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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제목
천국 (29) 3천층 (1) [약 1: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02.14
오늘은 3천층의 환경과 상급 및 영광, 마음을 영으로 일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 생명을 드리는 시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천국 3천층 집의 규모와 시설, 보석

3천층의 집은 화려하고 웅장하며 거대한 규모의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이 땅의 백만장자라도 가히 흉내 낼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골프장, 수영장, 무도회장 등 집주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이 상급으로 주어지므로 이웃집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1천층이나 2천층에 비해 3천층의 영혼들에게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시는 것은, 그들이 가장 중요한 성결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3천층처럼 새 예루살렘의 집도 기본적으로 주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규모와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의 정도가 3천층의 집들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우선 집의 크기가 다른데 3천층 집의 대지 면적이 60이라면 새 예루살렘의 집은 100정도입니다. 그것도 새 예루살렘에서 가장 작은 집의 크기를 100이라 할 때 그렇습니다.
규모뿐만 아니라 집의 모양과 형태의 아름다움, 집을 장식하는 보석도 크게 차이 납니다. 3천층에도 수많은 보석들이 있지만 새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이중, 삼중의 빛을 내는 보석은 오직 새 예루살렘에만 있습니다. 3천층의 보석은 1천층이나 2천층의 보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빛을 내지만, 새 예루살렘에 비하면 단순하고 기본적인 보석만 있고, 같은 종류의 보석이라도 새 예루살렘의 보석보다는 못합니다.
3천층과 새 예루살렘 집의 특징은 문패가 없다는 점입니다. 집에서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독특한 향과 빛이 나오므로 굳이 문패를 달지 않아도 누구의 집인지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국 백성 전체 수에 비하면 3천층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지요.


2. 천사들의 섬김 수준과 구름자가용

3천층부터는 천사의 섬김 차원이 뚜렷이 달라집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시중을드는 천사가 따르고, 그것도 한 천사가 아닌 여러 천사가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더 큰 믿음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수종하는 천사의 수가 다르며, 천사의 수만 보아도 각 사람의 영광과 존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성결은 기본이요 온 집에 충성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므로 기본적으로 따르는 천사의 수도 3천층보다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상급으로 주어지는 집이 워낙 커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각종 시설과 물건들을 관리하는 천사, 면류관만 관리하는 천사, 옷만 관리하는 천사, 각종 부대시설을 관리하는 각각의 천사들도 필요합니다. 곳곳의 정원을 관리하는 천사, 골프장이나 수영장을 관리하는 천사, 놀이동산을 관리하는 천사,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천사, 연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천사,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천사 등 수많은 천사가 필요하지요.
3천층도 주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이 주어지므로 많은 천사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시중 드는 천사는 오직 주인을 사랑하고 경외합니다. 여기에 새 예루살렘에서 수종하는 천사들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인이 시키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아서 행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섬김으로 주인을 섬기니 이 땅의 왕자, 공주들에 비할 수 없는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3천층부터는 교통 수단 중에 구름자가용이 있습니다. 수증기로 된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국에 있는 영광의 구름으로 만드신 것으로 주로 천사가 운전을 해 줍니다. 3천층에는 개인용은 없고 공용만 있는데,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탈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개인용 구름자가용이 주어집니다.
구름자가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과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며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구름자가용을 타고 주님과 함께 마음껏 여행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천군 천사가 호위하며 시중을 드는데, 마치 왕이 행차할 때 많은 신하들의 호위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천군 천사들의 호위를 받는 자체도 그 사람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3. 머리카락의 길이와 장식품 등 성도들의 외모

이 밖에도 2천층 이하의 성도들과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성도들은 겉모습만 보아도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에게서 나오는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달려 있는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다르지요.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 성결된 사람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인지를 금방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남녀가 모두 살짝 웨이브가 있는 금빛 머리카락을 지닙니다. 남자는 목선 정도까지 내려온 반면 여자는 성결된 정도에 따라 머리카락 길이가 달라집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5절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말씀했듯이 낙원의 여인들은 머리카락이 어깨선에 닿을 정도로 가장 짧고 1천층, 2천층으로 갈수록 더 깁니다. 3천층과 새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3천층의 여인들은 머리카락의 길이가 척추 중간 정도까지 이르고 새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머리카락이 척추 끝까지 닿을 정도로 깁니다.
머리카락의 길이 자체도 영광과 상급이지만 그에 따른 머리 장식품도 달라집니다. 낙원에서는 아무런 장식품도 주어지지 않으며 1, 2천층은 각각의 상급에 따라 장식품이 조금씩 주어집니다. 그런데 3천층부터는 머리 장식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마치 왕비나 공주들의 머리 장식이 일반 백성들과 달라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듯이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4. 생명을 드리는 시험과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께서 3천층의 영혼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시는 면류관이 있는데 바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이름을 붙이신 이유는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이 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약 1:12).
저에게도 생명을 잃는 시험이 여러 차례 왔는데 그중 두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1990년도의 목사 파직 사건입니다. 당시 소속돼 있던 교단 총회에서 본 교회에 몇 가지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 터무니없는 것들이어서 우리는 상소 이유서를 보내고, 성경에 비춰 무엇이 어긋나는지 알려 주면 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교단 총회에서는 우리의 상소 이유서를 “이유가 없어서 기각하기로 했다”고 통고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교단의 머리들이 콜라를 보고 사이다라고 해도 “아멘” 하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야 저와 교회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보고 비진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저와 교회는 악으로 대항치 않았고, 오직 선과 사랑으로만 행했습니다. 결국 대의원 300명 중 90여 명밖에 참석지 않은 교단 총회에서 48명의 동의로, 목사 파직이 가결되었습니다.
목사가 파직을 당한다면 생명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의를 지킨 사람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결의 오중복음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1992년에 있었습니다. 제가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렸던 일입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조치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세상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늘 외쳤던 제가 막상 죽음 앞에서 세상과 타협할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결국 저의 목숨은 끊어졌고, 제 영혼은 주님 앞에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이후,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계속해서 크고 작은 시험이 따릅니다. 생활 속에서 매 순간 ‘진리를 택할 것이냐, 세상과 타협할 것이냐?’ 하는 시험이 옵니다. 그때마다 진리를 택하는 사람은 그만큼 시험을 통과해서 영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항상 성령의 법을 좇아 나가면 믿음의 시험들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지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육체의 소욕을 끊어 나가야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내 원대로 살고자 하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대로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항상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정녕 자기 생명을 드린 것과 같습니다. 나를 형성하고 있었던 육을 온전히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를 ‘살아서 하는 순교’라고 합니다. 또한 이것이 ‘죽도록 충성’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보통 ‘충성’이라 하면, 맡은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영적인 충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영의 마음을 이루는 참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사명 감당도 동반되어야 하지요. 사명을 감당해야 자신을 더 발견할 수 있고 변화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을 바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했을 때 주어지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사람들도 3천층에 들어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순교할 당시에는 비록 성결되지 못했다 해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할 중심이라면, 능히 육을 벗고 성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죽었다 하여 무조건 순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했지요. 그리고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 중에서도 3천층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21-02-17 오후 3:52:55 Posted
2021-02-19 오전 11:10:0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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