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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

제목
사랑장(15)  [고전 13:4-5]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9.04.10
<마 12: 20>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신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 자녀로 이끄시기 위해 오래 참고 인내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천국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며 반드시 참 사랑을 이루는 하나님의 귀한 열매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때 스스로 점검해 보고 해당되는 분야가 있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1)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생각
어떤 사람과 말다툼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나 얄미운 나머지 가다가 걸려 넘어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니 잘됐다., 참 고소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결코 이런 악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내나 남편 또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항상 건강하고 지킴받기를 원하지 아프거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고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며 상대의 허물이나 약점을 알고 싶어 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모임에 갔는데 누군가 어떤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귀가 솔깃해진다면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귀가 솔깃한 이유는 대개 험담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 17: 9>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려고 합니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남이 잘될 때에 시기,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샀다면 마땅히 기뻐해야 하지만, 마음에 사랑이 없으므로 시기가 일어나서 배가 아픈 것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잘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상대가 잘되고 사랑받기를 바라게 됩니다. <롬 12: 14>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말씀하신 대로 원수마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생각
어떤 성도가 성도로서 가서는 안 될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면, 저 성도님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고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저 성도님이 왜 저런 곳에 들어가실까? 의아했다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선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임해 있으면 악한 생각 자체가 들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좋지 않은 말을 전해 듣는다 해도 들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최대한 선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에 대해 나쁜 말을 전하면 우리 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며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고 악하게 말합니다. 헐뜯고 비방하면서 이를 당연하게 여기므로, 사적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는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쉽게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비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상대의 형편과 처지, 전후 사정 등을 살펴보려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약 4: 12>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했습니다. 이웃을 판단하는 것은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 10: 12>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상대가 명백한 잘못을 했더라도 어찌하든 그 사람의 영혼이 잘되고 하나님께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좀 더 온전한 사랑은 오히려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상대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상대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진리를 알려 주고 변화될 수 있도록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지요.

3)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
단순히 상대방에 대해 악한 생각을 품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생각을 품는 것이 곧 악한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양심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면 선이 아닌 것들이 많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인 것들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善)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히 12: 1> 전반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하신 대로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을 때에 받은 축복과 선한 열매들을 간증하고 있는 것처럼,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죄입니다. <요일 3: 4>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하신 것처럼, 죄는 불법, 곧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와 악은 모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비진리입니다. 이 둘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고,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 부분과 같습니다. 뿌리가 없으면 줄기와 잎이 있을 수 없고 열매도 맺힐 수 없는 것처럼, 죄는 악으로 인해 성립됩니다. 사람에게 악이 있음으로 인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눅 6: 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한 대로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미운 사람에게 찌르는 말을 한다면, 이는 마음의 악이 미움, 악한 말 등의 구체적인 죄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악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모든 것, 모든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오는 것이 죄인데,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므로 불법이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사랑하라 하셨는데 미워하면 미움이라는 죄를 지은 것이 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는데 안식일을 어기면 이 또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이라는 기준에 의해 성립되고 구체화됩니다. 만약 나라에 법이 없다면 범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법을 어기는 행위가 죄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법은 누구에게 범죄했느냐에 따라 국가에 대한 죄, 사회 공공에 대한 죄, 개인에 대한 죄로 분류되고,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경범죄, 중죄로 나눠지듯이,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을 기준으로 미움, 시기, 질투, 간음 등의 육신의 일들과 육체의 일로 조목조목 분류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 악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죄를 버리면 마음에 악이 있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의 죄성이나 타고난 본성 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온전히 성결된 것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살전 5: 22>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말씀하셨으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으로 더 나아가 온 영을 이룰 때라야 온전히 성결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간단하게 압축해 보면 사랑입니다. <요일 3: 23>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했고, <롬 13: 10>에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악한 것이며 죄, 곧 불법이 됩니다. 만일 내가 악한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려면 마음에 얼마나 사랑이 있는지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영혼들을 사랑하는 만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려면

1) 악한 것은 생각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악을 벗으려면 악한 것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고, 설령 보거나 들어도 떠올리거나 되새기려 하지 말고 기억하려 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순간적으로 오는 생각이나 잠시 스치는 생각들까지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또한 악한 일에 결코 가담해서는 안됩니다. <요한 2서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곧,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했습니다. 그만큼 철저히 악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죄성을 받아 태어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비진리들을 접하게 됩니다. 육의 사람은 악에 물들기가 쉽기 때문에, 이러한 죄성과 비진리를 바탕으로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죄성과 비진리를 벗어나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죄성과 비진리를 벗어나가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비진리를 받아들이고 입력시키는 것은 쉽지만, 벗어버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흰옷에 검은 잉크가 물들면, 쉽게 물든 것에 비해 검은 물을 지우고 다시 희게 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갈 5: 9>에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했는데 악은 지극히 작아 보이는 것이라도 더 큰 악으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작은 악이라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시 97: 10> 전반절에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했고, <잠 8: 13> 전반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악을 생각하지도 않고 철저히 벗어버리려면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범하면 성령이 탄식하시므로 곤고함이 오게 되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너무 싫어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수록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작은 악의 모양까지 다 버리고 또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좋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잠 22: 8> 전반절에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했고, <갈 6: 7> 후반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대로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두게 됩니다. 자신 또는 자녀에게 질병이 오기도 하고 사고를 만나기도 합니다. 가난과 가정불화로 근심 속에 살아가기도 합니다. 물론 재앙이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쌓은 악이 일정 수준에 다다랐을 때, 먼 훗날 그 자손들에게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범사에 많은 악을 행해 나갑니다. 내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 원수를 갚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 20: 22>에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했습니다. 공의에 따라 인간의 생사화복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출 20: 6>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신대로, 선을 행해 나가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3) 말씀과 기도를 공급해야 합니다.
악을 벗고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영혼에 두 가지를 항상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악한 생각들을 물리치고 선한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행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면서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곱씹을 때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에 숨어있는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에 마음의 악을 지배하고 벗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벧전 4: 8>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했습니다. 내가 상대의 허물을 용서해 줄 때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다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축복 가운데로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4-16 오전 11:20:54 Posted
2023-04-18 오후 4:30:5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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