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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 (94) 에녹 (3), 네피림, 하나님의 아들들 [창 6:1-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6.03.13
지난 시간에는 에녹이 어떻게 해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두 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덧붙여 설명을 조금 더 드리고, 오늘 본문 말씀 강해를 하겠습니다.

에녹이 온 영을 빨리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선 쌓기를 즐겨했다 했고, 둘째,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했다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니 하나님께서도 사랑의 표현을 해 주셨습니다. 이에 에녹은 하나님을 친근하게 느끼며 ‘아버지’라 부를 수도 있었지요.

65세부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더 승해졌고 이윽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습 3:17 후반절에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한시도 떨어지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300년간 동행하시다가 결국 에녹을 산 채로 하늘로 올리셨지요.

에녹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을 데려가실지 알았습니다. 이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리 알려 주었지요. 그들이 에녹의 사라짐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그 영광스런 장면을 보게 해 주셨지요. 바로 왕하 2:11에 보면 “두 사람이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스승 엘리야를 산 채로 데려가심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웠지요. 그래서 이후에 다른 제자들이 산이나 골짜기로 엘리야를 찾으러 가겠다고 할 때에도 그럴 필요 없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어코 50명이 3일 동안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에녹이 승천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주변 사람들이 그 일을 영광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한편 에녹은 빛의 통로를 통해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그 시간이 순간이었지만 그 속의 분위기와 와 닿는 감동을 다 느낄 수 있었지요.

에녹은 육을 입고 있을 때에도 아버지를 생각함으로 늘 행복했지만 아버지의 품에 안겼을 때의 황홀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에녹의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집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는 특별한 장식품이 있지요. 그것은 에녹이 아버지께 올린 고백 내용이 보석으로 새겨진 것이지요. 글자 하나하나가 보석으로 수놓아져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또한 에녹이 이 땅에서 올렸던 찬양에 아버지께서 빛과 향을 입혀 편곡하신 음악이 은은히 울려 퍼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사랑의 마음을 담아 올린 고백 한마디, 찬양 한 소절도 흘려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기쁘게 흠향하시고, 이처럼 천국에서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 주셨지요. 이러한 소망 가운데 더욱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는 에녹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에녹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러우셨을까요? 인간 경작을 시작한 이래로 인류는 신속히 죄에 물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에녹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중심에서 사랑하는 향을 올리자 아버지 하나님은 위로를 받으셨지요.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리며 바라셨던 참 자녀를 얻으신 기쁨으로 인해 매우 즐거워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는 이 에녹처럼 선과 사랑이 가득한 사람임을 후세에 알려 주시기 위해 성경에 기록을 남기신 것입니다. 이 세대는 에녹 시대보다 훨씬 더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온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지요. 여러분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께 위로와 기쁨을 드리는 참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는 창세기 6장을 강해합니다.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 온 뒤로 약 1600년이 지났을 때 세상은 이미 죄악으로 관영돼 있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결정하셨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명하셨습니다.

이 시간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려 하신 중요한 이유의 단서가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 ‘네피림’, ‘고대에 유명한 용사들’이 나옵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이라면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요.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조차 의견이 분분하고요. 여러분은 성경의 저자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풀어 주신 말씀을 통해 이제 곧 명쾌한 답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먼저, 1절부터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여기서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란 어떠한 때를 의미할까요? 먼저,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이 이 땅에 번성하여 퍼져 나가기 시작했던 때이지요.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 중 라멕은 두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 결과 자손도 두 배로 얻을 수 있었지요. 이것이 인구 증가 속도를 더 빠르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했습니다.

또한 라멕 대(代)를 기점으로 인류의 문명이 이전과 다른 차원으로 크게 발달했지요. 업종별 전문가가 나오고, 기술이 발달하여 사람들의 삶이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삶의 여유가 생기니 유흥 문화도 형성됐지요. 이처럼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갔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인간 중심적인 삶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요. 물질적으로 부요한 나라일수록 인본주의 사상이 지배적이고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아도 사람들은 부와 권세를 얻을수록 하나님을 찾지 않고 멀리하지요. ‘하나님 없이도 이만큼 잘 살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라멕 대를 기점으로 인류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삶이 안정되자 급속히 죄악에 물들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는 둘째로 사람들이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멀어진 때를 가리킵니다.

본문의 “땅”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 육의 땅만을 가리키지 않지요. 아담이 생령으로 살았던 에덴동산, 이 영의 세계와 대비되는 ‘육의 세상’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한다.’는 말씀은 ‘사람이 점차 육의 세상에 물들어 육의 사람이 되어 간다.’는 뜻이지요.

