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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제목
욥기 강해 (27)  [욥 12:1-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10.23
오늘은 친구들의 말을 반박하며 하나님을 오해하는 욥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친구들의 말을 비꼬며 반박하는 욥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욥 12:1~2)
욥의 입장에서는 친구들의 말이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들만 옳다며 욥을 훈계하니 욥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뒤집힐 뿐이었지요. 친구들이 못마땅했던 욥은 “너희의 말은 옳고 내 말은 옳지 않으니 나는 사람도 아니요 너희만 사람이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비꼬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말이 옳다”라고 한 것은 중심에서 상대를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속이 상한 나머지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버리는 상황입니다. 친구들이 지식과 지혜가 있는 척하며 자신을 가르치고 무시한다고 생각한 욥은 속이 뒤틀리고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몹시 기분 나빠하며 “너희들이 그렇게 지혜가 많으냐? 너희들이 죽으면 지혜도 다 죽겠구나” 하고 빈정거리는 것입니다.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욥 12:3)
이 말은 “나도 너희처럼 총명하고 영리하다. 내가 너희보다 잘났으면 잘났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런 뜻입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한 말을 난들 모르겠느냐? 내가 바보도 아닌데 주제넘게 나를 질타하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내용이지요.
서로가 옳다고 끝없이 변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론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고부간에, 그리고 성도들 간에 어떤 상황에서도 변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옳다면 상대에게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고, 이때 상대가 깨우치지 못하면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고, 그래도 깨우치지 못하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만일 그러지 않고 혈기를 내며 다툰다면 서로 관계가 서먹서먹해지고 원수 맺는 일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 변론하지 말고 은혜롭게 웃으며 잠잠히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하지요. 이렇게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탈 수 없고, 하나님 앞에 담을 쌓는 일도 없습니다.


2. 하나님까지 끌어들여 자기주장을 하는 욥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욥 12:4)
욥은 친구들에게 감정을 내더니 이제는 하나님까지 끌어들입니다. 종종 사람들이 서로 변론하며 다투다가 엉뚱하게 제삼자를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어느 일꾼이,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며 자기주장을 하는 데 이용합니다. 상대가 내 말을 안 들어주니 나보다 높고 상대가 인정할 만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변론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이렇다”라고 인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변론하지 말라고 했는데 진리를 위배하여 변론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욥이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욥은 선조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이 능력자이심도 알았지요. 그래서 때를 따라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자녀들을 대신하여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욥이 번제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시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롭고 순전한 욥 자신이 번제를 드렸더니 이웃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친구들에게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욥의 말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믿음의 선진들은 이웃에게도 인정받고 칭송을 받았지 결코 조롱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이방인들까지도 경외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애굽의 왕 바로도 모세 선지자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 선지자를 보장해 주셨지요.
물론 진리를 듣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싫어합니다. 어둠이 빛을 싫어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고 지켜 주시며 결국 높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조롱받는 것 같았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수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예레미야는 생명을 보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 왕으로부터 선대를 받았습니다.
설령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한다 해도, 그들의 중심에서는 조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지 말씀 안에서 반듯하게 살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 때문에 조롱거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악한 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으로 판단하는 욥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욥 12:5)
욥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재앙 속에 처해 있지만 친구들은 염려 근심 없이 평안합니다. 그러니 평안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재앙을 당한 욥을 멸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친구들의 권면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이는 욥 자신이 실족당한 자이며 재앙 속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욥 자신은 의롭고 순전한데 그러한 자기에게 재앙이 온 것이라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의 말에는 비진리도 많았지만 상당 부분 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만일 욥이 친구들의 권면을 듣고 순종했다면 재앙은 물러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이 아무리 진리로 설명해도 나만 옳다고 주장하며 계속 무시하니 여전히 재앙 속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욥 12:6)
종종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선한 사람은 불통하고 오히려 악한 자는 더 형통하고 잘되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을 사랑하시지, 악한 사람을 사랑하실 리가 없습니다.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의인을 형통케 하시는 분이지요(잠 12:2).
그런데 욥은 강도의 장막이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과 평안을 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의로운 자에게는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말입니까?
물론 욥이 처음부터 이렇게 악을 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자꾸 뒤틀리다 보니 점점 악이 더하여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충만하게 달려갑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점점 충만함을 잃고 기도를 쉬게 되지요. 자연히 주변으로부터 진리의 권면이나 훈계 또는 책망을 듣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들을 들어도 스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본의 아니게 입술에서 진리에 합당치 않은 말들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 신속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원수 마귀 사단이 떠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이 계속하여 감정을 돋우어 마침내는 절제하지 못하는 단계로 몰아갑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면 회개하려고 해도 되지 않으니 욥과 같이 광풍 같은 말들을 뱉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계속 서운하게 하다 보면 결국 지킴받지 못하고 재앙이 임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진리가 나를 비출 때에 신속하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욥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나쁜 하나님이 아니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여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때로는 악한 사람들이 잘되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악을 행하는 이가 평안하고 잘 되는 것 같은데…”라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나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차라리 거지가 되어도 하나님 말씀 안에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축복이지요. 잠시 살아가는 동안 더 먹고 입고 누리고 즐기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남을 속이며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어찌 마음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항상 불안하고 염려 근심이 떠나지 않지요. 물론 그들도 악이 지나치다 보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홀연히 재앙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1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말씀한 대로 항상 진리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잠잠히 진리를 행함으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시고 연단 중에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시는데 욥은 그런 하나님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나의 어려움과 문제가 기도하는 대로 바로바로 응답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를 버리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회개했다 하지만 아직 진리로 변화되지 않았으니 응답의 때가 아닌 것이지요.
인내와 참 믿음을 갖길 원하시기에 축복의 때를 늦추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더 열심히 찾아 변화되며,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힘과 능력 되시는 주님을,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높여 드릴 때 응답과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3:17~19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넘쳐나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26 오전 11:24:14 Posted
2022-10-28 오전 9:32:1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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