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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종려주일 [막 14:32-3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6.03.29
오늘은 종려주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의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을 한 주 앞둔 ‘종려주일’이며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한 주간을 ‘고난 주간’이라 합니다. 고난 주간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는데, 가룟 유다가 데리고 나타난 대제사장의 하속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동안 금요일이 됩니다. 이날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이 선고돼 모진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고난 중에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당시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표현한 말씀과 기도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이 말씀은 꼭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음만이 아닙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면서도 같은 심정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실 때, 여러분이 연단을 받을 때의 마음과 입술, 행함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과 같이 아름다운 영의 생각과 선한 마음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우리보다 육의 아픔을 훨씬 덜 느끼셨을 것이다. 신령한 몸이니 우리보다 견디기 쉬우셨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채찍에 맞으면 아픕니다. 육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처럼 배고픔도 느끼고 많이 걸으면 발이 붓기도 하셨지요.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유대 병정들이 주먹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치고 손바닥으로 때릴 때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셨습니다. 로마 병정들이 가시관을 머리에 씌울 때, 날카로운 가시가 예수님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고통 역시 그대로 느끼셨지요. 채찍에 맞으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병정의 채찍에는 날카로운 조각들이 촘촘히 박혀있고, 끝부분에 예리한 갈고리가 달려있습니다. 채찍을 내리치면 온몸을 휘감고, 채찍을 낚아채면 살점까지 떨어져 나옵니다. 채찍질을 몇 번만 맞으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 채찍으로 많이 맞으셨으니 얼마나 아프셨겠는지요. 온몸은 피로 붉게 물들었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빠졌습니다. 이것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지치고 힘든 몸으로 이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야 하셨지요.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힌 채,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스란히 모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에 더해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고통까지 느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면서 이처럼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는 많은 영혼으로 인해 더한 고통을 느끼셨지요.
이 땅에서 경작 받는 동안은, 크고 작은 여러 연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연단을 받는다 해도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일들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연단 중에도 “주님께서도 이 길을 가셨고, 믿음의 선진들도 이 길을 가셨으니 나도 승리하며 가리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게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이기며 나가는 것이 정녕 믿음 있는 성도의 모습이지요.


2.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때의 심정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당시 심정과 하나님께 올린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깨어 기도할 것을 당부하시며, 돌 던질 만큼의 거리를 두시고 떨어져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기 전에, 본문 마가복음 14장 34절에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처럼 표현하신 것일까요? 먼저 “죽게 되었다”는 것은 다음 날 있을 십자가의 처형을 가리킵니다. 이는 사람들이 힘들 때 입버릇처럼 “죽을 것 같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요. 정말 죽게 되는 그 사실 자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라고 표현한 이유는 십자가의 길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므로 가능한 일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지요.
인성만 지닌 사람이 십자가 고난을 받는다면, 도저히 견뎌내기 어려운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성과 함께 신성을 지녔는데 십자가의 고난은 천상에서 예상한 것과 큰 차이가 났지요. 당시 예수님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은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땅에 남긴 제자들이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삶을 모두 정리하려니 많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처럼 많은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시고 직접 느끼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피조물들에 대한 생각으로 몹시 마음이 아프셨지요.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시 심정을 “내 마음이 심히 고민된다” 표현하신 것입니다.
영의 마음을 이룰수록 이러한 주님의 마음이 더 잘 이해가 되지요. 예수님께서 왜 그처럼 표현하시는지 마음에 감동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부정적인 고백을 하셨을까?’ 하며 육신의 생각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예수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며 영으로 일구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읽을 때뿐만 아니라 예배 중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말씀을 듣고 나아가 판단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영의 마음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상대의 말 자체나 단어 표현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말 속에 담긴 마음을 느끼며 감동 가운데 그 의미를 깨닫게 되지요.


3.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마가복음 14장 36절에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이 잔(곧, 십자가의 고난의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피하고자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러한 인성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십자가의 길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예수님은, 인자로서는 쉽지 않은 길을 오직 아버지를 사랑하심으로 가셨음을 나타내기 위해 그처럼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기도를 보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지요. 바로 자신이 어떠한 고난을 받게 될지라도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되, 기쁨으로 그 뜻을 받드셨습니다. 이는 또한 우리 예수님의 마음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온전히 자리 잡혀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기도한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거나 자신의 틀 안에 응답의 때와 방법까지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하나님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단을 받을 때 “아버지 하나님, 이 연단이 너무 힘들어요. 왜 제게 이런 연단을 주십니까? 이 연단이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이처럼 원망과 탄식의 기도를 하시지는 않았습니까? 이는 참으로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기도이지요.
믿음 있는 성도라면 이처럼 원망이나 탄식의 기도는 안 나옵니다. 오히려 왜 연단이 왔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이유를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어떤 죄를 지었거나 영적인 잠에 빠져 있을 때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자기 잘못으로 연단이 왔음을 깨달았다면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어차피 받아야 할 연단이니 받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시험은 막아 주시고 이 연단도 속히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지요. 그러나 이 역시 예수님의 기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겉으로는 연단을 받겠다고 하나, 그 마음에는 어떻게든 힘듦을 면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온전히 선한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기도는 선의 고백, 믿음의 고백입니다. 마음 중심에서부터 연단 주심을 감사하고, 정녕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연단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해도 온전히 나를 맡기고 더 온전히 변화하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혹여 깊은 연단 중에 계신 분이 있다면, 예수님의 기도와 같이 마음 중심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밝히 주관해 주시고, 여러분이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고난 주간의 첫날, 종려주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우리 예수님의 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시는지요? 우리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피조물들, 특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육의 마음을 이해하셨고, 또한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땅을 떠날 때가 이르렀을 때, 지난 추억들이 많이 떠오르셨지요. 제자들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아시므로 걱정도 되고 고민도 되셨습니다. 이런 심정을 “내 마음이 심히 고민된다” 표현하셨던 것이고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올수록 잘 이해가 됩니다. 또한 무겁고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맡을수록 주님의 고뇌와 마음이 더 잘 이해되지요. 아직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해도,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성결을 위한 작은 연단을 받으면서 “너무 힘들다, 어렵다.” 말하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받으신 고난을 기억함으로 선하고 믿음 있는 고백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도 아버지를 사랑하심으로 묵묵히 가셨지요. 여러분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안다면, 어떤 연단이 와도 능히 기쁨과 감사함으로 이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신 우리 주님처럼, 성도님들도 믿음의 연단을 통해 응답과 축복의 주인공들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3-26 오후 10:34:09 Posted
2026-04-03 오후 1:36:0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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