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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제목
혹독하게 몰아닥친 부도의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 박봉례 집사
출처
날짜
1999년 7월 1일 목요일
조회수
9468
둥실둥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나 길가에 자라는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를 보면서 조물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학창 시절, 저는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에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서로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하였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잉꼬부부라 불리곤 했습니다.
이처럼 부부간에 금실이 유난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고,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세상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히 변함없는 만족과 기쁨을 줄 그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참기쁨을 찾으니

그러던 1989년 10월 어느 날, 저는 이웃에 살던 고상복 집사님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서 선포하시는 생명력 넘치는 진리의 말씀을 들으니 제 영혼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지요. 특히 영, 혼, 육에 대한 말씀은 세상 지식으로는 풀 수 없었던 신령한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고 교회에 가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 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남편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였던지 갑자기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남편을 정성껏 섬기며 마음을 맞추려고 애썼습니다. 이에 조금씩 마음이 녹아진 남편은 1991년에 등록하였지만, 일 년에 교회에 나오는 날이 겨우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자신만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를 다시 힘들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지 못한 모습들을 회개하며 남편을 더욱 정성껏 섬기기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핍박하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15일 금식기도와 40일 작정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부르짖어 간구하였지요.

남편이 부도의 위기에 처해도 감사하며

그러나 그 당시 규모가 꽤 큰 종합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남편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세상 즐거움에만 더욱 몰두해 갔습니다.
계란 노른자위 같은 비싼 땅인 강남 지역에 수십 개의 여관과 별장을 건축하면서 회사가 여기저기 알려져 일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드디어 경기도 양평에 대단위 전원주택 건설을 계획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건축업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 남편은 자신감에 부풀어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로 번창하던 남편의 사업을 이용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편의 사업터에 자기 편 사람을 위장 취업시켜 회사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회사 운영 자금을 이리저리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여유 자금이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노임이 지불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곤 했지요. 남편은 직원을 불러 경위를 알아보았지만 단순 착오로 판단하여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한편, 남편이 눈치를 챈 것으로 생각한 위장 직원은 급기야 거액의 회사 운영 자금을 빼돌렸고, 이 일로 인해 부도의 위기를 맞게 되는 등 계속되는 사건으로 남편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습니다.
그즈음 저는 1년 동안 작정하여 아침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회사의 어려운 일을 계기로 남편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어려울 때일수록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교회에 나갈 것을 간곡히 권유하였습니다.
마침내 심령이 가난해져 있던 1997년 1월, 남편은 오랜만에 저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였고,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아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전 건축헌금으로 500만 원을 하나님께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기도하니

이제는 됐나 싶었더니 얼마 후 남편은 사업터를 수습한다면서 또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일이 더욱 크게 어긋나더니 급기야 1997년 11월에는 부도를 맞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수십억을 날리고 구입한 지 두 달도 안 된 자동차마저 채권자의 손에 넘기고는 사무실과 회사를 정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동전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어 아이들에게 단돈 천 원짜리 학습 준비물도 사 주지 못할 형편이 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밤낮 걸려오는 빚 독촉, 협박 전화에 시달리다 보니 남편은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고, 저는 그러한 남편에게 힘이 되어 주고자 더욱 불같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고통 속에서 4, 5개월을 보낸 남편은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께 의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사업을 한다면서 밖으로만 나돌던 삶을 청산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통회자복한 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

부도라는 비바람이 휘몰아친 후 오랜만에 저희 가정에는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남편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이제 앞길을 주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니 아무 염려 근심도 필요 없게 되었지요.
아직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던 1998년 4월,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권유로 오산리 기도원을 찾아간 남편은 하나님과의 죄의 담을 헐고 사업터 문제 등을 해결받기 위해 7일 금식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를 핍박했던 것, 교회를 욕했던 것 등이 떠오르더니 그것들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지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과 콧물이 쏟아져 통회자복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니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사업상 알고 지내던 사람이 찾아와 남편에게 돈을 빌려 주며 재기해 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남편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8년 가을에도 남편은 현장일을 하면서 또 한 번 7일 금식을 하였는데, 그 후로 하나님의 축복이 더욱 차고 넘쳐났습니다.

IMF와 상관없이 달고도 풍성한 열매가 넘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고 말씀하신 대로 요즘 저는 달고도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선을 행한 끝에 온 가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충성하고 있으니까요.
남편은 현재 만민중앙교회에서 향유중창단 부장과 구역장, 주교사로 헌신하고 있으며, 저는 지역장으로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1997년, 그 어려울 때 심은 믿음의 씨앗으로 인해 오히려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이 때에 싹을 틔우게 하시고 많은 열매로 축복해 주고 계십니다.
특히, 주일성수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성실히 해 온 결과 1998년 10월 말부터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한 사업터에는 지속적으로 거래가 성사되어 IMF 경제난 속에서도 바쁜 나날을 보내며 한 달에 십일조 300만 원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제단으로 인도하셔서 참기쁨을 주신 하나님, 어려울 때도 기도로 이겨 내게 하시며 더욱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하신 하나님, 가정과 사업터에 놀라운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