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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전야/축하) 예배

제목
주님의 사랑 성탄축하예배 [사 53: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2.12.25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행복하고 기쁜 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의 날이지요. 성탄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눅 2:30-32에 아기 예수님을 친히 만나 뵌 시므온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백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믿는 우리들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생명의 빛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십자가 보혈을 값없이 흘려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지요.

이 시간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에 나와 성탄절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우리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약 2천 년 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과,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 1:18 후반절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마치 온 세상을 새 하얗게 뒤덮는 흰 눈과 같지요. 주님께서는 따스한 사랑으로 우리의 허다한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쌓입니다. 그 사랑은 마음 안의 죄를 맑게 씻어,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시지요. 행복한 성탄절, 이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와 기쁨의 고백을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 사 53:7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예수님의 참혹한 십자가 고난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예수님께서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잘 나타나 있지요. 그것은 바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는 인생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인생들은 이 사랑의 깊이를 측량할 수 없으며 육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지요. 이러한 영의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이 육의 공간에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채찍에 몸이 찢기고 가시와 못에 찔리는 어마어마한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인생들의 모든 질고와 슬픔을 짊어지시고, 멸시와 핍박을 감내하셨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지’ 하시며,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온전한 섭리를 이 아들이 부족됨 없이 이루겠나이다.’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영혼들을 향한 사랑을 품고 내려오셨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 오늘은 성탄의 의미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사역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공의의 측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지요. 그런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공의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롬 6:23 말씀대로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서 영계의 법에 의해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의 저주를 끊어 주시고자,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값을 치른다는 것이 십자가의 사건, 단지 이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부터가 그 모든 공의를 이루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근본 본체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권능을 가진 분이시지요. 그럼에도 사람의 몸에 그 신성을 가두시고, 육의 공간의 한계들을 철저히 겪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의 환경은 어떠했습니까? 호화로운 왕궁에서 태어나 안락한 침대에 누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지요. 이는 바로 예수님이 죄인들을 살리는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되시기 위해 오셨음을 상징합니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은 하늘의 영화를 가진 부유한 분이셨지만, 인간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 가난하게 사셔야 했습니다. 육의 사람들처럼 굶주림과, 피곤함, 슬픔과 고통도 느끼셔야만 했지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십자가의 사역을 쉽게 감당하셨을 거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 사함의 공의를 충족시키는 과정은 예수님께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히 5:7에 “그는(곧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희생하심으로 철저히 값을 치르시며, 공의를 채워 가셨습니다. 장차 임할 십자가의 고난을 잘 아셨지만 구원의 길이 열리는 그 영광의 순간을 마음에 그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셨지요. 이렇게 온 생애를 헌신하시고, 종국엔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중심으로 감사드리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의 의미, 둘째는 사랑입니다.
공의를 이룸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요 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영혼들을 사랑하셨기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이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맞춰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그 사랑은 육의 사랑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심령에 변화와 생명을 주는 사랑 곧 영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자기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이나, 함께하는 제자들에게도 늘 자상하게만 대하신 것이 아니었지요.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을 외면하기도 하시고, 지적과 권면도 하셨습니다.

한 예로 마 16:22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시지 말라 간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하셨는지요? “역시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 하시며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까? 아니지요. 마 16:23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며 강하게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책망은 베드로를 향한 지극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 감싸 주고 받아 주고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상대에게 참으로 이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때로는 아픔도 느낄 수 있지요. 희생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도 감내하면서 참된 길을 알려 주고, 그 길을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상대를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인생들을 너무 사랑하시므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책망과 권면의 말씀도 해 주셨지요.

여러분이 연단을 받을 때도, 이 사랑을 기억하면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을 수 있지요. 잘하려 했는데도 책망을 들었다 하여 힘들어하거나 지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고요. 오히려 이것이 나를 온전하게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느낌으로써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가지 예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예화를 통해 상대를 위하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를 끔찍이도 사랑하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내의 두 눈이 실명되고 만 것입니다.

다행히 아내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를 직장까지 출근시켜 주고 집에 오는 길에도 함께했지요. 그러기를 몇 달 후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언제까지나 늘 내가 데려다 줄 수도 없고, 이러다가는 내가 지쳐버릴 것 같아. 그러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하는 게 좋겠어. 이제는 당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아내는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정작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배신감마저 들었지요.

그러나 아내는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악물고 출, 퇴근길을 홀로 다녔지요. 부딪치고, 넘어지기를 여러 번, 복받쳐 올라오는 서러움에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출퇴근이 익숙해질 무렵 아내는 여느 날처럼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버스 운전사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남편 분이 함께 안 오셨네요? 볼 때마다 아주머니 옆에 계셨는데 말이죠. 우리 기사들 사이에서 두 분 유명하세요. 아주머니는 참 행복하시겠어요. 매일 남편이 같이 다녀주니까요. 다칠까 염려되는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더군요.” 남편이 늘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늘 바라보시며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의 행군을 결코 멈추지 않고, 끝내는 참 자녀의 모습으로 나오기를 지금도 응원하고 계시지요. 이런 주님의 사랑,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늘 기억하시면서 영과 온 영을 속히 이루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의 의미 셋째는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공의와 사랑, 이 두 가지로 십자가의 도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이를 통해 얻으신 열매가 바로 영광이지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공의를 완성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했던 자녀들을 무수히 건져 오심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지요. 예수님도 물론 큰 영광을 받으셨고요. 빌 2:10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또한 믿음의 자녀들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물며 영, 온 영의 자녀가 나온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큰 영광을 얻으시겠는지요.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은 하나님께 능력, 권세, 권능을 받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 땅에 보이는 권능의 역사는 많은 영혼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로 인해 믿는 이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핍박과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지요. 이처럼 믿음을 지켜 거듭 성장시켜 나가면, 결국 영의 믿음, 온 영의 믿음을 가진 참 자녀로 나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인 ‘주님의 사랑’을 공의와 사랑, 영광의 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주님의 사랑은 무한하시고 광활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사랑, 생명을 살리는 참 사랑을 인생들에게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지요.

우리 성도님들에게 12월 25일 성탄은 이런 주님의 사랑과 더불어 또 한 가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2010년 성탄을 기점으로 여러분 안에 또 한 번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사랑이 있지요. 도무지 씻을 수 없는 허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들도, 회개하고 사함 받을 수 있도록 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희생함으로써 그만한 공의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리고 제게 맡겨 주신 양 떼를 사랑하기에 기꺼이 이 일에 제 몸을 던졌지요. 모든 기가 바닥이 날 정도로 힘든 싸움은 계속 됐습니다. 그러나 일어설 기력조차 없을 때도 제 눈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영혼들의 얼굴이 밟혔습니다. 또 울부짖는 영혼들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지요. 이에 저는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분들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 된 영광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죄의 보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새 예루살렘 소망 가운데 온 영을 향해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셨지요. 또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괄목할 만한 믿음의 성장을 이루셨습니까? 아직 반석에 이르지 못한 분이 계신다 할지라도, 여러분 마음 안에 주님의 사랑이 이미 새겨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2010년 이 은혜의 시간을 결코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고전 6:20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신 대로 장차 우리를 데리러 오실 주님을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로, 영광스런 참 자녀로서 맞이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루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끝)



2012-12-27 오후 6:01:59 Posted
2012-12-28 오전 10:06:3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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