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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욥기 강해 (23) 욥의 착각 [욥 10:3-12]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09.04
오늘은 욥이 착각 가운데 하나님께 항변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나쁜 하나님으로 몰아가며 항변하는 욥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욥 10:3~4)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시고 시험 환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악인에게 빛을 비춰 주시는 것을 더 선하게 여기는 분이라 주장합니다. 욥의 마음이 뒤틀리고 꼬이다 보니 계속하여 더욱 나쁜 하나님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자신과 같이 선한 사람을 고통받게 하시는 하나님, 의인을 학대하고 못살게 굴며 오히려 악인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욥은 “하나님은 중심을 보는 분이신데 어찌하여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나를 보십니까? 친구들은 엉망이 된 내 겉모습을 보고 ‘너는 죄가 있고 악하다’라고 말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내가 의롭고 정직함을 아실 것이니 마땅히 축복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따지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하시나이까”(욥 10:5~6)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 없으신 분이며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지만 인생은 잠시 잠깐 아닙니까? 나는 잠시 동안 살아가는 존재인데 어찌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취급하시며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높이 추켜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비꼬는 장면입니다. 영화롭고 광대하신 하나님이 하찮은 인생을 학대하고 정죄하며 쟁변하신다며, 결국은 쩨쩨한 분이라고 빈정거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조그마한 죄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처럼, “이것쯤이야” 하면서 하나둘 허용하다 보면 점점 죄가 장성하여 사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죄에서 돌이키기 전까지는 연단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생자가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허물을 전혀 기억지도 않으시며, 오히려 상처를 싸매 주시고 한없는 위로와 사랑을 부어 주시지요.
그러니 혹여 시험 환난이 여러분에게 닥쳤다면 욥처럼 따지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의 잘못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속히 변화되어 시험 환난이 떠나가고 형통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욥의 착각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욥 10:7)
자신이 악하지 않은 줄을 하나님이 아신다 했는데, 이는 앞에서 하나님을 매우 악한 분이라고 실컷 정죄한 뒤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즉 욥이 악하지 않은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욥을 이처럼 학대하신다는 뜻이니, 욥 자신은 선하고 하나님은 악하다는 결론이지요.
욥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연단받기 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그때는 욥이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했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었으며 사람들을 권면하여 바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재물과 자녀들을 거두셨을 때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던 선한 사람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욥은 과거에 교양과 지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렸던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의 사람은 자신이 잘못한 것, 부족한 것을 보기보다 잘한 것을 생각하며 자기에게 후한 점수를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진리로 온전히 변화되기 전까지는 욥처럼 자기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 것입니다(잠 16:2).

우리 인생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시 139:7~10).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배 밑창에서 잠을 잘지라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요 5:29, 계 20:12).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며 오직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따라 공의 가운데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욥이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라고 한 것은, 이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이뤄진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억울하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하는 것이지요.


3. 하나님께 서운해하며 따지는 욥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 보내려 하시나이까”(욥 10:8~9)
여기서 ‘백체’란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모두 포함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눈, 코, 입, 뼈와 살, 피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과 혼도 하나님이 지으셨음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실 때에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사랑과 정성을 다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이 영, 혼, 육으로 오밀조밀하게 공들여 만드신 나를 어떻게 멸하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따집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너무나 박대하신다고 생각하니 서운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정성 들여 만드셨는지를 기억해 달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욥의 고백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흙 뭉치듯 아무렇게나 만드셨기 때문에 이제는 티끌과 같이 버리시는 것입니까?”라고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조금 전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오밀조밀하게 아름답게 공들여 빚어 놓고 나를 멸하시느냐고 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말을 바꾸어 하나님이 자신을 떡 주무르듯이 아무렇게나 빚으셨기 때문에 쉽게 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너무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면 배배 꼬이고 빗나간 말투가 되어 억지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 하셨나이까”(10:10)
아기에게 모유는 생명과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귀한 모유라도 아기가 먹지 않고 남은 것은 버려지는 것처럼, 욥은 자신을 쓸모없이 버려진 젖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만일 남은 젖을 버리지 않고 그릇에 짜서 담아 놓은 채로 시간이 지나면 냄새나고 덩어리로 엉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육적으로도 욥은 온몸이 악창으로 터지고 곪기를 반복함으로 몸이 엉겨 있는 상태이기에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산모가 쓸모없는 젖을 버리는 것처럼 나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엉긴 젖처럼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라고 하나님을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욥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하나님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신뢰했던 선진들은 어떤 핍박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으며 비록 사자밥이 되고 칼로 목 베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기쁨으로 순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믿음으로 고귀한 순교의 피를 흘렸기에 로마의 복음화는 물론, 세계 복음화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어떤 시험 환난이 온다 해도 믿음을 지킴은 물론 더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하나님의 위로, 기쁨이 되어야겠습니다.


4. 자신이 잘한 것만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욥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욥 10:11~12)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 혼, 육을 창조하셨으며 햇빛과 공기, 물, 자연 만물을 주시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주셨지요. 그러니 욥은 자신에게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이러한 고백에는 다른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전에는 나에게 생명과 은혜를 주시며 아끼셨는데, 어찌하여 이제는 헌신짝처럼 버리셨습니까?”라고 작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욥이 “주께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했는데, 여기서 ‘내 영’은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마음을 지켰다는 것은, 예전에 욥이 하나님을 알았기에 범죄하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며 선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예전에 잘한 것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있다는 성도들 중에 진리를 온전히 깨우치지 못하므로 하나님 뜻에서 빗나가거나 범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단이 송사하여 시험이 올 수 있는데,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자신의 잘못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 저는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또 온전한 십일조 생활도 했는데 어찌하여 이러한 시험을 주셨습니까?”라고 따진다면 사단은 더욱 생각을 사로잡아 빗나가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마음까지 사단에게 내주어 악한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고, 한편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니 점점 더 큰 죄를 낳아가지요.
그러므로 혹여 어려움이 왔을 때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며, 주의 종이나 믿음의 형제가 권면하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22-09-07 오후 3:15:00 Posted
2023-06-04 오전 11:40: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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