난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이제 복합적인 재정의 축복을 힘입어 교계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 재창조의 권능을 마음껏 발할 것입니다.

이 제단을 중심으로 기독교계에 정화 작업,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게 되지요. 힘 없는 기독교계가 아니라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기독교계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알지 못하여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따랐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집니다.

실로 우리는 ‘만민’이란 이름답게 세계 만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패역한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처럼 변화된다면 영을 사모하여 많은 날들 기도해 오신 성도님들은 얼마나 신속히 변화되겠는지요. 반석으로, 영으로, 영의 깊은 단계로, 온 영으로도 더 빨리 변화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이처럼 신속히 영적 장수로 준비되어서 저와 함께 영광의 2015년을 열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2015-01-02 오후 5:59:37 Posted
2018-05-09 오전 11:08:16 Updated

다음 글 잊지 못할 은혜 이전글
이전 글 사랑의 주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