당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음으로써 도덕성이 결여되는 등 악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이처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왜 홍수 심판을 결정하셨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해 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어지는 1절 후반절을 보면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그전까지는 아들들만 낳다가 이때서야 딸들이 태어났나 보다.’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딸들이 없었다면 아들들도 태어나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왜 굳이 이렇게 표현하셨을까요? 그것은 이어지는 2절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전에도 물론 딸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즉 죄악에 깊이 물들 때에 태어난 딸들이 2절의 사건과 관련 있기 때문이지요.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했습니다. 4절에는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해 보면 당시에 ‘네피림’이란 존재가 이미 있었습니다. 그보다 나중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은 자녀들은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네피림’은 누구며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요?
먼저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을 ‘천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장 5절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는 “아들”이라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마태복음 22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말씀하셨지요. 이를 통해 천사들은 사람처럼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가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결코 천사가 아니지요.
또한 어떤 사람들은 본문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의 후손들 중에서 정통 계보를 이은 ‘셋의 후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셋의 후예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과연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요?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의 남자 후손들’입니다. 아담이 이 땅으로 내쫓긴 후에도 그들은 계속 에덴동산에서 살았지요. 그들 중 일부는 에덴동산과 지구를 오고 갈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이 있는 둘째 하늘과 지구가 속한 첫째 하늘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과 지구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었지요. 그 당시 아담의 자손 중에는 아담과 동행하며 지구를 다녀간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에덴동산에서 지구를 다녀오는 데에 제약이 생겼습니다. 아무나 다녀올 수도 없거니와 영계의 문을 관장하는 그룹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지요. 그 결과 이전과 비교할 때 매우 제한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표현도 그 당시 ‘제약 조건’이 있었음을 나타내지요. 여자라 해서 이 땅에 결코 내려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남자에게 내려오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제한적으로나마 에덴동산과 이 땅을 오고 갔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 부류는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난 후, 아담을 따라서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들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아담을 지켜보면서 동경하는 마음이 생겼지요. 자신들이 사는 에덴동산은 지구와 비교하면 훨씬 환경이 좋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을뿐더러 영원히 살 수 있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육의 세상인 지구에 사는 아담의 삶이 좋아 보였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따라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선택하듯이, 첫째 부류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바로 ‘사랑하는 아담과 하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아담과 하와가 직접 낳은 자녀들은 더욱 이 마음이 강했지요. 그래서 에덴동산을 뒤로 하고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하는 편을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내려오면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처럼 계속 같이 살 줄로 알고 이 땅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정착한 후 에덴동산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질서를 좇아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이 자녀들이 바로 ‘네피림’입니다.

둘째 부류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이 ‘고대에 유명한 용사들’이었지요. 에덴동산의 남자들이 이 땅의 여인들을 취하게 된 과정을 좀 더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난 후 지구의 상황을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었지요. 그중 일부는 아담처럼 이 땅에 정착했고, 일부는 계속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 땅에 정착한 이들이 앞서 말씀드린 첫째 부류로 이들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요. 반면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는 말씀은 안목의 정욕이 생기는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온전한 영이 아니라 ‘생령’이었고 자유의지가 있었기에 스스로 육을 취하고 받아들이면 육이 틈탈 수 있었지요. 그들이 에덴동산에 사는 동안에는 항상 빛 안에서 지킴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다 해도 스스로 육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왕래하면서 육의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점차 자유의지 가운데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이게 됐지요. 그러자 생령이었던 그들에게도 ‘육신의 정욕’이 자리 잡게 됐습니다. 결국 그들은 정욕을 좇아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지요.

혹 ‘에덴동산의 여인들이 사람의 딸들보다 훨씬 아름다울 텐데, 왜 그들은 굳이 이 땅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했을까?’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마음이 영이냐, 육이냐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다릅니다. 영의 사람은 맑고 순수하여 천국을 연상케 하는 장면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반면 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느낌이 들 때에 세련되고 멋있다 여기지요.

예컨대, 여인들이 화장할 때에도 어떤 사람은 어두운 색조로 하는 것을 예쁘게 여겨서 칙칙한 색조를 눈이나 입술에 진하게 바릅니다. 이처럼 육과 영의 미에 대한 기준이 다릅니다. 본문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들’도 육에 물들기 전에는 에덴동산의 여인들을 당연히 더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에덴동산의 여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아름다움을 처음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땅의 여인들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옷이나 장식도 육적으로 화려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처음 이 땅의 여인들을 보고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육에 물들자 이 땅에 사는 육적인 여인들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지요. 결국 정욕을 좇아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를 아내로 삼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행동은 영의 질서와 육의 질서를 모두 어지럽힘으로 인해 많은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이 땅의 여인들을 취하면서도 에덴동산을 오고 갔습니다. 육에 물든 상태의 존재들이 영의 세계인 에덴동산에 머문다는 자체가 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들은 육의 질서도 어지럽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문란한 행동은 금세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됐지요.

이 땅의 사람들이 볼 때 에덴동산에서 내려온 이들은 거의 신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외모도 준수했고, 지식이나 지혜 면에서도 이 땅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여인을 취하자 이 땅의 사람들도 쉽게 좇았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땅에는 정욕을 좇아 행하는 일들이 급속히 퍼졌습니다.

혹 ‘하나님께서 에덴동산과 이 땅의 통로를 철저히 봉쇄해 버리셨으면 이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왜 막지 않으셨을까?’ 이런 의문을 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과정을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임의로 개입하시고 강제로 조종하시는 분이 아니지요.

영계의 문을 제한적으로나마 열어 두신 것도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을 그리워할 아담을 위한, 또한 시조인 아담을 보고 싶어 할 에덴동산의 후손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가 자유의지 가운데 육을 취했고, 영육 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았지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2026-03-13 오후 2:12:28 Posted
2026-03-20 오전 11:02:5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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