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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분량

제목
믿음의 분량(13) 믿음의 4단계 [롬12:3,요14:2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6.01.22
오늘은 믿음의 1, 2, 3, 4단계의 차이점을 살펴보고 믿음의 4단계 특징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믿음의 1, 2, 3, 4단계의 차이점

믿음의 4단계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벗어 버리므로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하며 말씀대로 행하는 단계이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와 1, 2, 3단계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애매한 말을 지어내어 심히 여러분을 모함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아직 믿음이 적은 1단계나 2단계 초입인 경우, 분이 나서 참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상대방을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지려고 합니다. 감정 가운데 변론하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 험한 말로 다투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요. 2단계 중반만 되어도 악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혈기나 악을 크게 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는 어떠할까요?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의 3단계이지만 믿음의 반석에 든든히 서기 전이라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참기는 하지만 깊은 마음 중심에서부터 온전한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반면에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원수라도 축복을 빌어 줄 수 있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마음의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이 다릅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지요. 부모님이 갑자기 위독하여 급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주웠다면 1단계나 2단계의 믿음에서는 그 돈을 그냥 가질 수도 있습니다. 2단계에서는 두 마음, 곧 선한 것을 좇으려는 영의 마음과 자기 욕심을 좇으려는 육신의 소욕이 싸우게 되지요. 그러다가 "이 돈이 너무나 필요하다." 하면서 육신의 소욕이 이기게 되면 양심에 가책은 있지만 자신이 써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이 돈만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하고 비진리의 생각이 잠시 틈탈 수는 있지만 결국은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을 찾아 주게 되지요. 그런데 4단계에 이르면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자신이 아무리 물질이 필요하다 해도 남의 것을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추호도 고민할 것이 없지요. "잃어버린 주인이 얼마나 걱정할까" 염려되어 한시라도 빨리 주인을 찾아 주려는 마음뿐입니다. 이런 마음이 되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고 담대할 수 있지요. 마음에 악이 있으니 사람과의 문제나 주변 환경에 따라 힘이 들고 곤고한 것인데, 마음에 악이 없으면 항상 성령이 충만하며 환경에 상관없이 행복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2. 믿음의 4단계의 특징

1)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 중심에서 너무나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도 어떤 응답이나 축복을 받기 위해, 혹은 계명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는 줄을 알면서도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고 하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고 근심하며 슬픔의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뿐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므로 사나 죽으나 감사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러했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는 왕의 위협 앞에서 그들은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고백했지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할 뿐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도 그러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착고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조금의 원망이나 불평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요,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4단계에 이른 모습이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자녀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의 역사로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벗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할 때는 세상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7-8을 보면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주를 위해서라면 배설물처럼 다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29-30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셨지요.
이처럼 행하면 처음에는 핍박이 올 수도 있고 믿음이 적을 때는 그로 인해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이 변치 않고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나갈 때, 결국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게 되지요. 더구나 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핍박이 물러갈 뿐 아니라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존중받게 됩니다.
저도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 일가친척들의 모임에 함께하지 않고 윗분들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 등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자, 처음에는 서운하게 여기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가친척들도 저희를 더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었고 저희를 배려하여 각종 행사도 주일을 피해서 일정을 잡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녕 믿음으로 행하고 타협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므로 마침내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해서 안 되는 것은 육의 가족보다 하나님이 소중하고 육의 정을 끊어야 한다 해서 그것이 가족을 무정하게 대하고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부모, 자녀, 혹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어야 하지요. 주를 믿지 않는 가족들도 그러한 모습을 통해 감동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시며 우리 영혼을 낳아 주시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한다면 당연히 선과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영의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의 수준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믿음이 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신들의 입장에 맞춰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심히 망설이고 괴로워하면서 산을 올라갔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에 전혀 망설이거나 갈등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다시 살려 주실 줄 분명히 믿었을 뿐 아니라 다시 살려 주시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드리라" 하시면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리 귀하고 사랑스러운 독자라 해도 하나님은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주신 주인이시니 생명을 다시 달라 하실 때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망설임도 괴로움도 전혀 없이 오직 기쁨으로 순종했으며 이렇게 순종한 결과 믿음의 조상이라는 너무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고 조건 없이 무조건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게 축복하시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시며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영광을 얻게 하시지요. 이와 같이 영혼이 잘되는 축복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으로 들어오기만 해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무수히 나타납니다. 더구나 온 영으로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축복과 영광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마음껏 베풀어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 자신보다 그날을 더 고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속하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옴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축복받아 범사에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1-24 오후 12:51:46 Posted
2019-09-09 오전 11:37:3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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