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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제목
욥기 강해 (26) 환난은 죄에서 온다 [욥 11:12-20]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10.02
오늘은 모든 환난의 원인은 죄에 있다는 것과, 우리가 죄에서 돌이켰을 때 어떤 축복이 임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각이 없는 허망한 사람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욥 11:12)
지각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아서 깨닫는 능력” 혹은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살아온 과정 속에서 쌓여진 지식으로 양식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지각이 바로 서 있으면 허망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지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양식이 되어서 우리를 낳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우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들나귀 새끼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 묶어 놓지 않아서 제멋대로 뛰어다닙니다. 마음대로 다니다가 덫에 걸리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기도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기 때문에 영혼의 주인 되시는 조물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에게 절하는 등 들나귀처럼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반대인 어둠의 일, 비진리를 행하지요. 그러다가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되어 결국은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결코 지각이 없는 들나귀처럼 행동하는 허망한 사람이 되지 말고, 오직 말씀 안에 순종하며 참 신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회개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욥 11:13~14)
여기서 ‘주를 향하여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항복을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회개 찬송 중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가사처럼 ‘내가 옳다’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즉 그동안 빗나갔던 마음을 돌이켜 바로 정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음의 죄악을 버리라 하지 않고 손의 죄악을 버리라고 한 것일까요? 구약 시대는 행위적인 구원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에는 사람의 힘만으로 죄를 버릴 수 없으므로, 마음에는 죄가 있어도 행위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행함으로 나타날 때 죄라 인정되지요.
그런데 마음에 있는 것들이 결국 손,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도적질을 하고, 마음에 교만이 있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지요. 마음에 미움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사람을 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소발이 욥에게 손의 죄악을 버리라고 한 것은, 결국 마음의 죄악을 돌이키라는 말이지요.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곳에서 불의를 제하여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즉 마음과 생각,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분야에서 죄악을 사라지게 하라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회개할 때 죄악을 중심에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토설합니다. 그것이 참 회개라면 이제 죄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혈기내고 다투던 사람이 짜증을 버리고 다툼을 그쳐야 합니다. 불평하며 서운해하던 생각을 자신의 악이라 인정하고 이제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 고백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단지 회개한 상황만 모면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생각 모든 삶에서 그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회개, 변화입니다.


3. 죄악을 버릴 때 임하는 축복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욥 11:15~16)
‘흠 없는 얼굴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얼굴을 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죄가 있으면 불안하고 곤고하며,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하지요. 또 진리를 깊이 알아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우리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단계가 오면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반대로 죄악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부르짖어도 어떤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사 59:1~3).
그러나 욥의 경우는 큰 죄가 있어서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단을 통해 마음의 죄악을 깨달아 버리고 더욱 온전한 축복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발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알지 못했기에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오해하고 있지요.

소발은 욥에게, “네가(환난을)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라 했는데, 이는 죄에서 돌이키면 곧 환난을 잊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면 그 물을 다시 움켜 쥘 수 없습니다. 새로운 물이 계속하여 흘러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월의 흐름을 말하지요.
만일 여러분이 질병에 걸렸다거나 가정과 일터에 문제가 생겼다 해도 세월이 흘러 그 환난이 지나가면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좋은 시간이 왔다면 오히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즐거워지며 감사의 마음이 들지요. 연단의 시간도 당시는 막막해 보여도 믿음으로 행군할 때 눈물이 기쁨으로, 한숨이 웃음소리로 바뀌며 하나님께서 위로와 평안으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욥 11:17~19)
마음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인 빛이 들어왔을 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니 마음의 죄악을 버릴 수 있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도 불의를 몰아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다’는 것은 생명의 빛이 들어옴으로 세상과 짝해 살았던 어두운 과거는 지나가고 이제는 진리와 짝하며 대낮과 같이 밝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생명의 빛이 들어오면 아직 시험 환난이 남아 있고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곧 아침과 같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아침이란 새로운 날, 새 소망,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소망이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시험 환난이 떠나니 새 힘을 받아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어두움에서 나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납니다(고후 5:17). 원수 마귀 사단의 손에서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사망에서 영생으로, 질병의 늪에서 건강한 삶으로 옮겨지고, 얽히고설킨 문제가 떠나니 참된 평안을 얻게 되지요.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기 때문에 새 아침을 맞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하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새 날을 맞이하니 든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시험 환난 속에 괴로워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되어 새로워지니 소망도 생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안에서 문제 해결을 받고 새 소망이 새겼으니 더욱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영적으로 보면 굳건히 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반석에 서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두루 살펴보며 안전히 쉬리니’ 했는데, 이 의미는 죄악을 버림으로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서 모든 불의가 떠나면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천군 천사로, 성령의 불담으로 지켜 주시기에 마음의 쉼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결국 상대와 환경을 주관하던 어두움이 떠나고, 그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도 시험 환난은 나와 상관이 없고 항상 평안하게 되지요.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다는 것은, 진리 안에 굳건히 서면 원수 마귀가 역사할 수 없기에 두 발을 쭉 뻗고 잠을 잘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시 4:8).
‘첨’이란 문자적으로는 아첨이라는 말과 같으며, 여기서는 “호의”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욥에게 호의를 베풀며 은혜를 구한다” 즉 존경과 사랑, 물질 등 많은 것들을 공급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죄에서 떠나 진리 가운데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여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3. 악한 자의 소망은 끊어지고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욥 11:20)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악한 사람은 영적인 눈이 어두우니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며 진리를 안다 하지만 지켜 행하지 않으니 여전히 영적으로는 소경과 같지요. 그러니 이런 이들은 잘 보이지 않아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한다는 것일까요? 사망의 늪에서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도망해야 합니다. 시험 환난이 아니라 빛으로 도망가야 하는데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면 도망할 길을 찾지 못합니다. 나의 죄악으로 어려움이 왔는데 인정하지 않고 환경 탓, 누구 탓하니 문제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헤매는 것이지요.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고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자연히 영안이 어두워짐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도망할 길을 찾지 못하니 악한 자의 소망은 기운이 끊어지고 말지요. 악한 자는 악을 계속 쌓아가니 종국에는 더 나갈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리며 기운이 끊어지므로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종 사고와 질병, 재앙과 환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앞일을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건강 검진을 수시로 하며 보험과 투자 등으로 여러 대비책을 세우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가장 완벽한 재앙 대비책은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잠언 1:33에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말씀한 대로,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환난이 떠나고, 두려움 없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항상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05 오후 5:04:11 Posted
2023-06-04 오전 11:40: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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