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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교회

제목
마음 다해 여선교회 헌신예배 [마 22:37-40]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4.05.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4년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매년 헌신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습니다. 헌신예배를 통해 축복받은 간증도 해마다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헌신이 이만한 축복에 그치지 않고 더욱 크고 온전한 열매로 맺히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셨지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 다해 사랑함으로 참된 헌신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는 정녕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정녕 마음 다해 내 삶을 드렸는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참으로 곱고 아름다운 향으로 아버지 앞에 올려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첫째,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난해 여선교회 헌신예배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아시는지요? 진정 마음 다해 헌신예배를 드린 분이라면 무엇보다도 선포되는 말씀을 사모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첫째, 둘째, 셋째, 각각의 항목들에 자신을 비춰 보았겠지요. 그렇게 해서 은혜를 받았으면 명심하고 이후로 1년 동안 기도해서 이뤄내야 합니다. 헌신예배 준비과정에서는 정성을 다했는데 정작 말씀은 명심하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해 여선교회 헌신예배의 말씀 제목은 ‘선’이었습니다. 작년만 아니라 매년 여선교회 헌신예배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정성 다해 헌신예배를 드린 여러분의 마음에는 아버지의 선이 얼마나 임해 있으신지요?

믿음의 분량을 점검받은 분들은 그 분량을 통해서도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분량을 점검받지 못했다 해도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만 해 보면 쉽게 분별할 수 있지요. 나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가, 아니면 내 것부터 먼저 챙기는가? 상대가 잘되면 내 일처럼 기뻐하는가? 아니면 ‘저 사람은 이런저런 부족함이 있는데 왜 저 사람만 잘되는 걸까?’ 하면서 상대의 허물을 보거나 낙심하지는 않는가? 억울하게 오른뺨을 맞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왼뺨을 대어 주어서라도 상대와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인가? 누가 겉옷을 달라 하면 나는 상대의 입장과 형편을 헤아려 보고 속옷까지 내어주려는 마음인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의 화평이 깨어지지 않는가?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느껴질 수 있도록 정결하고 거룩한 말을 내는가? 오히려 불평과 원망, 믿음 없는 부정적인 말로 주변 사람들까지 곤고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봅니다. ‘지금 내가 한 말이 선한 말이었는지, 내 생각이 하나님 앞에 합당했는지’ 점검하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진리를 안다 하면서도 선과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분량 받기를 사모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경우가 있지요. ‘저분은 남편이 든든하게 받쳐 주니까 물질을 많이 심을 수 있어서 좋겠다.’ ‘저분은 나보다 충성한 세월도 적은데 타고난 중심이 좋으니 저렇게 사랑받는구나. 나는 중심이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환경이 왜 이럴까? 가진 것이 없으니 드릴 것도 없고 내가 영으로 빨리 들어가도록 도와줄 만한 사람도 주변에 없구나’ 이런 식으로 환경 탓, 남의 탓, 자기중심 탓을 하다가 낙심해 버립니다. 스스로가 불쌍하게만 보이므로 얼마나 선과 거리가 먼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분이라면 ‘막달라 마리아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잠시만 궁구해 보아도 선을 택할 수 있지요. 말씀을 많이 듣고, 은혜를 사모한다 하고, 영으로 들어가지 못해 항상 애를 태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정녕 영을 사모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들은 말씀을 궁구하고 노력하여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녕 영을 사모하는 자세이고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지요.

지난주에도 어떤 회개 편지 보니까 그런 내용이 있어요. “당회장님 회개합니다.” 내 일가친척들이 모였는데 자기 일가친척들이 모였는데 내 이야기를 하더래요, 내 이야기를. “만민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나쁜 사람이다, 이단이다.” 왜 그러냐? 단에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항상 주장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거기 참석한 분이 이 편지 보낸 분이 구역장이에요. 만민교회 구역장이라 이 말이에요. 그런 말을 했는데도 듣고만 있는 거예요, 그걸. 그러면서 회개 편지에 그래요. “듣고만 있었습니다.” 나는 만민교회 와서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한 번도 당회장님 입에서 또 단에서 하나님이란 말을 들어본 일이 없는데도 듣고만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그게 말이 돼요? 얼마나 하나님과 담을 만든 것입니까?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이라고 해 본 적 한 번도 없고, 내가 구세주 주님이라고 해 본 적 한 번도 없고, 여러분들에게 제가 전에 이런 말은 했지요. “내가 만약에 하나님이다. 내가 구세주다 하면 여러분들 교회 떠나라”고. 기억나세요?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 15:26 말씀대로 우리가 의를 행할 때도 자기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의를 행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선도, 사람 보기에 선한 것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이 다를 수가 있지요.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온유하고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게 대하지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 교양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는 ‘교양 없고 무례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마음을 닫아 버리는 것이지요.

또 내성적인 성품이고 부딪히는 것을 싫어하며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대체로 상대의 뜻에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품상 그런 것일 뿐 중심에서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지요. ‘화평을 이루려고 하니까 매번 나만 손해보고 섬긴다’ 하면서 오히려 서운함과 불편함이 깊이 심어집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양보했다고만 생각하므로 자기 악을 발견하기가 더 어렵지요.

