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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난 지혜

제목
위로부터 난 지혜 (3) 관용 [약 3: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9.08.14
바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두는 사람의 실력이 더 낫다 해도, 이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눈이 가려지면 쉬운 것도 못 보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부담이 없고, 그런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시야가 넓어집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며 집착하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것이 진리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당장의 유익을 포기하지 못해 진리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진리로 채우면, 그만큼 영적인 여유가 생깁니다. 옳은 것을 쉽게 분별할 수 있고, 진리를 행하며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더 큰 복으로 갚아주실 것을 믿으며 또한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행하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함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므로, 스스로 자기 유익을 구해나가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진리의 길이 밝히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관용과 양순의 열매로 얻게 되는 지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특히 주의 종이나 머리된 일꾼들이 하나님의 일을 이룰 때, 양떼를 심방하고 상담할 때 절실히 필요한 지혜이며 성도들의 일상과 신앙생활에서도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통해,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으로 화평하다 했습니다. 성결을 이뤄나가며 화평을 좇는 사람은 그 다음에 나오는 관용과 양순의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관용과 양순은 비슷한 면이 있어서 하나의 짝으로 묶을 수가 있는데, 둘 다 사람의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면서 임하는 넉넉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나오는 덕목입니다. 선과 진리가 마음에 임하여 아름다운 말과 행함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기 위한 세 번째 비결 - 관용

먼저, 관용은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으므로, 자신이 가진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 관심, 섬김 심지어 생명까지도 모두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다 내어주기 위해서는 사심이 없고 진리가 마음에 가득해야 합니다. 내 유익을 구하는 마음, 내 취향, 자존심, 내 주장 등을 고집하면 자신을 다 내어줄 수 없습니다.
풍성한 진리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가장 좋은 모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마음은 온전한 진리 자체이므로 이 땅의 삶을 사는 동안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하면서도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자들을 고치셨고, 영혼들을 위해 끊임없는 수고와 눈물을 쏟다가 결국은 생명까지도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은 아무 죄와 허물이 없으면서도, 추하고 악한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다 내어주므로 지극히 높은 자리에 앉으시고,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진리의 행함으로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행함을 통해서도 관용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각각의 가축이 많아지게 되자, 제한된 땅에서 풀과 물을 얻어야 하는 그들의 종들이 서로 다투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아브라함은 다툼을 없애기 위해, 롯과 따로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3장 9절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하면서 롯이 먼저 더 좋은 쪽을 택하면, 아브라함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롯의 축복은 아브라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아브라함과 함께 거하므로 롯의 소유에도 더불어 축복이 임하였고 더구나 롯은 조카요, 아랫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종들끼리 다툼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당연히 자신의 종들을 엄히 단속해서 삼촌인 아브라함의 귀에 좋지 않은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처신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의 감정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요. 또한 롯은 아브라함과 갈라서게 될 때도 더 좋은 땅을 먼저 골랐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롯을 철없는 조카라고 서운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자기 것을 내어 주고, 더 많이 달라면 또 줄 수도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이처럼 롯에게 다 내어주고 양보했다 해서, 아브라함이 손해를 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브라함은 내어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모든 땅과, 티끌처럼 수많은 자손을 주리라 약속하신 것입니다. 넘치는 관용을 베풀었기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공의가 성립되었습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 이상의 선을 행했기에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지켜야 똑똑하다고 합니다. 만약 한 대 맞으면 나도 한 대 때려야 하고, 하나를 주면 그 이상을 받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고 나눠줄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으로 갚아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한 사업가의 간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분은 큰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처음에는 변두리에서 아주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자금이 부족하니 상품도 많이 갖다 놓을 수 없었고, 번화한 지역도 아니어서 매출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수익을 남기겠다는 마음보다 상대가 잘 될 수 있도록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항상 차라도 대접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마음을 다해 상담해주고, 당장 비싼 물건을 팔 수 없다 해도 최선을 다해 손님의 질문에 답해주었습니다.
또 동네에는 노환으로 몸이 불편하고 외롭게 사는 분이 많이 있었는데, 이분들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 손을 잡아주며 건강은 좀 어떤지, 자녀들은 자주 찾아오는지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감기가 유행할 때면, 감기약이라도 준비했다가 지나가실 때 손에 쥐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위를 맞춰 물건을 사게 하려고 가식적으로 베푼 것은 아니었습니다. 돈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부유한 손님들을 상대하거나 그 돈을 아껴 저축을 하는 게 낫다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욕심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동네 사람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넉넉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가게에 들어왔다가 물건을 사지 않아도 밝게 웃는 낯으로 배웅했고, 구입한 물건을 교환해 달라고 해도 싫은 표정을 하지 않고 기꺼이 교환해주었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핸드폰을 많이 쓰지 않던 시절이어서 가게에 들어와 전화를 좀 쓰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기꺼이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전화를 쓰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생기자, 아예 전화선을 길게 빼서 전화기를 계산대 바깥쪽으로 꺼내 놓고 손님들이 마음 편히 쓸 수 있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런 친절을 체험하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금방 단골 고객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일가친척 및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었고, 심지어는 이사를 가면서 이사 오는 사람에게 "꼭 이 가게로 가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분이 좀 더 넉넉하게 내어주며 섬긴 것은 손해를 본 것이 아닙니다. 눈앞의 당장의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기반 위에서 가게는 점점 커졌고, 이분은 큰 기업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간증을 들으면 감동을 받고 나도 그래야겠다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처럼 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손님이 한참 둘러보고 사지 않고 가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지고, 물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는데도 살 것 같지 않으면 점차 말투가 짜증스럽게 변하기도 합니다. 처음에 물건을 팔 때는 친절하게 대하다가도, 상대가 마음이 바뀌어 교환해 달라고 하면 태도가 돌변해서 푸대접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손님은 마음이 상해서 발걸음을 끊게 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상대의 마음을 살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혈기, 욕심 등이 자기 안에 있는 만큼, 넉넉하고 관대한 모습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당장 귀찮고 짜증나는 것을 이기지 못하여 겉으로 감정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용의 의미를 그냥 자신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 하지 않고, 마음에 진리가 풍성하게 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3. 관용에서 오는 영적인 지혜

