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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장,조장,구역장

제목
온전한 선 지역장,조장,구역장 헌신예배 [요일 1:5]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2.21
여러분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영적인 사명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한 마음을 이룰수록 영적인 능력과 권세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땅의 어떤 영광과도 비길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1. 악은 모양도 없는 온전한 선을 이루어야

정녕 선을 사모하는 사람은 “선”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좋습니다. 또 선한 향을 발하는 사람을 대하면 행복하고 감동스럽지요. 선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도 선한 자녀들을 찾으시면 심히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외진 곳에 숨어 있다 해도 선한 향을 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도 그곳을 향합니다.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해도 선한 고백을 하는 사람, 선한 행실을 보이는 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시선은 그 사람에게 집중되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어떠하십니까? 성결의 복음이 밤낮으로 선포되는 이 제단에서 깊은 선의 단계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한다는 교육도 많이 받았습니다. 들어서 아는 것을 가지고 “마음에 이루었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들은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이루되 악은 모양도 없는 온전한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더구나 머리 된 일꾼으로서 여러분은 성도들보다 더 충만해야 하고 첫사랑의 은혜가 갈수록 더해져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소망이 날마다 간절해지며 그런 만큼 성결에 대한 사모함도 갈수록 승해져야 하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불붙는 듯한 열정이 여러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또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고 인내하며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해도 함께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어야 하구요. 혹여 오해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사람에게 불만을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애매하게 고난을 받을 때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더 충성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종종 이와 반대로 머리가 될수록 영적인 성장이 느려지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경우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일꾼이 될수록 더 온전한 열매를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에 대해 들을 때는 ‘선이란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인가 나도 꼭 선한 마음을 이뤄야겠다’ 다짐하지만 막상 실제 생활에서는 그 다짐을 잊어버립니다. 지역장들 사이에, 혹은 지역장과 구역장 사이에, 조장과 구역장 사이에, 조장과 지역장 사이에, 서로 간의 입장과 의견이 다르므로 불편한 마음을 갖기도 하지요. 또 일꾼이기 때문에 범사에 더 온전해야 하는데 ‘일꾼이니까 나는 이렇게 해도 괜찮아’ 하고 정도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진리를 들은 것이 오히려 틀이 되어 상대를 정죄하거나 상처 주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헌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도 각자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내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

요한이서 6절에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진리 가운데 거해야 하고, 마땅히 3단계 이상의 믿음이라야 합니다. 그러면 남지역장 여러분의 실제 믿음은 어떠합니까?

한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일로 논의를 하다가 서로 언성이 높아지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으신지요? 어떤 분들은 혈기를 내고도 자신이 혈기 낸 줄조차 모릅니다. “나는 다투지 않았다, 상대가 이치에 안 맞는 말을 계속 주장하기에 나도 사실을 말한 것이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가 가지 않도록 의분을 낸 것뿐이다” 하지요.

다른 예로, 자신의 말로 인해 상대의 감정이 상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조급했구나,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이렇게 회개하십니까? 그러지 않고 ‘나는 진리로 가르쳤는데도 받지 못하는 상대가 잘못’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자신의 의와 틀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나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합니다. 목자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나 ‘아멘’입니다” 고백하실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중심에서 나온 고백이라면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더욱 성결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참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에 대한 마음이 가득한지, 목자의 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지, 아니면 아직도 세상을 향한 마음이 있고 물욕과 명예욕이 마음에 남아 있는지 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여러분의 고백이 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3. ‘내 마음의 향이 과연 어떠한가?’