또 연단을 받을 때 믿음으로 참는다 하지만 기쁨과 감사로 이기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으로 인한 핍박이든 물질의 연단이든,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잘 통과해 나가면 얼굴에 은혜가 더해집니다. 그러지 못하고 억지로 꾹꾹 눌러 참다 보니 고난당한 세월만큼 마음에 슬픔이 쌓입니다. 얼굴에 그늘이 지고 수심이 배어 있지요. 그러니 오랜 세월 연단을 인내해 왔다 하는데 축복의 길이 신속하게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여 성격도 좋습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해 줍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칭찬을 받는데 문제는 영적인 사모함이 별로 없는 것이지요. 아버지를 사랑하여 성결되는 것보다는 마르다처럼 일에만 더 관심이 있는데 자신은 섬기는 사람, 선한 사람인 줄 압니다.

이런 경우들이 다 육적인 선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선하다 생각할 수 있고 자신도 스스로 선하게 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니라” 하시는 것이지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범사에 선을 추구해 나가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깨달아 그대로 이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마음 다해 아버지께 드린다는 것은 둘째,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일 4:21에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는 열정을 다해 드리는데 형제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을 봅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하며 아버지 앞에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합니다. 반면에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마음을 살펴 주는 섬김이 너무나 부족하지요.

이런 경우 아버지께 많은 것을 드렸는데도 축복의 열매를 온전히 맺지 못합니다. 물론 남에게 일부러 해를 끼치거나 악을 행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주변을 살피는 시야가 좁고 마음씀씀이가 부족한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고의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남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영을 간절히 사모하여 부지런히 금식과 기도를 쌓아간다 합니다. 봉사로, 물질로도 열심히 심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 중에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가 않지요. 영을 간절히 사모한다 하지만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주변 일꾼들은 믿음의 분량을 점검받지 못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데, 자신은 믿음의 분량을 점검받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잘한 것도 없는데 아버지는 정말 사랑이 많으시다” 하며 기쁨에 차서 간증을 합니다. 자신이 충만하고 은혜가 넘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온통 힘든 내색을 하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눈치 보게 만들지요. 그러면서도 자신이 남들을 민망하게 하는 줄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지요. 넓은 장소를 청소하기 위해 기관별로 구역을 나눠 맡았습니다. 자기가 맡은 구역을 일찍 끝냈는데 다른 구역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도 마음을 더 넓게 쓰는 사람은 다른 구역은 왜 안 끝났는지,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보게 됩니다.

반면에 영적인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남의 형편에까지 마음을 쓰지는 못합니다. 갈 6:2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형제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 하셨지요. 주변을 더욱 섬세하게 돌아보며 마음을 넓게 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과 덕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많은 영혼들을 품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마음 다해 아버지께 드린다는 것은 셋째,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마음에만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아버지께 내가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내가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을까’ 하며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려고 하지요. 직분이 없어도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며 봉사할 장소마다 스스로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모습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지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고 개인적인 여유를 더 가지려고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명은 열심히 감당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명은 소홀히 합니다. 가령, 헌금위원이나 안내위원을 할 때도 본당 1층을 담당하라면 기쁨으로 하는데 유아실을 맡기면 기쁨이 덜하지요.

우리의 사명은 크든 작든, 사람 앞에서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행위적인 열심으로가 아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마음의 향으로 드려야 하지요.

예를 들어, 총회 때 기관장을 사모했는데 부기관장도 떨어지고 기관의 회계가 되었다고 해 봅시다. 그때도 마음 다해 드리는 사람은 전보다 더 하나님 앞에 고운 향으로 드릴 수 있지요. 사명을 맡겨 주셨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하여 회계든 서기든 직분을 귀하게 여깁니다.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심방하며 기관장을 열심히 도와주지요. 이런 마음이라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반면 기관장일 때는 열심 내던 사람이 기관장이 안 되었다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모임도 오지 않는다면 이전에도 참된 충성을 했다 하기는 어렵지요.

우리 여 성도님들은 교회적으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감당해 주십니다. 행사나 절기 때의 성전 미화나 음식 준비 등은 대부분 여 성도님들의 몫이지요. 부활절 달걀이나 김장 김치 등으로 구제가 필요한 성도들은 물론 지역사회와 불우이웃까지 섬기기도 합니다.

이런 섬김의 순간마다 몸으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나에게 맡겨진 일이니까 의무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준비한 이 계란 바구니를 통해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하다.’ ‘이 구제 김치를 이웃에 전달할 때 주님의 사랑도 함께 전해지면 좋겠다.’ 이렇게 믿음과 사랑으로 섬기므로 일을 하면서도 성령이 충만하지요. 성전 커튼을 세탁해 온다거나 성전에서 걸레질을 한 번 해도 아버지 전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럴 때 그 봉사의 향을 하나님께서 기뻐 흠향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맡겨진 모든 사명을 귀히 여기며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잠 31:30-31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의 향을 받으시지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헌신예배를 드릴 때도 일시적인 열정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헌신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를 붙잡고 한 해 동안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자세로 살아야지요. 하루하루 여러분의 선과 사랑이 승해지고 주신 사명을 귀히 여겨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오늘의 이 헌신을 더욱 기뻐하며 받으시고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풍성한 열매로 갚아 주십니다.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나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갚아 주시지요. 정녕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과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심판대 앞에 설 때도 경작 받은 뭇 사람 앞에서 높여지며 칭찬받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05-12 오후 11:12:17 Posted
2018-08-30 오전 11:52:0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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