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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제목
십계명 (3) 제3계명 [출 20: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06.13
오늘은 십계명 중 제3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

출애굽기 20장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다 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너는 죄 있다”고 정죄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하나님께 죄 있다고 정죄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며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경건치 못하며 허망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나 농담을 하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또한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사람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하면 “하나님도 무심하시다.”고 원망하거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말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되지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피조물의 입장에서 망령되이 거론한다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때 죄 있다 하시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소련의 한 우주 비행사는 “내가 우주에 가 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시더라.” 했다고 하지요. 우주 비행사쯤 되면 자신이 탐험한 공간이 전체 우주에 비해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인데, 극히 미미한 우주 공간을 탐험해 보고 모든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안 계신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시편 53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했지요. 겸손한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안에서 얼마든지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전도자들이 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알려 주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죄 없다 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우습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도 죄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시편 96편 4절에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했습니다. 심지어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분이시지요.
피조물인 사람도 부모나 중심으로 존경하는 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꼭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존칭어를 붙입니다. 하물며 만물의 창조주요,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경건한 자세여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한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이라고 읽는 등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익한 농담을 하면서 성경 구절을 엉뚱하게 인용하기도 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므로 성경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지요.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것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 속에 떠오른 것을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셨다.”거나 “성령께서 주관하셨다.” 하는 경우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선악 간에 행하는 모든 말과 행실을 손금을 보듯이 다 알고 계시며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음으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도 근신하고 절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대하거나 인용할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지요. 또 성전과 성물을 대할 때도 자기 물건보다 더 소중하게 다루며 하나님의 재정을 집행할 때도 근신하여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정확하게 집행되도록 합니다.
만약 교회의 물컵이나 성전 안의 창문 유리를 실수로 깨뜨렸다면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지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말할 때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도 이는 하나님과 직접 관련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간섭하시는 분야에 대해 사람이 육신의 생각 속에서 판단하거나 무례하게 말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하지요. 사울은 심히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였지만 한때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에, 다윗은 사울이 아무리 자신을 위협해도 끝까지 그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경건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언이라고 선포하여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리라 말씀하셨지요(신 18:20).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사칭하여 거짓말을 할 때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도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란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자이지요.
거짓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한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신 말씀대로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데도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 하거나 어떤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라면 상관이 없지만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이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구원받았다 해서 무조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버리고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점점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 안에 비진리가 가득하면서도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자기 생각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이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성령의 음성을 조금씩 듣는다 해도, 그것이 100%가 되기까지는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아직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꿈이나 환상 등 여러 가지 영적 체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 자기 생각 속에서 꾸는 꿈 그리고 사단이 역사해서 꾸는 꿈도 있으므로 무조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 말한다면 합당치 않지요.
또 어떤 사람이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듣는 사람의 편에서도 그 말에 대해 기도해서 정확히 알기 전에는 “성령의 음성이다.” 혹은 “아니다.” 하고 경솔하게 단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것을 말할 때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항상 신중한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범죄하여 사단의 역사로 재앙을 만났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치셨다.”고 말합니다. 또 일이 잘되면 “내 기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말해 놓고 얼마 후 그것이 꼬이고 막히게 되면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말을 바꾸는 등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지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자기편에서는 그것을 믿음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진실한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과 들레고 경솔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이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잠언 3장 6절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은 아무 때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실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를 조심하며 다만 진리 가운데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상 2장 30절 후반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에서 존중히 여긴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도 않을 것이고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존중히 여김으로 모든 말과 행동을 보장하시며 천국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06-16 오전 11:19:47 Posted
2021-06-18 오전 9:48:2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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