지금까지 진리를 사모하고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여 여지역장 여러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지요. 금식하고 기도하며 충성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저분을 만나면 선한 향을 맡을 수 있어서 감동이 되고 행복하다, 저분을 보면 나도 영이 사모되고 새 예루살렘을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참으로 고운 마음을 가진 내 딸이라”하고 기뻐하실까요? 여러분이 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히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종종 다른 사람에 관한 말을 할 때 자기 악 속에서 판단, 정죄 하면서도 ‘나는 분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를 들은 것이 있으니 말의 표현은 진리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그 내용은 사실 비진리의 말이지요. 상대를 지적하고 권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표현을 부드럽게 한다 해도 자신의 의 가운데서 할 때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마치 부드러운 솜뭉치 속에 뾰족한 바늘을 숨겨 놓은 것과 같지요. 또 ‘내가 옳고, 상대가 나에게 맞춰야 한다’고 자신을 내세우는 단단한 마음이 있다면 이것도 깨뜨려야 합니다. ‘내가 그들보다 더 신앙생활을 오래했고, 내가 더 많은 세월 동안 기도를 쌓았으니 그들이 내 말을 따라 줘야 한다’ 이런 생각도 버려야 하지요. 이런 자기 의와 틀도 결국 악에서 나옵니다. 이런 것이 없어야 상대에게 평안함과 포근함을 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셨으니 여러분의 마음을 선으로만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님께서 기뻐 흠향하실 수 있는 선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4. ‘정녕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주님의 마음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행하는가?’

여러분 중에는 충성스러운 분들이 많지요. 그러나 ‘과연 이 모든 일들을 행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행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이었다 할 수 있겠는지요? 혹여라도 내 가족, 내 직분과 명예, 이런 것들을 더 중히 여기는 마음은 없었는지요?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 해도 내가 인정받기 원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한다면 주변 사람들과 걸리는 일이 생깁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다 드리고도 ‘내가 이만큼 잘하고 있다’ 하는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였던 나를 구원하셨으니 내가 어찌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남녀 조장 여러분도 이런 마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했고 열심히 충성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드리고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고백하는 무익한 종의 마음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참으로 선한 내 아들, 딸이라” 칭찬하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에 보면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 하시지요. 이렇게 많이 참으려면 ‘지금이 몇 번째 참는 것인지’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결국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씀이지요. 일곱 번씩이나 용서했다면 사람의 기준으로는 선하다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선이 아닙니다. 꾹꾹 눌러 참을 때는 수십 번을 참아도 근본적으로 마음에 감정이 남아 있지요. 이렇게 감정을 품고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불편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간절히 선을 사모하되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도록 온전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참고 기다려도 상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지쳐서 외면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변화될 때까지 사랑으로 인내하며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하지요. 최선을 다해 양보하고 섬겼는데도 여전히 상대가 받기만 원한다면 또 다시 섬겨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구요.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주의 종이나 주변의 일꾼들을 대할 때도 또 맡겨진 양 떼를 대할 때도 항상 이런 마음으로 대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늘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며 섬기며 상대를 배려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범사에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셨지요. 여러분의 마음에 항상 하나님이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라야 하고 목자와 양 떼를 위하는 마음이라야 하지요. 진리에 비춰 보아 더 온전한 쪽을 택해야 하구요. 아직 믿음의 단계가 낮을 때는 육을 좇으려는 마음과 영을 좇으려는 마음이 서로 치열하게 싸울 때가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 권투 선수들의 실력이 대등할 때는 한 대 때리면 한 대 맞고,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집니까? 이런 것처럼 자기 안에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이 비슷하게 있으면 영적인 싸움도 힘들게 느껴집니다. 또 이렇게 마음이 나뉘었을 때는 물질의 연단이나, 각종 연단도 속히 뚫지 못하고 머물러 있지요. 그러나 권투에서 한쪽 선수가 월등히 힘이 세면 경기가 쉽게 끝납니다. 신앙생활도 진리의 마음이 더 크면 영적인 싸움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남녀 구역장 여러분은 범사에 진리를 택하여 영적인 싸움에서 항상 쉽게 이기시길 바랍니다. 항상 진리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여러분에게는 축복의 간증이 넘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보기에 선한 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온전한 선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하고 생각하며 온전한 선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여 천국에서도 큰 자로 인정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2-22 오후 10:40:52 Posted
2018-02-21 오후 2:48:5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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