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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설교

제목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종려주일 [막14:32-3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8.03.16
부활절을 한 주 앞둔 주일을 ‘종려주일’이라고 하며, 그 주간을 ‘고난 주간’이라 합니다. 고난 주간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는데, 가룟 유다가 데리고 나타난 대제사장의 하속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동안 금요일이 됩니다. 이날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이 선고돼 모진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우리보다 육의 아픔을 훨씬 덜 느끼셨을 것이다. 우리보다 견디기 쉬우셨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채찍에 맞으면 아픕니다. 육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처럼 배고픔도 느끼고 많이 걸으면 발이 붓기도 하셨지요.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이 선고돼 로마 군병들이 가시관을 머리에 씌울 때 예수님은 머릿속을 파고 드는 가시의 찔림도 그대로 느끼셨습니다. 채찍에는 날카로운 조각이 촘촘히 박혀 있고 끝부분에는 예리한 갈고리가 달려 있어 그것을 내리치면 온몸을 휘감고 그것을 낚아채면 살점까지 떨어져 나갑니다. 이런 채찍으로 많이 맞으셨으니, 예수님께서 느낀 아픔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온몸이 피로 붉게 물들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빠졌습니다. 채찍에 맞은 후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 양손과 양발을 십자가에 못박힌 채 육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스란히 모든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생명까지 내주면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는 많은 영혼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고통이 더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받은 고난을 안다면, 우리는 연단을 받을 때 결코 힘들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경작되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연단을 만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연단을 받는다 해도, 예수님이 받은 고난과 고통에 비한다면 견딜 만한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주님께서도 이 길을 가셨으니 나도 승리하며 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 속에 연단을 이겨 나가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실 때의 심정

마가복음 14장 3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잡히기 전날 밤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당부하며 거리를 두고 떨어져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기 전에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육의 사람들이 힘들 때 입버릇처럼 “죽을 것 같다”고 하는 것과 달리, 다음 날 실제로 있을 십자가 처형 자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라고 심정을 표현한 이유는 십자가 처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가능하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려 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성만 지닌 사람이 십자가 고난을 받는다면, 도저히 견뎌내기 어려운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성과 함께 신성을 지녔는데 십자가의 고난은 천상에서 예상한 것과 큰 차이가 났습니다.

또한 당시 예수님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은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땅에 남긴 제자들이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삶을 모두 정리하려니 많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처럼 많은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시고 직접 느끼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피조물들에 대한 생각으로 몹시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시 심정을 “내 마음이 심히 고민된다”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은 영의 마음을 이룰수록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처럼 표현하시는지 마음에 감동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부정적인 고백을 하셨을까?’ 하며 육신의 생각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예수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며 영으로 일구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읽을 때뿐만 아니라 예배 중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말씀을 듣고 나아가 판단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영의 마음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상대의 말 자체나 단어 표현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말 속에 담긴 마음을 느끼며 감동 가운데 그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36절에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 잔(곧, 십자가의 고난의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인성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인자로서는 쉽지 않은 길을 오직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처럼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어떠한 고난을 받을지라도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섭리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하며 기쁨으로 받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기도한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거나 자신의 틀 안에 응답의 때와 방법까지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하나님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단을 받을 때 “연단이 너무 힘듭니다. 내게 왜 이런 연단을 주십니까? 연단이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성도라면 원망이나 탄식의 기도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 연단이 왔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이유를 먼저 찾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거나 영적인 잠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내 잘못으로 연단이 왔음을 알 때 “어차피 받아야 할 연단이라면 받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시험은 막아 주옵소서. 그리고 이 연단도 빨리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온전히 선한 기도는 아닙니다. 겉으로는 연단을 받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힘듦을 면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기도는 선의 고백, 믿음의 고백입니다. 마음 중심에서부터 연단 주심을 감사하고, 정녕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연단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해도 온전히 나를 맡기고 더 온전히 변화하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혹여 깊은 연단 중에 계신 분이 있다면, 예수님의 기도와 같이 마음 중심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린 기도 내용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예수님의 심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 뜻이 있어 이 아들을 이곳에 보내셨고 이제 섭리하신 때가 다 되었나이다. 아버지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한 날들을 생각해 보나이다. 곳곳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아버지의 뜻을 선포했나이다. 그러나 내가 간 후에 이뤄질 일 때문에 고민이 되나이다. 이 모든 것이 고민이 되고 번민이 되므로 이같이 기도하는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정녕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이 아들에게 얼마나 큰 영광임을 아나이다. 많은 이에게 얼마나 큰 사랑의 힘으로 작용할지도 잘 알고 있나이다. 정녕 그러하나 이 육의 공간에서 인생들과 더불어 아버지 뜻을 이루던 생활이 이 아들에게는 눈물이 되나이다. 아버지여, 연약한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아버지께서 이끌어 가심을 믿사오되 … 이 아들이 떠난 후에 이들에게 임할 은혜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되 … 아버지 영광을 위해 이 아들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임이로되 … 이 공생애 기간 중에 있었던 모든 일이 번민으로 다가오며 마음 가득히 담겨지는 이유는 무엇이니이까. 이 땅에 직접 내려와 느끼는 이 마음과 천상에서 품었던 마음에는 차이가 있음을 깨우치나이다. 여러 가지가 번민이 되며 고민이 되나이다. 아버지여, 이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아버지 섭리하신 모든 일이 아버지 안에서 온전히 이뤄지게 하옵소서. 이제 이후에 이 아들을 통해 이룰 이 모든 역사로 인해서도 크게 영광을 받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안다면 어떤 연단이 와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신 주님처럼 오직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3-18 오전 2:37:50 Posted
2018-07-09 오후 10:38:2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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