이처럼 진리로 마음을 넉넉하게 하여 자신을 내어주며 섬기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지혜가 됩니다. 자기 것을 더 취하려고 움켜쥐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더 큰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본 교회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행하고자 힘썼습니다.
개척교회 시절부터 다른 개척교회들을 지원했고, 우리가 쓸 것조차 넉넉하지 않을 때도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서 세계 선교와 영혼 구원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속옷을 달라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겉옷까지 내어주었습니다. 애매하게 오른뺨을 맞은 일이 있어도, 화평을 좇을 수만 있다면 왼뺨까지 내어 주었습니다. 대항할 힘이 없어서 맞은 것도 아니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내어준 것도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하려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점점 더 큰 축복을 부어주셨고, 짧은 세월동안 대형교회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나누고 베풀었더니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풍성하고 넉넉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영혼들을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때 마치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할수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을 때, 그를 아버지로 여기며 섬기는 디모데 같은 일꾼들도 나왔고, 할 수 있으면 눈이라도 빼어줄 정도로 바울을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도 나왔습니다.
머리된 일꾼 중에는 영안이 열린 사람, 일을 잘 하는 사람, 뛰어난 달란트가 있는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 잘 가르치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며 마음으로 상대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는 물질로 섬기는 것뿐만 아니라, 눈물과 진액을 다해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그 마음에 영혼들이 품어져 있어서, 늘 양떼를 위해 기도하며 아플 때 같이 울어주고 연단의 때에 같이 이겨내며 기쁨과 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어줄 때 양떼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뻐하셔서 더 높여주시고 영과 온 영으로 속히 이끌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마음에 이루고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되면, 진리를 밝히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옵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살릴 수 있고 상한 심령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관용에서 오는 영적인 지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한 작은 아들이 거지 행색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온 큰 아들은 이를 보고 서운해 합니다. 성실히 일한 자신을 위해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방탕한 동생을 위해 잔치가 벌어지니 감정이 상한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와 같은 사랑이 있었다면,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동생을 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곧 내 것이라는 마음이요, 아버지의 기쁨이 곧 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큰 아들이 동생을 환영해 주었다면, 아버지는 "과연 내 가업을 이어받을 장자답구나, 역시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구나" 하면서 든든하게 느끼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작은 아들을 위해서는 잔치를 열어 주었지만, 큰 아들에게는 가업을 모두 맡길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가 가득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풍성하게 됩니다. 내 것을 나눠주어도 아깝지 않고, 남이 나보다 잘 되는 것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더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더 많이 누리도록 내 것까지 내어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진리를 가득 채워 풍성하고 넉넉한 관용을 이루게 되면 눈앞의 작은 유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고,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된다는 지혜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8-20 오후 2:44:53 Posted
2023-05-21 오후 3:36:0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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