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맞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부활과 재림의 소망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즐겁고 행복한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이란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 주님의 부활로 인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베다니라는 동네의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죽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심히 사랑하고 붙좇았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로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편안하게 섬겨 드렸던지 예수님께서 베다니 근방을 지나시는 길이면 이들의 집에 묵으시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시고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며 예수님께 급한 전갈을 보내왔는데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갑자기 병이 들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다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시며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장사 된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슬픔에 젖어있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면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사로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아무리 중한 병이라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실 것을 믿었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죽은 나사로 때문에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는가 하며, 어떤 이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으로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는데,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다조차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말할 정도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고 그들이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은 것을 보신 후,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셨는데,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여 이미 썩어졌던 나사로의 육체는 순간에 회복되었고,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 입구에 나타난 것입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으니 그 순간 숨을 죽이고 무덤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열광과 환호는 물론 이곳저곳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누구보다 나사로의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예수님께로 데려와 엎드려 감사를 드리니 슬픔과 애통의 분위기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큰 잔치로 바뀌었지요. 그 자리에서 영광의 순간을 목도한 많은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었으며, 이 부활의 소식은 순식간에 유대 전역으로 전파되어 하나님께서는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2. 십자가에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을 믿을 때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것이 영적인 부활이지요. 앞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주를 믿고 죽은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육적인 부활입니다. 본문에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요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말씀처럼, 모든 사람의 영이 죽고 말았지요.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며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드리고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아무리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과정이라 해도,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에 “때가 제육 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하며” 했고, 마태복음 27장 51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신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심한 고통으로 인해 해조차 빛을 잃고 온 땅이 캄캄해지며 지진이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5장 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까닭에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셨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부활의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통해 부활의 모델을 보여주셨고,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영으로 깨우치지 못했던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고 들었음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예수님께 은혜를 받고 붙좇았던 여인들과 제자들은 마치 암흑 속에 갇힌 것과 같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나, 슬픔에 빠진 여인들은 하염없이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예수님의 무덤에라도 가려고 기다리는데 그 밤은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지요.
그러나 죽음은 죄인에게만 해당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지 사흘 만에 통쾌하게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낙심하여 어깨가 늘어졌던 제자들도, 흑암과 같은 슬픔에 빠졌던 여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완전히 변하여 참된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하였지요. 이제는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을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전에 예수님께 들었던 모든 말씀은 물론 영원한 생명, 천국의 영광을 약속하신 주님이 재림하실 것도 확고하게 믿어졌습니다.
십자가를 거꾸로 질 때 베드로의 마음속에도, 펄펄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지는 사도 요한의 마음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확실한 부활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약속으로 가득한 사도 바울에게는 낙심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가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예수 이름 까닭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천국의 소망이 넘쳐서 고난에 대한 두려움도 슬픔도 없으며, 오직 불같은 열정과 사자 같은 담대함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20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대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소망이 있기에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4.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되어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어
처음 성령을 받고 구원받는 순간은 기쁨이 가득 넘쳤을 것입니다. 이 기쁨을 끝까지 붙잡고 승리하여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는 찬송이 온 하늘에 가득한,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형상으로 바뀌어 구름 위로 들리어 올라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위로하시고 그 후로는 날마다 잔치를 벌이면서 금은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천국 집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부활의 소망, 다실 오실 주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힘든 연단 속에서 정금같이 나오며, 주님께서 상 주심을 믿고 달려가는 사람이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굳게 붙은 가지가 되어야 주렁주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과 재림의 소망이 적은 사람들은 힘든 연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므로 세상으로 달아나거나 연단을 피하려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을 포기하거나 성결되는 연단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포도나무의 원줄기에서 떨어져 말라 버리는 가지처럼 부활의 소망, 재림의 소망도 사라지지요.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죽음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영적 장수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 3장 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것을 바라보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 했습니다. 매 순간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위엣것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위엣것을 바라보므로 신속하게 성결 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이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여러분도 함께 영원한 영광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4-02 오후 11:12:45 Posted
2026-04-10 오전 10:35:0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