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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욥기 강해 (32) 천국 소망이 없는 욥 [욥 14:1-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12.04
오늘은 천국 소망이 없는 욥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여인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며 인생의 허무함을 논하는 욥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욥 14:1~2)
여기서 욥은 여인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여자의 위치는 대체로 남자의 종처럼 괄시받으며 순종만 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보면 여자인 하와를 통해 죄가 들어왔으며 인류가 멸망의 길로 가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와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 주므로 아담도 그것을 먹음으로 불순종하기에 이르렀지요.
근본적으로 여자는 하와의 본성을 타고나기 때문에 남자에 비해 마음이 연약하고 간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남자의 심지가 여자에 비해 더 곧고 변개함이 적은 편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을 아주 싫어하시며, 남자와 같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도 곧고 변개함이 없는 중심을 사랑하십니다(고전 16:13). 그러나 여자라 해도 구약 시대에 선지자 드보라나 에스더와 같은 인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크게 쓰임 받아 나라를 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곧은 중심과 남자에 못지않은 담대함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지금 너무나 고통 중에 있기 때문에 인생의 허무함과 짧음을 꽃과 그림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학식이 높으며 명성을 날린 사람도 그 이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결국에는 죽습니다. 평생을 수고하며 쌓은 것들도 사람이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더 이상 누릴 수가 없으니 헛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시편 144:4에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말씀합니다. 또 전도서 3:18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 안에 살지 않는다면 짐승과 다름없다고 하셨지요.
이처럼 헛되고 헛된 것을 체험한 솔로몬왕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깨우치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그래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교훈하였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 안에 살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세, 지혜가 있다 해도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결과는 죄의 삯인 사망,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인생의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의 말대로 인생은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사는 날이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간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므로 천국에서 끝없이 살아갑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 중에 살아가게 되지요.

욥은 과거를 생각해 보면 행복한 순간이 많이 있었지만 현재의 고난 때문에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설령 지금은 환난 중에 있다 해도 과거에 누렸던 축복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미래를 소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이 괴로움이 가득하다는 것은 신앙인들에게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기쁘고 즐거움이 넘칩니다. 하루가 지나면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날 날이 그만큼 가까워지고, 열심히 일한 만큼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져 가니 기쁘고 즐겁지요.
우리는 꽃같이 반짝 피었다가 시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더욱 새롭고 성령 충만하며 영혼이 점점 잘되어 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말씀한 대로 육의 사람이 점점 비진리인 육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전서 1:24~25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하시며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주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같은 삶을 살 때에 건강의 축복은 물론, 각종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시며 가정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영의 사람이 아닌 육의 사람이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니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모두 육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스스로 부정하며 믿음의 역사를 막아 버리는 욥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3~4)
욥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욥을 살피시는 것은 맞지만 심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이끌어서 심문하신 것이 아니라 욥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또한 죄에서 돌이켜 성결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만들기 위해 살피시지요.
그런데 욥은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통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오해하며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면서 “하나도 없다!”라고 스스로 단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뒷전에 두는 말입니다. 욥의 교만을 엿볼 수 있는 말이며, 더욱이 이 말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어둠의 자식이었으며 더러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 주심으로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 깨끗하고 성결된 참 자녀로 나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욥은 이러한 하나님을 스스로 부정하며 믿음의 역사를 막아 버리고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임의로 정해 놓은 것이라고 항의하는 욥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품꾼같이 그날을 마치게 하옵소서”(욥 14:5~6)
욥이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예정해 놓고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등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욥 자신도 예정해 놓고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저는 이렇게 불쌍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연약한 자이니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좀 편안하게 쉬게 해 주세요. 아무 자유가 없이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품꾼같이 인생을 마치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품꾼은 그날그날 노동의 대가로 삯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은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자유가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품꾼같이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에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유 의지 가운데 선을 행하기도 하고 반대로 악을 행기도 하며, 사랑하기도 하고 시기 질투를 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결국 이러한 모든 행위에 관한 심판을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면 욥과 같이 자신이 잘못해 놓고도 모두 하나님 탓으로 돌려 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여 대학에 떨어졌는데, 마치 하나님이 떨어지게 한 것처럼 오해하거나, 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경우가 있지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원망과 책임을 돌리면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 없고,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시험이 와도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며, 어려움을 당해도 정확한 공의의 법칙 속에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진리로 비춰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게 행함으로 자초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설령 앞길이 꽉 막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고백을 하며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에게 삼켜졌습니다. 이때 요나는 절망한 것이 아니라 삼 일 동안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기도를 올리니(욘 2:9)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주관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를 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욥은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으며 아예 부정적인 고백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예정의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중심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순전함과 정직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욥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올바로 깨우쳐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은 이 땅의 삶이 끝이라 생각하기에 천국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삶은 잠시 잠깐이요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알기에, 소망 가운데 하루하루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습니다. 설령 시험이나 연단이 와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지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점점 죽음을 향해 나아가지만,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하루가 지나는 만큼 아버지를 뵈올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2-07 오전 11:39:06 Posted
2022-12-09 오후 2:07: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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