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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7)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 [롬 8:12-1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9.25
육신의 생각은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느 정도 단계가 나뉘는데, 그 첫째 단계에 이어 둘째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고백합니다.
여기서 어렸을 때란 육을 입고 이 땅에 살 때를 뜻합니다. 우리가 장차 거룩한 영체를 입고 영의 세계인 천국에 거할 때 비하면 지금 우리의 말이나 생각은 어린아이 수준이지요. 영과 육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마음을 영으로 일군 정도에 따라서 말이나 깨달음, 생각의 수준이 다르지요. 어린아이도 초등학생, 유아, 영아 등 각 단계에 따라 말과 생각이 다른 것처럼 영적으로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는 수준이 다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싶어도 밝히 들을 수가 없지요. 육신의 생각이 성령의 음성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사단의 음성을 듣게 되지요. 그래서 자신이 어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해 깨뜨려야 합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육신의 생각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느 정도 단계가 나뉩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를 간략히 정리해 본 후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신의 생각 중 가장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주로 세상 지식과 이론에서 비롯되지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아직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 한 사람들도 바로 이 상황에 해당하지요.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전하셔서 각 사람 생각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세상 지식이 고상하고 주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이 미련한 것으로 생각하지요. 전도하는 여러분을 보고 ‘어리석다. 거짓말한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복음이 자신이 아는 지식이나 이론에 비춰보면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눈앞에 보여 달라.”고 했던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질병이나 가난, 가족 문제 등 막상 인생의 문제 앞에 서니 너무나 막막했고 세상 지식은 무용지물일 뿐임을 느끼셨지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을 찾아오셨고 하나님을 만나신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심령이 가난해졌을 때 마음의 문을 열면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 후로 늘 함께하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지요.
그런데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만나기 전에 천지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만 보고도, 또 주님의 십자가 사랑만 전해 듣고도 생각의 문, 마음의 문을 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도님들 모두 이 헛되고 무익한 육신의 생각을 다 깨뜨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 속에 참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다음으로 살펴볼 육신의 생각은 둘째 단계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제 갓 성령을 내 안에 모신 것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오신 것이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은 이렇게 성령을 내 안에 모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육신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도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거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말씀한 대로 행하고 싶지만, 육신의 생각 때문에 원하는 대로 행하지를 못하지요.
물론 초신자라도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통회자복을 하면 마음이 후련하고 기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지요. 이때는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성경 말씀대로, 설교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도 잘 받고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도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이 첫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지요.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다시 육신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자신의 마음에 일궈진 진리만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지요.

그러면 먼저 주님을 영접한 직후의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1단계는 마음에 진리보다 비진리가 많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영육 간에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들어도 순종을 잘 못 합니다.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 더 많이 벌지.’, ‘휴일은 즐기면서 보내야지.’ 하면서 주일 성수를 힘든 일로만 생각하지요.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분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생각입니까? 다 육신의 생각이지요. 주일을 지킬 때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맛본 사람은 이런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요.
이처럼 믿음의 1단계는 세상에 사는 동안 입력된 지식이 아직 그대로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도 적습니다.

믿음의 2단계는 다릅니다. 말씀을 들어서 진리를 어느 정도 알고 진리대로 살고자 노력도 하지요. 믿음의 1단계에 비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성령의 음성을 좇아 말씀대로 살 때도 있고 사단의 음성을 좇아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막혀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 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했지요.
사람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남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지요.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단계이므로 ‘판단, 정죄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가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지요. 들리는 말이야 어쩌다가 들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입니다. ‘정말일까?’ 하고 궁금해하지요.
그 사람의 행실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남에게 전합니다. 자신의 느낌과 추측까지 보태기도 하지요. 이렇게 행하고는 ‘내가 판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분별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가려져서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안에 악이 있으니 남도 악하게 보고 오해하는 것이지요. 또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는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선하게 봅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그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지요.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육의 부모만 해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들으면 대부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아이가 얼마나 착한데.’ 하고 선한 쪽으로 생각을 돌리지요.
무엇보다도 판단, 정죄는 교만이라는 비진리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함부로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두려워서라도 감히 판단, 정죄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판단, 정죄합니다.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판단하여 자신을 책망하고 무안을 준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지요. 순전히 자기 육신의 생각 속에서 서운함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 이야기는 누구 이야기이다.’ 하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엉뚱한 사람을 대입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하지요.
이 모든 일이 다 육신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신의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고도 자신의 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니 안타깝지요.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발견하는 즉시 신속하게 깨뜨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의 흐름과 육의 흐름은 더 극명하게 나뉩니다. 영은 더 급속하게 영으로, 육은 더 육으로 흘러가지요. 이때 거센 육의 물결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특히 ‘나는 육이니까.’ 하고 자신을 판단, 정죄하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자신을 절벽으로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육으로 빠져들게 하지요. 바로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통해 이렇게 만들어 갑니다. 육의 사람이 점점 소외감을 느끼고 도태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요. 그러므로 ‘나는 안 돼. 늦었어.’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성령의 음성이 아니고 자기 생각도 아닌 사단의 음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시지요.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생명과 평안의 길로 가자.”고 손을 내밉니다. 이 성령의 음성에만 “아멘. 예.”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미는 손을 잡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영의 흐름을 잘 탈 수 있습니다.
영의 급물살을 타고 1천층, 2천층, 3천층을 신속하게 지나 새 예루살렘까지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9-28 오후 2:18:22 Posted
2023-06-04 오전 11:37: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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