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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

제목
사랑장(8)  [고전 13: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9.02.20
사랑장 여덟 번째 시간으로 영적인 사랑의 개념 중 ‘온유함’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온유하시기에 우리가 온유를 이루는 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증거되는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유함을 이룰 수 있는지 깨달으셔서 많은 영혼들이 여러분의 품 안에서 쉼을 얻고 구원에 이르며, 더 아름다운 천국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온유함의 의미

고린도전서 13:4에 보면 ‘사랑은 온유하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온유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영적인 사랑이 많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이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전에 보면 온유를 ‘성격이 부드럽고 유순함, 온화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정의합니다. 솜을 떠올려 보면 온유한 마음이 어떠한 마음인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솜은 아무리 단단한 물체가 부딪혀 와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성품이 순해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을 온유하다 합니다. 그런데 순하고 착하다는 사람들 중에는 본래 성품이 소극적이거나 유약해서 상대에게 잘 순종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가 자신을 찌를 때 억지로 눌러 참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능이 약간 부족하여 화낼 줄 모르고 웃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마음에 악이 없고 사랑이 가득해서 악한 자를 참아 주고 품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참된 온유를 소유했다 할 수 없습니다.

2. 영적인 온유함

영적인 온유함은 마음에 악이 없고 영적인 사랑이 맺혀 있으므로 어떤 악한 자라도 대적하지 않고 참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하며 부드럽기만 한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온유함은 육적으로 사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품는 것이며 때때로 사람을 반듯하게 다스리고 이끌 수 있는 위엄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온유한 사람은 선할 뿐 아니라 지혜롭고 똑똑하여 본이 됩니다.

이처럼 영적인 온유함은 단순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만을 뜻하지 않고 내면의 온유함과 함께 외적으로도 덕을 갖춘 상태를 말합니다. 악이 없고 선해서 마음이 온유하더라도 내면의 온유함만 있으면 남을 품고 다스리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이 내면의 온유함과 함께 외면의 덕을 겸비해야만이 더 온전해지며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되지요. 이런 사람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므로 큰 일들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전에 보면 덕이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서 남을 정복시키는 일’ 등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의미의 ‘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이처럼 마음이 올바르고 공정하며 도리에 합당히 행합니다. 즉 잘 갖추어진 인격으로 남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정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갖추어진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해 주고 포용해 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거침돌이 되지 않으며 상대에게 신뢰를 주며 사랑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영적인 온유함에 있어 덕은 우리가 입는 옷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도 벌거벗고 있으면 수치스러운 것처럼, 아무리 마음이 온유해도 외면적인 덕이 함께 갖춰져 있지 않으면 내면의 온유함이 그 가치를 발휘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온유함의 빛을 흐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온유하여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말을 할 때 꼭 필요하지 않은 말까지 한다면 어떤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덕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아무리 온유하다고 해도 그 온유함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또 어떤 사람은 온유하고 선해서 다른 사람에게 악한 감정을 품는다거나 험담을 하는 일도 없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거나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행함이 부족하다면 덕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덕이란 내면이 온유할 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실 하나하나가 바르게 갖추어져 있음으로써 사람을 품고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3. 온유함이 가장 승하신 예수님

온유함이 가장 승하신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12:20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심같이 영혼들을 향한 자비와 긍휼, 사랑과 용서가 풍성하셨지요. 그리고 마태복음 12:19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하신 대로 말씀하시는 것이나 행동하시는 것, 외모 등에 위엄이 있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31-32에 보면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은 모양도 없으셨고 어떤 흠이나 점도 없이 거룩하고 온전하신 모습으로 말씀을 증거하셨기에 권세가 따르고 많은 무리가 붙좇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위엄 있게 죄에 대해 깨우쳐 주기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4-15에 보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한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매매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자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하는 베드로를 향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엄히 책망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비진리나 불의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함이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우쳐 주시기 위해 이처럼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미움이나 감정 등의 악은 모양도 없으신 온전하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신 대로 생명을 버리신 행함을 통해 확실히 그 사랑을 믿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내면에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시면서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행하심으로 영혼들을 품고 다스리시는 외면의 덕을 함께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심으로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사랑과 공의를 통해 본 온유의 양면성

영적인 온유함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랑과 공의’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생각할 때 오직 용서하고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 주는 것,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고린도전서 13:6 전반절의 말씀대로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한없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때가 있는가 하면 죄악을 엄히 심판하실 때가 있지요.

민수기 14:18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말씀한 대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중한 죄를 거듭거듭 지어가는 영혼들도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용납하기만 하신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육의 부모도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가 그른 길로 갈 때는 매를 들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우리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때때로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명으로 이끄시기 위한 너무나도 지극한 사랑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열심히 말씀 안에 살고자 노력하는 영혼들이나,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거듭거듭 중한 죄를 범해 나가는 영혼들이나 똑같이 구원을 받게 하신다면 어찌 좋으신 하나님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임의대로 영계의 법들을 어기신다면 진정한 인간 경작이 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도 이를 송사하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지만 정해진 법칙을 따라 모든 일들을 이루어 나가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공의는 사랑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므로 사랑과 공의는 상호 보완의 관계인 것입니다.

사랑의 한 개념인 온유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선하고 온유하여 사랑과 긍휼이 많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덕이 함께 갖추어질 때 그 온유함이 온전한 것이 되고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이지요. 즉 많은 사람을 옳은 길, 곧 구원의 길로 이끌며 영혼의 쉼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온유하다 인정하시려면 먼저는 반드시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야 하며 덕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함을 소유하게 되면 이 세상의 부나 명예, 권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양식삼으셔서 온유함을 꼭 이루심으로 이 온유함의 힘, 곧 사랑의 힘을 체험해 나가시며 아버지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3-08 오전 8:14:00 Posted
2023-04-18 오후 4:15:1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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