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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

제목
사랑장(1)  [고전 13:1-1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9.01.02
오늘부터는 사랑장 강해 말씀을 증거합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 기뻐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라면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와 다투지 말라고 하면 다투지 않습니다. 바른 말씨와 몸가짐을 가지라면 그대로 순종합니다. 이런 자녀가 있다면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겠는지요?

그런데 자녀가 부모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 마음에 부모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어떻게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순종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녀의 성격이 본래 순종적이거나 부모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순종할 수도 있지요. 단지 의무감으로 순종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이처럼 사랑이 없는 순종은 부모를 기쁘게 할 수가 없으며 또한 이를 온전한 순종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인 여러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결국 마음 안에 참된 사랑을 이루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랑장의 말씀은 바로 이 사랑에 대해 밝히 알려주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이 사랑장의 말씀은 이 마지막 때 성령의 도구로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무장하고 양식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성령의 도구가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악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는 반드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사랑장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성결되었으며, 영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임해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무장하여 온전히 행할 수 있는 분이라면 마음 안에 참사랑이 임했다고 할 수 있지요. 성령의 열매들도 이 사랑이 임하는 만큼 맺혀지게 되는 것이고요.

이 시간에는 사랑장의 말씀들을 한 구절 한 구절 자세히 살펴보기에 앞서 사랑장의 전체적인 내용과 사랑장이 기록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 부르는 것은 한 장 전체의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에 따라 사랑을 정의하지요. 그리고 자신은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면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상처받고 아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이는 바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자신의 한계 속에서만 사랑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장에는 이처럼 ‘사람 편에서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 말씀하시는 참된 사랑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통해 참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를 밝히 깨달으시고 듣는 모든 말씀들을 즉시 행하셔서 이제는 ‘진정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고백할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기록된 배경을 살펴보면 ‘사랑이 왜 중요한 것인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바로 앞장인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과 직분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지요. 그런데 여러 은사 중 ‘어느 은사가 더 높으냐’ 하는 등 성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고린도전서 12:7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한 것처럼 각종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하도록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사로 인해 오히려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도 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병 고치는 은사나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교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주술을 행하는 이들처럼 은사를 앞세워 스스로를 높이고 돈을 요구하는 등 자신의 유익을 구해 나가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분쟁을 잠재우고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 말하며 은사는 다양하지만 모든 은사는 오직 성령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므로 은사는 다 귀하고 동등 됨을 설명합니다.

이를 설명한 후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1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 (즉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말하고 뒤이어 이 사랑장을 기록했지요. 이 사랑장을 통해 은사 중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임을 말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결국 ‘더욱 큰 은사’, 곧 ‘사랑’을 온전히 이루게 하기 위함임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이지요.

교회의 성도들에게 아무리 큰 은사나 직분이 주어졌을지라도 사랑이 없고 오히려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다면 그 은사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와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참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해 보이나 실제로는 참이 아닌 가짜 사랑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예를 들어 시장에는 명품의 상표를 달고 있고 그 모양이 명품과 똑같아 보이는데도 실제로는 명품이 아닌 모조품들도 많이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모조품을 진짜 명품으로 잘못 알고 구입하는 것입니다. 명품은 대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처음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며 그 질도 우수하지만 모조품은 사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쉽게 해지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많지요.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명품과 같은 영의 사랑이 있고 모조품과 같은 육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오직 상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며 조그만 일에도 쉽게 깨어지는 사랑도 있지요.

지금부터, 세상에서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을 말씀드릴 때 여러분은 그 사랑이 과연 참된 것인지, 아니면 모조품에 해당하는지 구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는 명품과 같은 참된 영의 사랑을 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웃이나 친구간의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웃이 형제나 다를 바 없다 하여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웃끼리 친분이 두텁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나 이 말은 점차 옛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이웃끼리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집 주변에는 높은 담을 쌓을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담을 쌓고 살기도 합니다. 남들에게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또 이웃이 조금만 피해를 준다고 느끼면 앞뒤 잴 것 없이 배척하거나 맞서 싸우려 합니다. 요즘에는 이웃끼리 사소한 일로 서로를 고소하고 법정까지 송사하는 일들이 많다고 하지요. 친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이 친구만은 끝까지 내편이 되어 줄 것만 같았는데.’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가 배신하고 떠나므로 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경우, 전에는 절친한 친구였는데 주님을 영접하고 빛 가운데 살고자 노력하니 이전처럼 함께 세상 것을 즐길 수 없으므로 여러분을 멀리하고 핍박하는 친구도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모저모 자신의 실리(實利)를 따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오늘날에는 이와 같이 순수한 사랑으로 이웃이나 친구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 물질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형제간의 사랑은 어떠할까요? 이웃이나 친구와는 달리 한 핏줄을 타고 났으니 형제의 사랑은 그래도 낫지 않을까요? 물론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난 형제는 아무래도 남보다는 더 각별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형제는 서로를 위해 희생하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하지요. 그런데 어렸을 때는 우애가 무척 각별하다 해도 각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아무래도 자신의 가정에 더 충실하게 되고 형제에게는 비교적 소홀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저도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형님과 누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막상 질병으로 7년이나 몸져 누워있게 되니 형제들에게 오히려 짐스런 존재가 되었지요. 형제들도 아픈 동생을 돕고자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의 한계에 이르니 외면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 자신의 가족도 돌보아야 하니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극한 경우, 형제끼리 부모님의 유산을 두고 심히 다툼으로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한 부모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 오히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일이 많으니 안타깝지요.

