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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4)  [엡 6:10-18]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6.03.15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서 오늘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듣고 무장하여 진리 안에 든든히 서는 것이라 했지요. 그런 사람은 어떤 시험이나 어려움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넉넉히 승리할 수 있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며 참된 의인이 되니 마귀의 어떤 궤계도 승리할 수 있다 말씀드렸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영혼들을 어찌하든 구원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은 영혼들은 사단 마귀의 공격에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내가 만난 하나님, 나의 구세주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많은 교인이 주님을 만나고 성령 체험을 했어도 마음의 할례, 다시 말해 “의의 흉배를 붙이는” 일을 등한시하면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야 합니다. 군인들이 소지한 총을 수시로 점검하듯이 자기의 생각과 마음, 행함을 진리로 돌아보며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을 때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이 시간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에 대해 말씀드릴 때 더 온전한 영적 장수로 무장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 6:15)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지요. 사람에게서 가장 더러운 곳은 악이 담겨 있는 마음이지만, 육으로 볼 때는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 발이요,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시며,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가지고는 가까이할 수 없는, 깨끗하고 거룩하신 분임을 알려 주십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하여 죄를 벗어버리고 악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므로 성령의 밝은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1. 주님을 믿고 벗어 버려야 할 더러운 ‘죄악의 신’

먼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설명하는 이유는,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버려야 비로소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 신었던 신은, 골로새서 3장 8-10절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말씀하십니다.
혈기, 악독, 다툼, 판단, 정죄, 수군거림, 거짓 등 죄악 가운데 살던 옛사람과 그 행위가 더러운 신이지요. 이제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이지요.


2.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신 이유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우리가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고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봉사하며 하루를 온전히 교회에서 보내도 힘들고 피곤한 것이 아니라 행복합니다. 생명의 말씀인 영의 양식으로 채웠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길을 배워 하나님께로 나아가니 주일은 즐거운 날이지요. 또한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며 한 주간을 지킴 받으니 복 받는 날이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날이 됩니다.
복음 역시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하신 것입니다. 복음(福音)이란 복된 소리란 뜻으로 우리의 구세주 되신 주님에 대한 소식이며, 나아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대한 내용이지요. 이 복된 소식을 알게 되고 믿어졌을 때 감사와 기쁨, 희열이 넘칩니다.
첫사랑으로 충만했을 때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지요. 보이는 이 세상이 다인 줄 알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지치고 찢긴 심령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고, 좋은 것을 입고 취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죄인인 것을 깨달았어도 용서하시는 하나님과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구원의 확신으로 넘쳤고 아직 작은 믿음이라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깨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어졌지요. 이것이 평안을 주시는 복음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어떠합니까? 주일이 되어 말씀을 듣고 죄를 지적받으면 행복하기보다 민망하고 죄송합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행치 않으니, 복음이 평안하기보다 힘들게 느껴지지요. 기도도 잘 안되고 말씀에 은혜도 못 받습니다. 이때 회개하여 잃어버린 은혜와 충만함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이제 주일에 예배하러 나오는 것도 즐겁지 않습니다. 주일이 안식을 얻는 날이 아니라 힘든 날이 되지요. 이는 복음의 신을 신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듣기만 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신을 신으라 하셨는데 듣기만 하니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3. 복음이 주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말씀하시듯 우리가 들어가야 할 천국 문은 좁은 문입니다. 이 문으로 가는 길에 때로는 여러 가지 역경과 어려움이 오기도 하고, 믿음이 여릴 때는 좁고 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이 길을 선뜻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면 포기해야 할 세상의 즐거움이 아깝게 생각되지요. 그러나 막상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길이 결코 힘들고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는 행복한 평안의 길이지요.
초대교회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는 육적으로는 험난한 길을 갔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고, 믿음이 있기에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힘들다 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도 행복과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지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 복음으로 신을 신는 것을 ‘평안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힘들다’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수 마귀 사단은 분명히 주변의 세상적인 유혹을 통해 궤계를 부려 올 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신앙생활 해. 적당히 하면 되지, 뭐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할 것 있어? 언제까지 그래야 되는데?’ 이러한 적당주의 신앙생활로 빠지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과 즐거움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그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자극하여 신앙생활이 힘들고 세상이 좋아 보이게 하지요. 한 번, 두 번, 세상 것을 취하니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원수 마귀가 발을 묶어버립니다. 받았던 은혜도 까먹고, 신고 있던 복음의 신을 벗고, 세상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신으로 갈아신게 하지요.
세상 것을 즐길 때는 ‘그것을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허전해서 어떻게 하나?’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영의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는다든가, 전도, 심방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는 등 영의 것으로 채워야 하지요. 그렇게 보낸 하루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위로부터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참 행복이지요.
세상 오락은 취할 때 잠깐 즐거울 뿐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변개하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하면 그 평안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바라보기에 하나님이 주신 행복이 없어지는 것이지, 비진리의 것을 취하지 않고 천국 문을 향해 달려갈 때는 그 행복이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평안을 넘어, 그 행복으로 인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하지요. 죄의 짐도 없으며,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사랑과 신뢰로 친밀하니, 평안만 가득하고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 길에 있어서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평안만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때로는 가시를 뿌려 놓을 수도 있고 돌멩이를 뿌려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으며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은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 되어 있습니다. 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우리만 신을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 가시밭길이다.’ 표현하기도 합니다. 세상 삶이 많은 풍파와 어려움에 놓여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복음의 신을 신으면, 가시밭길을 걸어갈 때 발에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도리어 힘들고 어려운 길, 포장되지도 않은 험난한 길, 돌밭 길, 가시떨기밭 길이라도 복음의 신을 걷고 가면 안전하지요. 하나님이 우리의 신발을 계속 업그레이드해 주실 수 있도록, 신발의 밑창도 튼튼해지고, 더 좋은 가죽으로 입혀질 수 있도록,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아름다운 천국까지 평안히 도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6-03-13 오후 2:12:48 Posted
2026-03-20 오전 11:02:2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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