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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분량

제목
믿음의 분량(17) 믿음의 4단계 [롬1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6.04.02
오늘은 믿음의 4단계의 특징과 영의 사람이라 해도 육의 흔적까지 벗고 더 온전케 되어야 하는 분야들에 대해서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단계, 마음의 죄악까지 다 벗어 버리고 영혼이 잘되어서 범사에 축복받는 단계라 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은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말과 같지만, 아직 그 안에 들어가야 할 영적인 내용물들이 다 채워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간 사람 마음에는 '미움'이라는 죄성이 없으니 '사랑'만 남게 되지요. 하지만 얼마나 크고 깊은 사랑을 이루었는지, 각 사람마다 사랑의 열매가 맺힌 정도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미움이 없는 깨끗한 그릇 안에 사랑을 더 풍성하게 담을수록 더 온전한 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분량을 선의 4단계와 연관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선의 1단계는 상대가 악으로 대할 때 마음은 불편하지만 참고 악으로 갚지 않는 단계입니다. 세상에서는 선의 1단계만 된다 해도 "참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믿음의 분량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가 바로 선의 1단계에 해당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참된 선이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겉으로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 악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다음으로 선의 2단계는 상대가 나에게 악으로 대한다 해도 내 편에서는 아무 감정을 품지 않는 단계요, 마음에 요동함이 없이 상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을 이루었다면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이니 깨끗한 영의 마음을 이룬 것이며 믿음의 4단계에 해당됩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간 사람, 혹은 믿음의 5단계 초입에 들어간 사람은 악한 상대를 아무 감정 없이 용서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선한 말과 행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이며 감동을 줄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선의 3단계이지요.
마지막 선의 4단계에 이르면, 악으로 대하는 상대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줄 수도 있는 헌신과 희생의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의 5단계에 해당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악인들까지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자신을 못박는 이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는 중보기도를 드리셨지요. 바로 이러한 사랑을 베풀 수 있을 때 최고의 선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선이라 해도 여러 단계로 나눠지는 것처럼, 믿음의 4단계 안에서도 그 분량이 달라집니다. '얼마나 더 하나님을 닮았는지', '얼마나 영의 열매들이 아름답게 맺혔는지'에 따라 믿음의 4단계 안에서 10프로, 40프로, 혹은 80프로 차이가 나게 되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를 통해서도 믿음의 분량을 가늠해 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마음에 있는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온전히 맺혔다는 개념이기보다는 단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반이 잡힌 것과 같습니다. 사과나무에 꽃이 떨어지면 꽃이 있던 자리에 아주 작은 알맹이가 맺혀서, 아직 따먹을 만한 것도 아니고 너무나 미약하여 열매라고 말하기도 미흡하지만, 열매가 맺힐 조짐은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마음의 죄성들을 다 벗어 버리고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면 성령의 열매들이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온전한 것은 아니고 성령의 열매 중 어떤 열매는 50프로, 어떤 것은 70프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으로 들어간 4단계와 온 영을 이룬 5단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죄를 다 버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육의 흔적"이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악으로 변질된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로 인해 육의 사람으로서 살아왔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까지 온전해져야 온 영으로 들어가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게 됩니다.
'육의 흔적'이라는 것은 사람이 영으로 변화되기 이전에 갖고 있던 근본 성품이나 기질과도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고 진실하며 의로운 성품이지만, 사랑과 덕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풀기 좋아하고 사랑은 풍성한 것 같은데 감정이 많거나 말과 행동이 거친 경우가 있지요. 이처럼 믿음의 4단계로 들어온 후에도 비록 악은 아니지만 전에 가지고 있던 이런 분야들이 육의 흔적과 같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묵은 때, 찌든 때가 배어있던 옷은 세탁을 해도 옷감 색깔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와 같다고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인간 경작을 받기 위해 육의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입력된 것들이 죄를 다 벗어 버리고 성결된 후에도 흔적으로 남아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영은 영이로되, '육의 흔적'과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진리의 열매를 온전히 맺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닮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2. 영의 사람이라 해도 육의 흔적까지 벗고 더 온전케 되어야 하는 분야들

영의 사람과 온 영의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 왕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애굽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인 사라를 빼앗기 위해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도록 했지요. 물론 혈연관계로 따지면 실제로 사라는 친척이었기에 누이라 말한 것이 거짓말은 아닙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비겁한 마음이었거나 하나님을 불신하여 두려움이 틈탄 것도 아니었지요.
아브라함에게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능히 맞서 대항할 용기도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리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편에서는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대로 지혜롭게 대처한다는 것이 사라를 누이라 말하는 방법을 동원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비진리로 인한 육신의 생각은 아니지만, 이 땅에서 경작받은 사람이기에 그러한 사람의 한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인간적인 생각이었지요. 이런 것을 바로 '육의 흔적'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온전하여 온 영이었다면 이런 순간의 생각도 틈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하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더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사라를 자기 아내로 취하고자 데려가 버린 것이지요. 이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고, 아브라함은 극적으로 아내를 되찾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절절하게 체험했고 하나님을 더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지요. 어떤 분이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아랫사람들이 담당한 일까지도 일일이 지시하고 간섭을 한다고 합시다. 이분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나 상대를 힘들게 하려는 마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며 상대방도 축복받을 수 있기를 원하므로 좋은 길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상대의 입장에서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때 윗사람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자기 의와 틀 속에서 상대를 힘들게 하는 믿음의 3단계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3단계에서 자기 의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영광받고 드러내고 싶은 마음, 판단하는 마음, 교만 속에서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들이 행동의 저변에 깔려 있지만 영의 사람들은 이런 악의 마음이 없으며 어찌하든 하나님의 일을 잘 이루려는 뜨거움 속에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주님의 마음을 더 닮았다면, 더 밝히 주관을 받아 온전히 화평을 좇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부딪힘이 발견될 때는 더욱더 자신을 낮추고 돌아봐야 합니다. 상대의 믿음과 마음과 입장을 한 번 더 살피고, 비록 일의 진행이 더디다 해도 비진리가 아니라면 때로는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선한 뜻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되는 길인데, 저들이 악해서 내 말을 받지 못하는구나" 하고 상대의 탓만 하고 안타까워할 뿐이라면 자신에게도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영의 정체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한 것입니다. 자신은 영으로 들어갔고, 악이 없으며 옳기 때문에 자신의 옳음만을 바라보고 더 깊은 선의 차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악이 없다 해도 이런 것까지 온전케 이루기 위해서는 또다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연단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것을 채우는가에 따라 신속히 영의 마음을 이룰 수도 있고 더디게 이룰 수도 있습니다. 매순간 자신의 말과 행함을 돌아보면서 어찌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을까,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렇게 진리를 사모하여 변화되어 나갈 때, 온 영으로 아름답게 채워져 나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으니 신속히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장차 거룩한 새예루살렘 성 안에 거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4-03 오후 7:06:55 Posted
2019-09-09 오전 11:37:3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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