그렇다면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룬 부부의 사랑은 어떨까요? 남녀가 연애할 때 보면 “당신 아니면 못 산다”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겠다” 하는 등 온갖 달콤한 말로 사랑을 고백하고 맹세합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나면 어떻습니까? “당신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말하기도 하고 “속았다”며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지요. 남편은 음식이 조금만 입에 안 맞아도 아내를 타박하기도 하고, 아내는 남편이 돈을 좀 적게 벌어오면 ‘친구 누구네는 벌써 집을 산대’, ‘좋은 차를 샀대’ 하며 남편을 쿡쿡 찌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있다고 하지요.

또 우리나라 가정 폭력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를 보면 배우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경우가 전체 부부의 절반 가까이 이른다고 합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부부사이로 살아가면서도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잊고 이처럼 서로를 미워하고 다투며 힘들게 살아가는지요.

요즘에는 신혼여행에 갔다가 헤어져서 돌아오는 부부들도 비일비재하고 결혼 후 이혼에 이르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합니다. 뜨겁게 서로를 사랑하므로 결혼하지만 함께 살면서 서로의 안 좋은 모습까지 보게 되고 생각이나 취향도 다르므로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이 다 식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그 사랑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육적인 사랑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다는 부모의 사랑은 어떨까요? 자신이 좋은 것을 먹고 입으려 하기보다 자녀에게 먼저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이처럼 ‘자기 자신보다 자녀를 먼저 생각한다’ 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있지요.

예를 들어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엇을 강요하면서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하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거나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자녀가 진로나 결혼을 선택함에 있어서 부모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선택하기라도 하면 심히 반대하기도 하고 ‘실망스럽다’ 말하기도 하지요. ‘내가 너를 위해 이마만큼 희생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요즘에는 자녀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자녀를 버린다든가 이혼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이는 끔찍한 일들도 있고요. 그런데 혹시 이 말씀을 들으시고 ‘그렇다면 이웃이나 친구, 가족 간의 사랑은 모두 헛되고 무익하니 사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하고 오해할 분이 계신지요? 물론 그런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웃이나 친구, 가족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께 대한 계명 네 가지 다음에 나오는 것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5:33에는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하셨지요. 또 마태복음 22:39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다음으로 가장 큰 계명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참된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요. 이 땅의 삶을 위해 당장 눈앞의 유익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므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적인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한 여 집사님이 있었는데 이분의 남편은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오히려 교회에 나가는 아내를 핍박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아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트집 잡고 아내를 못살게 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아내는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품속에 늘 남편의 신발을 안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신발을 품에 꼭 안은 채 ‘하나님 오늘은 이렇게 신발만 교회에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 신발주인도 함께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매일같이 기도했지요. 그런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집사님의 남편이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지요.

남편은 일찍이 출근을 하기 위해 신발을 신을 때마다 한겨울에도 신발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여 이를 이상히 여기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자신의 신발을 품에 꼭 안고 기도하러 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그 사랑과 정성에 감동을 받아, 핍박하는 남편이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남편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자신을 욕하고 핍박하는 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사랑으로 기도해 줄 수 있겠는지요? 또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지금 같은 세상에 그 누가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때로는 멸시를 받으면서도 마음 중심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주님으로부터 참사랑을 받고 배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중에는 주님을 알기 전, 육적인 사랑으로 인해 아픔을 느껴본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헛된 사랑에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위로해 주시고 친구가 되어 주신 분이 한 분 계시지요. 누구이십니까? 바로 우리 주님이시지요.

이사야 53:3에 보면 “그는(곧 예수님은)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아무 허물이 없으심에도 이처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으셨지요. 또 예수님은 많은 간고, 곧 가난함과 고생스러움을 겪으셨습니다. 질고, 곧 질병의 고통도 너무나 잘 아시지요.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잘 아시며 이해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하늘 영광을 뒤로 하시고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인생들과 같이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요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사랑을 주셨지요.

저도 주님을 영접하기 전, 7년 동안이나 온갖 질병으로 고통 받으면서 질병과 가난의 아픔과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절절히 느껴볼 수가 있었습니다. 병석에 누워있다 보니 제게 남은 것은 병든 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세상의 멸시와 천대, 외로움과 절망감뿐이었지요. 그러나 제게 참사랑을 주신 유일하신 분, 바로 우리 주님을 만나면서 모든 질병을 치료받았고 새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병을 깨끗이 치료받은 후에는 산더미 같은 빚을 안고 가장 낮은 바닥부터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동벌이를 하며 산동네의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모든 시간들이 얼마나 값지게 여겨지는지요. 이러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저는 더욱 큰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이제는 수많은 영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싸매 줄 수 있는 주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가 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아름답고 값진 것들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하루를 천 년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여러분이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섬세하고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푸른 하늘과 바다, 산천초목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간 경작을 받은 후 구원받아 천국에 갈 때까지 이 세상에서도 항상 천국을 소망할 수 있도록 친히 아름답게 지어 주신 것들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고 사랑받은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까?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으면 변질되는, 썩어질 헛된 사랑이 아닌, 영원하고 참된 사랑을 해야 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이 사랑장 말씀을 들으시면서 먼저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시고 그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에 반드시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저 천국에 이르러서는 물론, 천국에 갈 때까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루하루 아버지 하나님과 참된 사랑을 나누는 사랑스런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의 도구가 되어 이 마지막 때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감동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2-28 오후 3:36:38 Posted
2023-04-18 오후 4:15:1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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