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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제목
욥기 강해 (31) 영적 지식의 중요성 [욥 13:20-28]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11.27
오늘은 영적인 무지 가운데 하나님께 항의하는 욥의 모습을 보면서 영적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영적 지식이 없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욥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욥 13:20~21)
지난 시간에 욥은 사람 중에는 자신과 변론할 자가 없다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과 마음껏 변론할 수 있도록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 합니다. 한 가지는 주의 손을 자신에게 대지 말아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주의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손대지 않으시고 그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 앞에 토설하고 따질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욥은 시험이 오기 전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욥 3:25), 죽음보다 더한 고통 중에 있는 지금은 더더구나 하나님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스스로 의인이 되어 있으며, 영적 지식이 없어 진리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육을 낳아 주신 아버지가 되시며,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욥은 의인인 자신에게 아무 이유 없이 시련을 주신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니, 만일 하나님의 허락 없이 마음껏 토설하다가는 더 큰 고통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만일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면, 욥은 지금까지 쏟아냈던 원망과 비진리의 말보다 더욱 혹독한 말들을 내뱉을 것입니다.

우리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떤 시험 환난을 당한다 해도 원망의 말로 하나님을 서운케 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을 토설하며 원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담을 만들고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눌러 참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스프링을 잔뜩 누르고 있다가 놓으면 갑자기 튀어 오르는 것처럼, 감정을 눌러 참으면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마음을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천국 시민권이 있고(빌 3:20), 장차 주님이 오시면 눈물, 슬픔 없는 천국에서 말할 수 없는 영광과 행복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설령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해도 능히 믿음으로 이기며 기쁨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항의하는 욥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3:22~23)
하나님이 자신을 두렵지 않게 하신 후 “욥아” 하고 부르시면 자기가 대답할 것이니 그 다음에는 주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보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만 해주시면 “왜 악인은 형통하게 하시고 의인인 나에게는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대담하게 따져 묻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욥은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는 죄가 없고 잘못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가혹한 징벌을 내리십니까?” 하고 항의합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혹여 자신의 잘못으로 어려움이 왔는데도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연단을 주십니까? 왜 저를 시험하십니까?”라고 항의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스스로 성실하게 일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잘 풀리지 않거나 사업이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나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도 자신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게 해주신다 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머리 되게 해주시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건강의 비결, 축복의 비결이 자세히 나와 있으니, 질병이든 물질의 어려움이든 어떤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러한 진리의 지식이 부족하니 답을 얻지 못하고 계속하여 잘못된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려움이 닥칠 때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
이 또한 욥의 오해가 담긴 말입니다. 하나님은 얼굴을 돌려 욥을 외면하신 적도 없고 원수로 여기신 일도 없습니다. 욥을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시며, 그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듣고 계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친구들을 통해 진리의 말씀으로 권면했지만 욥은 한 마디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오히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1~3).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의 손에 채찍으로 맞으셨으며 갖은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과, 천하 만민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아셨기에 이를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결국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으로 죽기까지 순종하며 믿음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어떤 어려움과 연단도 인내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한 참 자녀를 얻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은 힘들어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서도 나는 신앙생활 잘한다 생각하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거짓말을 쉽게 하고는 죄라 생각지 않고 부모, 배우자, 직장 동료 등이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미워하고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다 생각지 않습니다. 그만큼 진리의 무지함이 큰 것이지요.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징계가 오는 것인데 영적 지식이 부족하니 깨닫지 못합니다. 징계를 통해 자녀들이 죄악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 나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시험 가운데 빠지는 영혼들도 있습니다.
자녀가 빗나갈 때 부모가 책망하고 징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가 죄를 범할 때 징계하고 채찍질하십니다. 만일 징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닌 사생자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죄로 인해 어떤 징계가 온다면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내하고 용서하시며 그 길을 가셨던 것을 생각하며,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입술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4. 어린 시절 죄의 대가로 재앙 주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는 욥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 나로 나의 어렸을 때에 지은 죄를 받게 하시오며”(욥 13:25~26)
욥은 자신을 생명에서 떠난 자라 생각하므로 쓸모없는 낙엽과 검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며, 마른 검불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욥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기력도 없고 희망도 없는 한낱 낙엽에 불과하고 마른 검불만도 못한 존재인 자신을 하나님이 계속 추적해 와서 괴롭히고 있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마치 힘센 천하장사가 서너 살짜리 꼬마 아이를 상대하는 것처럼 우스운 행동을 하시는 하나님이라 비하하고 있는 것이지요.
욥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아무 잘못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성년이 되었을 때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성실하게 살았으며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의롭게 살았을 뿐 아무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철없는 어린 시절에 내가 지은 죄를 들춰내어 징계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얼마나 야비한 하나님으로 끌어내리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때 지난날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며 주님의 보혈로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욥의 말은 갈수록 태산입니다.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 나는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으며 좀먹은 의복 같으니이다”(욥 13:27~28)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욥의 생명에 차꼬를 채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으며, 자유의지도 없고 옴짝달싹 못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판단 능력이 없던 욥의 어린 시절의 죄를 기억하여 생명까지 꼼짝 못하게 만드셨다는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욥의 발자취를 한정해 버리시고 썩은 물건과 좀먹은 옷처럼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는 진리의 차꼬에 묶였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안 계십니까? 주일날 여행도 가고 싶은데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려야 하고, 좋아하는 오락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는 시간에 기도해야 하는 삶이 힘들게 느껴지십니까?
진리는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이 아니라 어둠 속의 등불과 같이 축복의 길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면 진리가 내 마음을 채우고 진리의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요 8:32).
이렇게 진리의 자유함을 얻은 사람은 이 땅에서 잠시 좁은 길을 가지만 하늘나라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신랑 되시는 주님과 마음껏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날을 소망하며 더욱 진리 안에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22-11-30 오전 10:32:37 Posted
2022-12-02 오전 10:04:2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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